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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의 첫 자전거 여행

chongdy2005.09.02 21:13조회 수 1923추천 수 3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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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부터 계획되었던 여행을 마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한 여행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목표를 정하고 그저 달리고 중간 중간에 목마르면 물 사먹고, 음식 사먹고
목표지점에 도착하여 관광하고 다시 잠자고 일어나는 아주 단순한 여행이 이 자전거 여행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면서 점점 빨라지고 길어지는 자전거 타는 실력을 경험하였다.
많은 것을 보았다가 보다는 내가 목표하였던 거리를 돌파하였다는데 커다란 의의를 두고 싶다.
여정 중에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여행에 경탄을 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내가 하는 일들이 무척 힘이 드는 일인가보다.
스고이, 오켕끼데스네. 가장 자주 듣는 말이었다.

일정

  8월 6일 맑음
전 날 밤에 컴퓨터등등 사무실 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짐을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9시경에 드디어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집에 갔다. 자전거 가방과 어제 준비한 끈을 가지고 도착하여 분해를 하였는데 너무도 쉽게 되었다. 앞, 뒤바퀴를 분리하고, 핸들을 분리하고 페달을 분리하여 가방에 넣고 아내에게 전화를 하였다. 곧 아내와 같이 집으로 돌아와 다시 짐을 정리하고 대전으로 11시에 출발을 하였다. 대전 역 동 광장에 도착을 하였는데 자전거가 생각보다 무척이나 힘이 들어 끌개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KTX로 보내려던 계획은 자전거가 너무 커서 직접 핸드캐리하기로 하였다.
식당에서 냉면을 시원하게 한 그릇 먹는 중에 시간을 보니 너무 촉박한 것 같아서 아내의 식사 중에 일어났다.
개찰구는 많이 현대화 되어있어서 마치 지하철 같은 인상을 받았다.
나의 개찰 시간이 조금 남아 다시 아내와 만나고 인사를 하고 플랫트홈으로 갔다.
낑낑거리고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내려가서 기다리다 13시 22분 새마을에 몸을 실었다.
시간은 약 10분여가 늦었다.
짐을 객차의 맨 뒤에 싣고 자리에 앉아 이야기 중에 채 선생이 환전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 3만엔을 주고 나는 4만엔을 가지고 시작을 하였다.
차는 예정시간보다 16분 늦게 부산역에 도착하였다.
부산역에서 모범택시를 1만원에 국제항을 들러 자갈치 시장까지 가기로 하였다
자전거는 국제항 부두에 도착을 하니 짐을 탁송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덥썩 맡아주어 일이 쉬웠다.
자갈치 시장은 언제나 들려도 생동감 넘치는 그런 곳이다.
더워도, 추워도 항상 삶의 활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난 이 곳에서의 좌판을 아주 좋아한다.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기도 하고
난전을 한 사람들의 물건을 구경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삶의 체취를 즐긴다.
자갈치 시장에서 우리는 상어 한 접시와 꼼장어로 저녁을 해결하고 부산항을 돌아와서 승선 준비를 하였다. 1등실은 만 오천원을 더 내면 둘이서 가능하기에 만 오천원을 지불하고 승선표를 받았다.
잔잔한 출국수속은 언제나 짜증이 나지만 그래도 여행을 시작하는 즐거움 때문에 그냥 지나 칠 수 있었다.
세관과 이민국을 지나 승선을 하였다.
배는 2만 8천톤인 카멜리아호였다.
약 5층의 선실을 갖고 있었다.
우리의 room Nr.는 531호,
조그만 방에 침대는 상하로 있고 고정식의 의자와 탁자가 있는 그런 방에 TV와 세면대가 있는 아주 아기자기하고 짜임새가 있는 일본 특유의 작은 미를 볼 수 있었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동 사용하고 찬물과 더운 물을 사용하여 무엇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그리고 2층 갑판에는 로비와 식당이 있어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서로 빙 둘러 앉을 수 있는 그런 장소가 준비되었다.
이곳 저곳에 자판기가 있어 일본의 자판기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갑판으로 나와 출항하는 부산항도 보고 외해로 나와서는 출렁이는 파도도 보고 멀리 도시처럼 보이는 밝은 빛을 내는 오징어 잡이 배도 보고, 여러 무리의 한국 꼬마들도 보았다.
둘이서 맥주 한 캔을 각각 사서 먹고 나는 곧 잠자리에 들었다.

  8월 7일
주행거리 ; 78km,  최고속도 36km/hr,  평균이동속도 12km/hr
아주 평탄하고 국도를 따라 자전거길이 잘 발달됨
아침5시경에 눈이 띄어서 밖을 보니 배가 정박을 하고 있었다. 일찍 목욕탕에가서 샤워를 하고 가지고 있던 GPS를 작동을 시켜보는 등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일본식 아침을 시켜먹었다. 식권은 역시 자판기에서 일금 8천원.
8시부터 하선을 한다고 하여, 식사 후에 우리는 곧 제 일 갑판으로 내려가 자전거를
조립하였다.
생각보다 쉽게 자전거가 조립되었다.  우리는 맨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끌고 입국수속을 하였다. 이민국을 거쳐 세관을 지나는데 검역소를 다녀오란다. 자전거 바퀴에 붙은 흙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끌고 하카다 항을 나왔다.
거리는 조용하였다.
