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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디 짧은 강촌 여행기

잔거잔거2003.05.12 15:26조회 수 667추천 수 1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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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듯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삶이란게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것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어떠한 목표가 있다거나, 건강을 생각하면, 가장 좋은 삶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지루한 것 또한 사실이죠, 시간이 지나가다 보면 어느날 문득 자기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게 되는 시간이 있는 거 같습니다.

갑자기 모든 것을 때려치고 완전히 새로운 그 무엇인가를 향해서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새로운 것을 위한 진취적인 용기라기 보단, 단순한

충동적인 현실 도피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럴 때 아주 짧은 여행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들과 같이 mt분위기를 내며 강촌을 1박2일로 다녀왔습니다. 원래 계획은 밤에 도착

자고 일어나서 강촌 대회 풀코스를 돌아볼 계획이었지만, 시간 관계상 그냥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 돌아왔네요, 6명이 강촌의 한 민박집에 도착한 것은 저녁 11시 쯤이었습니다.

이미 주변에는 술에 취한 대학교 초년생들이 고기를 구워먹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더군요

소란스럽긴 하지만 싫지는 않은 분위기였습니다.

간단히 짐을 풀고 고기를 구우며, 우선 요즘 제가 푹 빠져있는 천국 이라는 술로 가볍게

시작을 한 후에, 고급스런 기분을 내보려고 사간 마주앙 와인을 꺼냈습니다.

비난이 쏟아지더군요,

'그거 한 병이 소주 몇 병인지 아느냐?'

'포도주스랑 구별할 줄이나 아느냐?'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돼지 고기에는 레드 와인이 좋다더라 라는 어디 tv

프로그램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준 후 아는 분에게 배운데로 와인을 입에 머금고 공기를

들이 마셔서 섞어 마시는 법을 일행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다같이 한잔씩 한 후

반응이 나왔습니다.

'써....'

'포도 주스나 사와라.'

'혼자 공기나 열심히 마시시지.....'

우울하더군요, 대자연 속에서 돼지고기를 를 바라보며 쌈장과 함께 종이컵에 따라 마시는

레드 와인이란게 생각보다 그리 고급스럽지도 않고 낭만적이지도 않았으며, 가장 큰 문제는

별로 맛이 없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정리를 하고 나니까 새벽 1시 40분 정도, 옆방에서는 정겨운 노래 소리들이

퍼집니다.

'노래를 못하면 시집을 못가요~~ 아 미운~~~~~'

잠깐 흥이 겨워 같이 따라도 불러봅니다만, 금방 멈춥니다. 졸리고 몸이 나른합니다.

그래도 다들 또 암말 없이 장비들을 챙깁니다.

6명 중 2명은 방에서 쉬고 4명이 라이트를 달고 숙소를 빠져 나왔습니다. 그 중 한명은

라이트도 없습니다. 가운데 라이트가 없는 사람을 끼고 앞뒤로 비추어 주면서 전진을 합니다.

강촌 시내에 가보니, 술에 취한 학생들이 자전거 대여소에서 빌린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습니다. 라이트를 번쩍이면 중무장한 4명이 다가오니 다들 이상하게 쳐다 봅니다.

그때 한 여학생이 아름답게 외쳐 줍니다

' 오빠 달려~~~~~~~~~~~~!'

쑥스러워서 할 줄 아는 기술들은 몽땅 다 하면서 지나갑니다. 요즘 재미들린 땅에서

10cm 뛰기 호핑을 해봅니다. 반응이 좋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얘기합니다.

' 거 참 아가씨들이 경박스럽군..'

그러나 자연스레 이길이 아닌 듯 싶다면서 다시금 또 그 여학생들 있는 쪽으로 지나

갑니다 다시금 들리는 '와아~~오빠 달려~~~' 다들 흐믓한 표정을 감추려고 노력합니다.

뭐랄까 이런 맛에 오토바이 폭주족들을 하는구나,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목적지를 구곡폭포로 정합니다. 밤이라 피곤한지도 모르며 열심히 갑니다. 폭포 공원 입구

에 도착해보니 역시 또 주차장에 '유리창에 김이 서리고 조금씩 좌우로 흔들리는' 차들이

몇대 있습니다. 다 같이 다가가서 라이트를 비추며 잘 살펴봅니다.

이런 젠장, 너무 소극적인 커플들만 있어서 다들 김이 빠집니다. 공원 입구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길을 몰라서, 대충 감으로만 전진합니다, 뭐랄까 서울의 우면산을 밤에

올라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완전한 어둠, 조용하고 편안하고 멀리서 물소리가 들리는,

깨끗한 안개가 모든 것을 가라앉히고 너무나 짙어서 숨을 들이쉴때마다 코로 물이 들어오는

느낌이 강해집니다, 어느 소설에서 읽었듯이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어디선가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들릴 듯이' 사방이 고요하면서도 소란스럽습니다.

다들 머릿속에 귀신 이야기가 하나둘씩 떠오르지만 입 밖에 내면 정말

나타날 것 같아서 조용해집니다. 한 참을 오르다가 길이 막혔습니다. 조그마한 폭포가 있었지만

구곡폭포는 아닌 것 같고, 그 위로는 현재 계단 공사중이라서 올라가기도 힘듭니다.

아쉽지만 포기하기로 하고, 그래도 왔었다고 기념사진을 촬영합니다. 잠깐 다 같이 모든

라이트와 안전등을 꺼보기로 합니다.

완전한 어둠, 앞에 뭐가 있는지 뒤에 뭐가 있는지, 왠지 잠시 후에 불을 키면, 일행 중

한명이 늘었다거나 줄어있어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분위기입니다. 크게 들리는 물소리와

바람소리, 벌레소리, 그 모든 소리가 조용하다라는 느낌만을 강하게 해줍니다. 일행 중

한명이 주섬주섬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보기 시작합니다. 질새라 같이 소변을 봅니다.

왠지 이유없는 웃음이 키득키득 나오고, 오기 잘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약간 무서웠던 어둠이 조금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편안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됩니다.

어둠에 몸이 동화되어 가는 느낌, 불을 발견하기 이전까지 인간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았었다라는 얘기가 기억이 납니다. 정해진 시간은 한계가 있는 법, 다들 장비를

챙기고 내려옵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뼈까지 시려운 지하수로 샤워를 하고 잠을 청하니 새벽 4시

아침에 일어나 해장 라면을 먹고 다 같이 강촌 리조트까지 자전거를 타고 어슬렁 거리며

다녀오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큰 이벤트였던 것도 아니고, 대단한 모험을 한 것도 아니지만, 뭐랄까 단 몇 분 아니

단 한순간이라도 느꼈던 그 느낌이 앞으로 다시 몇 달간 해야할 반복적인 삶에 많은 힘이

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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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아니 너무 간만의 후기시군요. 전 잔거님의 팬입니다 ^^;; ㅋㅋㅋ
  • 잔거잔거글쓴이
    2003.5.13 17:24 댓글추천 0비추천 0
    헉 전 지방간님 팬이었는데요^^;
  • 아.. 좋네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_^
    음.. 그런데.. 그.. 와인.. 저두 몇 번 마셔보진 않았지만, 그 맛은 정말 모르겠더군요.. ^^; 아직까진 산사춘이 젤 좋은거 같아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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