GPS를 설치를 하고 지도를 앞 가방위에 설치를 하고 모든 짐은 뒤에 묶고 서서히 출발을 하였다. 아마도 일요일이라서 길에는 아주 드물게 사람들이 있었다.
길거리는 상당히 깨끗하였고 도심의 강물도 수량이 많고 깨끗하였다.
작은 교차로에도 설치되어진 신호등을 지켜가면서 남쪽을 향하였다. 첫 목적지는 光明寺(꼬묘지)로 정원이 좋다고 하여 척 기착지로 하였다. 다이후만궁이라는 커다랗고 오래된 신사의 자매결연 형식의 절이었다.  절은 2000원을 내도록 되었는데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고 앞 정원과 뒷 정원이 모두 좋았지만 기대만큼은 좋지 않았다.
전형적인 일본정원의 양식을 따라 조그만 돌로 바다를 형상화하고 바위로 섬을 연상케 하면서 곳곳에 이끼와 푸른 잔디로 푸르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절은 전형적인 일본가옥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관음보살상에 쇠 지팡이를 직접 들려서 보다 사실화한 것이 다소 중국의 영향을 받은 듯도 하고 돌부처 상에 붉은 장삼을 둘러친 것은 동남아의 영향을 받은 듯도 하여 나로 써는 짐작이 어려웠다.
여기도 관광지의 큰길을 따라 양 옆으로 많은 상가들이 있었다.
상가에서는 다소 전통적인 과자와 당고 그리고 기념품등을 팔았다.
다시 방향을 돌려서 구루메로 향하였다.
중간에 패미리식당에서 첫 일본식사를 하였다.
덴뿌라를 시켰다. 밥과 된장국, 그리고 약간의 반찬과 튀김이 있는 정갈한 식사였고
젓가락만 주고 수저는 없었다. 그리고 목이 말라 많은 양의 찬물을 먹었다.
그리고 1-2시간 마다 편의점이나 자판기에서 식수를 사먹었다. 대개 500ml에 100앤이나 120앤 정도의 가격이었다. 부탁을 하자 가지고 있던 병의 물을 얼음에 채워주는 아주 갸륵한 아가씨였고, 그녀는 기모노를 입고 있었는데 뒤에는 나비모양의 장식을 하고 있었다. 값은 약 1000앤 정도였다.
그 집을 나와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였다.
생각보다 거리가 많이 나가지 못하였다.
양 쪽 길가에는 아주 많은 중고차 시장이 있었다. 일전에 듣기에 일본의 중고차 시장은
야쿠자가 꽉 잡고 있다고 들었다. 헐 값에 차를 매입하고 자기들의 적정가격을 매겨 판매를 한다고 들었다. 아주 다양한 종류의 차들이 전시되었다. 외제차도 많이 있었다. 차 번호판은 자동차 엔진의 크기에 따라 노랑색 판은 경차, 흰 색판은 그 이상의 엔진을 가진 차로 구분되었다.
중간에 Joyfull이라는 가족 식당에서 오렌지 쥬스를 99엔에 사먹고 다시 길을 재촉하였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야나가와에 도착하였다.
거리에는 甲子園(고시엔)고교 야구대회에 야나가와 고교가 본선 진출을 하였다고 경사가 나있었다.
야나가와에 진입하는 곳의 광고판에서 야나가와의 물(柳川之水)라는 간판을 보고 그곳을 찾아갔다. 그 곳은 마치 온천장 같은 인상인데 방이 없었다.
방을 못 얻고 낙심을 하고 나오는데 山室實이라는 고마운 사람이 직접 전화를 하여주어
야나가와의 배타는 곳 근처의 Yanagawa green hotel(73-2125)에 예약을 하여주었다.
다시 야나가와의 역 근처의 green hotel을 찾아가서 9만원에 들기로 하였다.
일인당 4만 오천원. 식사는 없고. 카드는 안 되고 현금으로 지불하였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저녁은 카드를 받을 만한 곳을 찾다가 커다란 집에 들어갔는데 아마도 국수 전문 가족 식당인 것 같았다. 식당에서 메밀소바를 시켰는데 뜨거운 소바와 고기 덮밥이 나왔다.
맛은 대단히 밍밍하고 약간 느낀한 맛을 가졌다. 튀김도 좀 시킬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
그런 곳이다. 이 곳 역시 카드는 안 되고 현금으로 지불하였다.
식사 후에 호텔로 돌아오는 중간에 참새들이 교차로에 정말 새카맣게 앉아있었다.
이 곳에는 새의 도장이라고 몀명된 건물도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 술을 한 잔 하려고 호텔 가까운 곳을 헤매다 한 선술집으로 들어갔다.
이 곳은 약간의 입식 테이블과 좌식 테이블이 있고 조리실과는 좁은 테이블이 있어 손님들이 이 곳에서 술을 먹으면서 담소도 하고 식사를 시키기도 하는 곳이다. 그리고 먹다 남은 술은 이름을 써서 벽의 한 곳에 보관도 하여주는 곳이다. 우리는 가오리 찜을 시켰다.손님으로는 동경에서 온 젊은이(Tsuchiyako)와 노년의 한 사람과 노년인 주인부부가
있었다. 젊은이는 후쿠오카에서부터 걸어오는 도보여행객이었고, 노년의 손님과 주인부부는 야나가와가 고향인 아주 친한 사람들이었다. 주인은 영어를 잘하고 젊은이는 아주 조금 영어를 하는 사람이었지만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學習院이라는 곳을 졸업한 사람인데 이 곳은 황실의 교육기관이었다. 그래서 손님 모두가 일본 황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는데 보통 사람들은 황실의 언어를 모두 이해하고 일본임금만이 톤이 없는 어조로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쓰는 공식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국말을 잘 한다는 한 전형적인 일본인의 모습을 한 노년의 사람이 들어와 합석을 하였다. 주인이 이제는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하니 옆에 있던 노년의 사람들이 같이 노래방에 가자고 하여 망설이는데 주인의 볏짚으로 병을 감싼 술을 “프레젠트”라고 하면서 손님들과 같이 노래방에 가라고 떼밀어서 엉겹곁에 그들을 따라 나섰다. 주위를 돌고 돌아 어느 허름한 2층 집으로 들어갔다. 가는 중에 늦게 온 노년의 남자가 앞서가는 남자의 여자친구가 있는 곳이라고 하여 다소 의아하였다. 좁은 2층 계단을 올라가니 복도가 있고 끝 방에 많은 신발들이 있었다. 방은 아주 넓고 커다란 책상이 있고 양 옆으로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같이 간 사람의 소개로 인사를 하니 얼른 노래방 책을 가져다 주면서 선택을 하란다. 참 난감하였지만 최선을 다하여 곡을 선택하려니까 “돌아와요 부산항”을 부르란다. 이 절까지 부르고 나오면서 참 이상한 노래방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공민관에서 노래방 기계를 가져다 놓고 노래방을 운영한다고 한다. 이 노래방은 양 쪽 창문을 커튼으로 가리고 앞에는 무대도 있고 전면의 양쪽으로는 모니터도 있었다.
우리의 노래방보다는 훨씬 개방적이고 건전해 보였다. 강둑으로 돌아오면서 참 이상한 경험을 서로 이야기하고 호텔로 돌아와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데스크에 동경에서 온 젊은 친구에게 작은 메시지를 남겼다.
이 야나가와의 길은 간간히 보도에 전등불이 들어와 길을 밝히는 방법으로 길의 방향을
제시하는 그런 모양이 참 재미있었다.

8월 8일  오전에는 흐리다가 맑음.
주행거리 ; 95km 최고속도와 평속은 비슷,
약간의고저가 있고 평탄.
구마모도 약 10km전에 심한 언덕이 해안가를 따라 계속됨(5/6)

아침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시간을 보니 6시 30분.
샤워를 하고 아침을 시작하였다.
어두워졌던 거리가 밝게 빛나고 있어 채 선생을 깨워 준비를 하고 내려오니 이미 밝은
세상이다. 이제는 구마모도를 향하여 출발을 하였다.
어제보다는 좀 경사가 있는 길들도 있고 다소 전원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침은 이른 시간이라 아직 개장을 하지 않은 "you me town"이라는 광고판이 있는 아주 커다란 슈퍼마켓에서 빵과 우유로 대신하였다. 잠시 잠시 비가 내리는데 특별히 방수를 할 필요가 없어 계속 진행을 하였다.
이번에는 커다란 간척지로 지도에 표시되었기에 바닷가 길을 택하였다.
즐거운 주행이었지만 노면이 아주 거칠었다. 중간에 낚시하는 노인도 만나 노인을 도와
약간의 낚시도하고, 중간 중간에서 자판기의 물도 100엔에 빼먹고 하면서 남으로 진행을 하였다.
501번 국도 상의 Joyfull restrant에서 나는 튀김 정식을 시켜먹었다.
양도 적당하고 맛도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남으로 진행을 하였다.
중간, 중간에 그 동안의 자전거 주행의 노하우로 동네 속으로 차를 피해 주행도 하고,
길가의 꼬마들이 자기네 집 앞에서 낚시하는 모습도 즐기면서 계속 구마모도를 향하여갔다.
다리를 건너면서 물 속의 고기도 구경을 하고 수질도 눈으로 확인을 하였다. 수질도 좋고 고기의 양도 많은 것처럼 보였다. 야나가와를 출발하여 50-60여km를 진행하고는 해안길이 나왔다. 경사도는 나가사끼 입성시의 경사도를 6/6을 한다면 이것은 5/6으로 무척 힘이 들었다. 이 고개를 넘고 나서 구마모도로 무사히 입성을 하였다. 시내로 들어와서 길을 찾던 중에 길가 코너의 과일가게에서 토마토를 하나씩 사먹으면서 구마모도 성을 가는 길을 물었더니 과일가게 노인 부부는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자전거를 폭염 하에 타고 찾아가니 높은 언덕위에 있고 또 그 것을 관광하는데 만 약 2시간이 걸린다고 하여 옆에 있는 박물관으로 갔다. 가니까 아주 골수 일본인들이 아마도 자기의  역사를 배우는지 아주 조용하고 신사도 같이 있어 그냥 나왔다. 나오면서 티코같은 작은 차에 전화를 하는 남자가 있는데 무슨 여행사에 다니는 사람으로 보여 타츄다자연공원을 가는 길을 물어보니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하였는데 그만 마지막 길은 너무도 높게 표현을 하여 포기를 하였다.
그래서 다음 숙박지인 시마바라에서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호텔을 부탁하니 그냥 어렵다고만 하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언덕위로 올라와 자전거의 짐을 정리하는데 그 남자가 다가와서 전화를 바꾸어주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 나에게 연결을 하여준 것이다. 너무도 고마웠다. 나의 이야기를 하니 전화번호를 준다고 하나 그의 발음 역시 부정확하여 확실을 기하기 위하여 그 남자에게 전화를 돌려주니 전화번호를 메모를 하고 시마바라까지 통화를 하여 방을 예약을 하여주었다. 이렇게 아무 이득도 없는 사람에게까지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만나고 나니 사무실에서 나를 찾아온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람보다 더 진심어린 친절을 베풀어야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다시 방향을 꼭 가야만 하는 스이젠지죠엔(水前)공원으로 향하였다.
많은 질문과 현답으로 겨우 수전공원의 앞에 도착하니 자전거는 정문 앞에 거치를 하고 들어가는 곳이었다.
륙색을 메고 앞 가방을 메고 들어가서 물 한 병 사먹고 힘 좀 내려고 그늘 밑에서 쉬었다가 너무 뭉겨대면 훼리를 타지 못할 것 같아 부랴부랴 한 바퀴를 돌다, 호수 건너편에서 냉말차 한 잔과 당고를 먹고 다시 힘을 내어 걷어서 자전거 앞으로 왔다.
이제는 시간 내에 구마모토 항에 도착하는 것이다. 시내 자전거 길을 아주 빠르게 달려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진행을 하였다. 가는 도중에 철길을 건너 기다리는데 채 선생이 안와서 되집어 가니 큐슈 안내 책을 분실하였단다. 다시 되집어 오던 길을 갔다 왔으나 찾지 못하여 다시 속도를 내어 구마모토항을 향하여 달렸다. 가는 도중에 스넥집에서 메론쥬스를 한 잔 마시고 달리다가 채 선생이 너무 힘들어해서 끈으로 묶었지만 풀어져서 이래저래 고생을 하다가 나만 먼저 항구에 도착하니 6시 10분. 문이 닫히고 다음 배가 7시 10분이라서 겨우 물어물어 페리에 타는 순서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페리의 값은 차의 크기와 관계가 있어 자전거는 맨 우측에 제일 먼저 승선을 하고 그 다음은 작은 차 다음은 더 큰 차 순으로 승선을 하였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뽐아 들고 배의 뒷전으로 갔다.
채 선생이 우측 무릎이 너무 아프다고 하여 더 이상의 여행은 무리이고 또한 나와의
여행자체도 좀 무의미해 보였다. 그래서 시마바라에서 헤어져 둘이 따로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시마바라에 도착하여 코우키엔 호텔에 들어가 방을 배정 받고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오니 이미 9시가 가까웠다. 호텔 가까운 곳에 선술집에 “장병대장“이라는 선술집이었다. 이 집에서 명란 젖을 진미라고 하면서 한 쪽을 맛보았다.
이 곳에는 한국사람들이 많이 다녀가서인지 우리나라 말의 메뉴도 있었다. 나는 대장 라면을 시켰다. 점차 옆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작하고 주인 내외의 합석으로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게 이어가다가 12시가 넘어 졸리기도 하여 호텔로 돌아왔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무척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주인집의 조언으로 운젠으로 가는 것은 포기하였다.

8월 9일 맑음
주행거리 ; 94km, 최고속도 46km
상당한 고저가 있었지만 나가사끼에 진입하는 32번국도의 마지막 2km (6/6)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한 번 온천을 하고 일본 잠옷을 입고 호텔 내를 다녔다.
식사는 호텔에서 먹었는데 우리 옆에 한국 사람들이 여행박사라는 카페의 사람들이 있어 채 선생의 JR pass구입에 대하여 물었지만 쓸데없는 조언을 하여 마음만 상하였다.
외국에서 만나는 한국 사람의 숫자는 나의 경우는 적지만 간혹 이렇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다. 식사 후에 은행을 찾아 현금을 지급받으려 하였으나 실패하여 물어 물어서 우체국을  찾아가서 성공적으로 돈을 인출하였다. 돈을 일부 나누어서 채선생과는 헤어져 나가사끼 방향으로 길을 들어섰다. 신설된 도로인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오르막(5/6)이었다. 약 한 시간을 허비하고 거의 10시 반경에 해변가 도로를 선택하여 서쪽으로 진행을 하였다.
우측으로는 바다가 그림처럼 보이고 고즈녁한 동네들이 올망졸망한 것이 꼭 우리나라의
어촌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리도 한적하고 평화로운 사람들이 어찌 온 아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하였을까 하는 생각과 일부의 잘못 된 야망을 가진 자들의 횡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처음 몇 시간은 혼자 달리는 것이 많이 힘이 들었다. 거기에다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와 갈 길을 더욱 힘들게 하였다. 옆을 달리는 커다란 화물차가 다른 날과 다르게 나에게 역풍을 주는 것 같았다.
有明町근처에서 長崎淸水라는 휴게소를 발견하였는데 다소 높은 곳에 위치를 하고 있어 갈까 말까하다가 목도 마르고 피곤도 하고 배도 고파 휴게소로 올라갔다. 자전거를 세우고 안을 들여다보니 점심도 가능할 것으로 보여 짐을 정리하고 들어갔다. 마치 우리나라 토산품 전시장 같은 형태로 남여가 어묵을 튀기고 있는 코너가 있고, 한 편에는 채소와 과일과 과자를 팔고 있는 곳이 있었다.
어묵 3개와 거봉 포도를 한 송이 사니 덤으로 어묵을 다시 하나를 주었다. 물을 사서
어묵과 같이 먹고 포도는 씻어 먹어야 되냐고 흉내를 내니 한 아주머니가 씻어주었다.
다시 힘을 내어 길을 재촉하였다. 아침에 돈 문제로 늦어졌고 또 산을 잘 못 올라가 늦어진 시간을 보충하려면 좀 더 속도를 올려야 되겠다고 생각은 드는데 몸은 천근이다. 조그만  역을 지나니 다시 도시가 시작되는데 여기서 여학생이 선두를 맡은 대학생 투어팀을 만났다. 짐이 한 짐이고 텐트며, 반짝이는 자리등을 뒤 짐칸에 잔득 싣고 양 옆에는 페니어를 달고 손짓을 해가면서 지나간다. 멀어져가는 그들을 쫒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단지 나의 페이스를 지켜서 나의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중간 중간에 일본 사람들은 임금이라는 御자를 접두사로 참 많이 쓴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사하야를 지나면서 부터는 도시의 연속이다. 우측으로 가면 보다 쉬운 완주를 할 수 있지만 오늘은 나가사끼를 가서 원폭의 폭심을 보아야 하니까 나는 반드시 이 좌측 길로 들어서야 했다. 큰 파도가 오기 전에 잔잔한 파도가 오듯이 언덕이 점차 높아지면서 고도와 경사도를 높여간다.
이제는 산꼭대기로 지나는 고속도로도 보이고 멀리 안경처럼 터널의 입구도 보인다.
밑에서 보니 참 높다는 생각과 중간에 터널이 있겠지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끝없이 계속되는 오르막, 오르막, 오르는 중간에 할리데이빗이라는 오토바이 가게도 보고 아주 영어가 좋은 일본 아저씨도 보고 아주 친절하여 일본 말로만 설명을 모두 하는 할아버지도 보면서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정말 길고 힘든 언덕이다. 중간에 2-3번은 내려 걸었다.
이제 해도 아주 성한 더위를 조금은 감추는 4-5시경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터널의 입구.
rear light도 장착을 하고 앞의 LIGHT도 준비를 하고 마스크도 쓰고 그리고 옆의 좁은 길을 따라 달렸다. 차들의 소음이 정말 굉장하여 항상 윙윙하는 소리가 나의 귀전을 맴돈다.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게 어둠에서 보이는 터널의 입구는 정말 광명으로의 입구였다.
이제부터는 올라올 때의 모든 힘듬을 보상 받는 시간인 내리막이다. 거진 몸이 45도 기울려지는 느낌으로 언덕을 내려왔다.
이제 나가사끼.
궁금하던 “喫茶“라고 쓰여 진 다실을 찾아 들었다. 정갈한 내부에는 담배냄새가 나고 나이 많은 할머니 혼자 모든 것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스 녹차를 한 잔 먹고 워싱턴 호텔을 물어보니 역시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아마도 이 길로 계속가라는 뜻일 게다. 그 집을 나와 둘러보니 GRAND HOTEL이 있어 찾아가니 도어보이가 마중을 하면서 메니져를 데려왔다.
메니져 말이 여기는 싱글에 30만원 하는데 자려고 하느냐 하기에 다른 방은 없냐고 물으니 콤포트 호텔을 가르쳐 준다. 찾아가보니 Business Hotel로 하루에 5만원 아침 포함이었다.
무척 피곤하여 샤워를 하고 바로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시간이 저녁 9시 정도가 되었다.
밖으로 나가 나가사끼항으로 발길을 옮기니 많은 요트가 정박하여있고 커다란 목선이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그 앞에서 생선 알이 많이 있고 밥이 있고 회가 있고 된장국이 있는 것을 시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할 일 없이 근처를 어정대다가 피곤도 하여 호텔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졌다.

8월 10일 흐리고 소나기 2시간 후 맑음
주행거리 ; 112km
나가사끼를 벗어나기 위한 고개(2/6)
時津町중간에 고개(2/6)
나가사끼 골프장 근처의 해변가 도로 언덕(3/6)
서해대교 지나 32번 국도 초입의 언덕(3/6)
이마리시 중심을 벗어난 202번 국도의 시작(3/6)
가라쓰 들어가기 전 삼거리앞의 고개 (3/6)

아침에 morning call을 6시 30분에 맞추어 제 시간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짐을 꾸려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사는 간소하여 빵 3개와 커피와 약간의 과일로 식사를 하고 짐을
꾸려서 출발을 하였다. 즐거운 여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름도 있고 약간의 평지로 되어있어 콧노래를 부르면서 평화의 공원에 도착을 하였다.
원폭 투하 중심에는 검은 돌로 약 10여m의 기둥을 세웠다. 어제가 기념일이라 많은 행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 검은 돌의 기둥 뒤로 약 4줄의 대나무 자리 비슷하게 만든 높이 약 1m의 조그만 나무 조각들에 많은 사람들이 “세계평화” “전쟁반대” “일본 평화” 등등 속에
“한국 평화”라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신이 난 국가는 아마도 독일이 아닌가 싶게 많은 독일 말이 있었고 세계의 많은 말들이 거기에 쓰여 있었다. 원폭심의 우측으로 파괴되고 남은 교회기둥이 있었다. 기둥의 끝에는 성자들이 성경을 들고 설교를 하는 모양으로 2-3 사람의 상이 남아있었다.
서양에서 이렇게 좋은 종교를 보냈으면서 원폭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나가사끼인가.
베를린이면 어떨까?
911테러에서 죽은 사람은 약 5천명이라면 여기에서 죽은 아무 뜻 모를 수만의 일반 사람들의 죽음은 무엇인가?
여기서 죽은 우리나라 사람의 죽음은 왜 이야기 되지 못했는가?
우리나라의 전후의 보상은 왜 쉽사리 미국의 생각으로만 결정되어야 하는가?
등등이 아시아인의 한 차원 낮은 대우를 생각하게 된다.
납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평화의 공원을 나섰다.
다시 시작되는 여정이 오르막으로 시작이다.
한참을 달리다 GPS와 지도의 방향이 달라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잘 못 왔단다.
30분을 올라왔는데.....
다시 내려오는데 기분은 영 나아지지 않는다.
제 길을 찾아 나가사끼를 벗어나니 해안의 길이 아주 신선하다.
다시 몇 번의 자판기에서 물을 사먹는데 약간의 비가 내려서 GPS를 비닐 조각을 주워서
싸고 길을 재촉을 하였다. 다시 길가에 채소와 과일을 파는 가게에 들어가 거봉포도를 300엔에 사서 씻어 달래 먹고 물도 한 컵 얻어먹고 시원한 실내에서 먹고 있으니까 할머니가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 것 같은데 잘 못 알아들었다. 며느리는 한국말을 배우는 사람이라 몇 마디 한국말을 하였다. 아주 편하게 쉬다가 길을 나섰다. 좀 지나니까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여 바로 우장을 장만하여 짐을 싸고 앞 페니어를 우비로 싸고 나도 우비를 입고 출발을 하였다. 우중 주행도 무척이나 즐겁다.
다소 지루하고 혼자 달리는 길이라 고독도 느껴졌다.
그래서 전화를 찾았으나 전화를 하지 못하고 계속 진행을 하였다.
여기저기의 풍경들이 무척 좋아 보인다. 다도해처럼 가까이에 작은 섬들이 한 폭의
그림이다. 하지만 고개만 나오면 영 힘이 들어 풍광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 그림같은 서해대교에 도착을 하였다.
검푸른 바다가 아주 세차게 흐르는 듯이 보이고 아주 높이 아치형의 다리가 걸렸다.
정말 그림이다.
대교의 끝에 한 식당을 찾아서 회 정식을 1200엔에 먹었는데 무척이나 맛이 있고 음식을 나르는 주인집 꼬마 딸이 너무 귀여웠다. 아마도 3-4학년 정도의 꼬마였다.
식당을 나서니 다시 목이 마르고 힘이 들기 시작하였다. 처음 계획한 곳은 자동차 전용이어서 202번 국도를 타기 시작하였다. 다시 높은 고개를 넘자 아리타로 들어왔다.
아리타 도자기 상점을 들렸지만 선택을 할 수 없어 다시 이마리로 향하였다.
이제는 조그만 언덕도 쉽게 보이고 다리에 탄력도 꽤 있어 주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간간히 마음의 외로움은 파도처럼 몰려왔다. 이마리에 도착하여 도자기 집에 들어가서 원하는 패턴을 찾았지만 못하였다. 조그만 소품을 몇 개 사서 다시 길을 나섰다.
카라쓰 28km.
이제는 카라쓰가 목표이다.
지금부터는 주위의 정경이라든지 마음의 평정보다는 훨씬 육체적으로 인정 할 수 있는
거리가 있으니 달리는 것만이 나의 일이었다. 힘들면 천천히 달리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최대로 페달링을 하여 가라쓰에 좀 더, 좀 더, 다가갔다.
이정표의 거리가 점점 줄어가면서 해는 점점 기울고 나의 다리는 점점 빨라지고
이렇게 모든 것이 하나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겨우 해지기 전에 준비한 rear light도 사용하지 않고 바로 가라쓰의 찍어놓았던 송림 사이의 호텔을 찾았다. 찾는 중에 눈에 띄는 여관.
언젠가는 경험하려 하였던 일본의 여관 문화.
처음 여관은 장사를 오늘은 하지 않는다고 하고 두 번째 여관도 마찬가지라서 실망을 하고 돌아서다 길에서 자전거를 세차하고 있는 부녀를 만나 물어보니 역시 일본 말로 설명을 하는데 나 또한 우리나라 말로 열심히 다녀왔음을 이야기하자 그는 그의 딸에게 나를 데리고 그 여관을 가르쳐주라고 하는 것 같았다. 꼬마와 같이 高木여관으로 가서 인터폰을 누리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오늘은 장사를 안 한다고 다른 여관으로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골목을 몇 개 돌아 도착한 곳은 洋洋閣(요우요우카우)로 내가 가 보고 싶어하던 바로 일본 여관이었다. 꼬마가 들어가서 주인을 찾자 여자 주인이 나와 나를 맞았는데 그는 바로 남자 주인을 불렀다. 이렇게 해서 재미있는 일본 여관생활이 시작되었다. 주인의 이름은 오오코오치 아키히코로 71세된 건강한 남자이고 부인은 이름은 모르고 나이는 64세였고 영어를 전공하였단다. 자전거를 그들이 사는 본체의 현관에 세우고 짐을 들고 대청으로 나오니 시원한 오차를 한 잔 가져다 주어 마시면서 하루의 숙박비와 카드의 사용에 대하여 물었다. 하루에 1.5만엔이고 카드 사용가능하다고 하여 묵기로 하였다. 세금은 5%를 안받기로 하였다. 나의 방은 2층이고 방은 응접실 비슷한 방에 의자와 탁자가 있고 옆으로 유리창이 있고 4쪽 미닫이를 경계로 다시 커다란 앉은뱅이 탁자가 있고 탁자 위에는 두 종류의 녹차(하나는 보통 녹차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짙은 녹색의 녹차)통과 다기세트와 얼음물이 담긴 보온병과 탁자 아래로는 뜨거운 물이 담긴 커다란 보온병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 과자가 다기 옆에 있었다.
장식으로는 한 면에 옷을 걸 수 있는 붙박이장이 왼편으로 있고 정면에는 TV 수납장이 붙박이 장 형식으로 있고 옷장 밑에는 전화가 있고 우측 밑에는 유카다를 담은 상자와 재떨이가 있고 바닥은 다딤이방으로 되었다. 현관은 신발을 벗는 조그만 공간이 있고 나머지는 다딤이로 덮여있었다. 방과 방의 모든 구획은 미닫이로 되었다. 화장실은 따로 공간이 있고, 욕실은 조그만 창을 열 수 있게 되었는데 조각유리로 구성이 되었다. 욕실에는 깊은 개인 욕조와 나무로 만든 조그만 물통과 의자가 준비되었고, 욕실은 화장실과 거울이 걸려있고 화장품이 있고 칫솔, 치약, 브러쉬, 등이 있는 방과 각각 연결되었다. 일단 모든 것은 우리나라 좋은호텔 정도의 수준으로 치장이 되었다. 일단 짐을 방에 부리고 일본 옷을 입고 공동욕실로 갔다. 공동욕실 역시 깨끗하고 정갈하여 마음에 들었다. 욕탕은 자꾸지까지 준비되었고 창밖으로는 밖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었다.
방으로 돌아오니 식사를 준비하였다. 종업원은 중년의 아주머니로 일본 쟁반에 공기와 된장국과 몇 가지 반찬이 있고, 찬 국물에 어묵덩어리가 해초와 같이 있는 국이 있었고  밥은 따로 조그만 나무그릇에 담아 와서 퍼주었다. 물론 생선회도 같이 나왔다 아마도 순서는 찬 음식, 더운 음식, 그리고 후식으로 이어진 것 같아 보였다. 순서에 따라 먹었는데 밥을 하도 빨리 먹어서 한 번 더 밥을 담아왔다. 무척 맛있게 먹었는데 특히 오메보시와 나나스끼가 아주 맛있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김치가 집집마다 다르듯이 이런 밑반찬이 집집마다 특색이 있었다. 식사 후에 여관주인의 초대로 그 집 대청에서 맥주를 마셨다. 한데 집주인이 폼을 잡는지 맥주종류를 대면서 순한 것으로 할 것인지. 찬 것으로 할 것인지, 검은 것으로 할 것 인지 등등을 자꾸 물어서 난 술을 못하기에 아무거나 좋다고 하여서 아시히 맥주를 마시기로 하였다. 역시 좀 세상 물을  좀 먹은 사람은 다소 격식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늦게까지 옆에 있던 오오사카에서 온 젊은 사람도 같이 이야기를 하다가 12시경에 방으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졌다.

8월 11일 맑음
주행 ; 27km
골프장 가는 길 : 끝까지 오르막 (6/6)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9시에 식사를 약속하여 혼자 식당을 찾아가니 내 밥상만
있었다. 종업원의 안내로 내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니 저녁보다는 조금 간소하지만 밥과 국과 반찬과 생선구이가 나왔는데 아마도 일본 사람은 전갱이가 무척 귀한 음식인가보다.
식사 중에 주인 남자가 들어와서 내 옆에 앉아 말동무를 하여 주었다. 이야기 중에 골프장이야기가 나와 이 참에 일본에서 골프를 한 번 치는 것도 좋을 듯하여 골프장 부킹을 부탁하니 바로 여기 저기 전화를 하여 골프채까지 빌려주겠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전거에 이 모든 것을 싣고 가기는 무리라 여겨 긴 양말만 빌려서 치기로 하였다. 골프장으로 가기 전에 빨래를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었다. 여관을 나와 가라쓰 성을 지나 32번 국도로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언덕이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겨우 골프장에
도착하여 프론트에 가니 거기 있던 종업원이 “자전거 타고 온 한국 사람이냐?”면서 무척 호들갑을 떤다. 장갑사고, 긴 티, 짧은 티 사고, 클럽과 신발 빌리고 나니 이제는 퍼팅 연습을 조금은 해야 될 것 같아 약 15분간 퍼팅 연습을 하였다. 카트는 클럽만 싣고 페어웨이도 갈 수 있고 골퍼는 걷는 그런 제도였다. 코스는 생각보다 쉬웠다. 캐디는 green fee에 포함되어서 10만 3000원정도이고 화, 목요일에는 점심까지 준단다. 캐디는 각 그린에 대한 지도를 가지고 있어 플레이에 훨씬 도움을 주었다. 말은 안 통하지만 거리는 숫자를 써서 나에게 이야기 하고 그린은 나에게 그림을 보여주어서 무척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런 것은 우리나라도 좀 도입을 하지.... 한 번 들린 그늘 집은 60엔부터 200엔까지로 우리나라에서는 냄새만 맡아도 3000원이기에 참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전반 라운드는 6개 오버했는데 후반 들어서는 코스가 너무 정확도가 필요해서 18개를 오버했다. 후반 코스는 일본인가 큐슈에서 3번째로 오래된 코스로 한 사람이 완전 핸드메이드로 만든 후 국가에 헌납을 하여 전후 시에서 멤버 쉽으로 전환하여 2억원까지 올랐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가까이에 있는 호텔에서 사서 경영을 하는 그런 골프장인데 현제 회원 가는 2천만 원 정도 된다고 한다. 후반은 피곤도 하고 집중력도 떨어져서 다소 힘든 플레이를 하였지만 조경이나, 만든 사람의 공을 느껴보려고 노력을 하였다. 전, 후반이 끝나고 클럽과 신발을 반납하고 앞 페이어를 달고 다시 되 집어 여관으로 왔다. 하루 종일 재미있고 즐거운 하루였다.
여관에 도착하여 공공 욕실에 샤워를 하다가 오오사카에서 온 오봉축제를 즐기려는 사람을 만나 일본의 “오봉”의 의미와 하는 시기 등에 대해 배웠다. 샤워 후에 여관 주인이 저녁은 요우요우카쿠의 사부사부가 어떠냐고 하기에 좋고 이따 저녁 6시 30분에 먹기로 하였다.
방으로 올라가 고시엥 고교 야구를 보았다. 예선전에서 진 팀은 공을 서로 주고받는 연습을 하다가 구장의 흙을 자루에 담는 것을 보았다. 울면서.... 조그만 감동이 마음에 파문을 만든다. 잠깐 낮잠을 자고 6시 30분에 내려가니 사부사부가 이미 준비 되었다. 그리고 레드와인도 한 병 준비를 하였다. 물을 끊이고 야채를 시작으로 사부사부를 먹었는데 여관주인과 무척이나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야기의 화재는 무궁무진하여 끝없이 이어졌다.
심지어는 동양의 음양오행설에 대하여도 이야기를 할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나중에는 노래방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노인이 전화로 차까지 불러서 아주
곤혹스러웠다. 하지만 너무 취하여 갈 수가 없어 나는 바로 내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아주 깊은 잠을 잤다.

8월 12일 맑음
주행거리 ; 61km  
아주 평탄하고 해안가 길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곳

잠에서 일어나니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인기척이 있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식당을 가니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선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였다.
짐을 정리하고 내려오니 많은 사람들이 체크아웃을 한다.
그리고 어제 골프채를 빌려주려 하였던 사람도 만나 인사를 하고 카드와 현금으로 결제를 하니 방명록을 가지고 와서 보여주니 우리나라 사람도 3 팀정도가 다녀간 여관이었다. 나도 한마디 쓰고 자전거를 정리하고 주인 내외에게 인사를 하고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후쿠오카로 향하였다. 소나무 숲을 지나면서도 즐겁고, 해안가를 달리면서도 행복하고,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이 발걸음을 더욱 싱싱하게 한다.
이 해안가 도로는 거진 후쿠오카를 다가서 까지 계속되었다. 이제는 지도도, GPS도
필요 없이 그저 해안가를 달리면 되는 것이다. 며칠 전의 외로움은 모두 없어지고 완주의 기쁨이 나의 발을 더욱 경쾌하게 한다. 어느 조그만 해안 동네를 지나는데 정말 많은 개인 소유의 보트가 정박되어서 많이 부러웠다. 후쿠오카 경계를 지날 때는 한 손을 높이 들고 파이팅을 외쳐보기도 하였다.
정말 내 자신의 건강이 장하고, 내가 이렇게 여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자랑스럽고, 또 내가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게 허락한 아내가 고맙고 아무튼 다른 때와 달리 나의 모든 것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GPS의 궤적이 다시 제자리로 오는 모양을 한다. 후쿠오카 항을 찾아가는 길은 정말 어려웠다. 생선 썩는 냄새가 나는 어시장도 관통을 하고 작대기 하나들고 중국 영사관과 우리나라 영사관의 경비를 서는 일본 경찰의 모습에서 일본의 다른 모습도 보고 하도 배가 고파 허름한 식당에 들었는데 내부는 그렇게 부산한 식당의 면모도 다시 보고, 짜우짜우면이라는 것을 600엔에 사먹었지만 참 맛이 없었다. 그리고 굉장히 궁금하였던 key coffee라는 커피 집은 상상과 다르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우리나라 다방의 일종이었다. 민지맘 카페의 욱칠팔구님과 연락이 되어 하카다역을 찾아 나섰다. 무척이나 오래 걸려 하카타 역 근처에서 park hotel를 못 찾아 나이든 안내라는 완장 찬 사람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다고 하카타역내의 information으로 데리고 가 영어를 하는 사람을 소개 해주어 겨우 park Hotel을 찾아갔다. 길거리 모퉁이에서 다시 전화를 하여 육칠팔님의 안내로 민박집으로 들어가, 시원한 꿀차 한 잔 얻어 마시고  지도 한 장 얻고 바로 나와 캐널시티라는 곳으로 갔다. 그 곳에서 자전거를 끌고 다닐 수 있는 캐리어를 하나 사고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피곤하여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I look for Hakata stattion."하는 여자 둘이 물어 와서 내가 “me, too."하면서 낄낄거렸다. 두 여자는 직장인인데 2박 3일로 일본을 여행 중이란다. 돌아오니 채 선생을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6시 반에 다시 육칠팔님의 사무실로 가서 가까운 식당에 가서 튀김, 메밀 소바, 꼬치와 약간의 술을 마시고 다시나와 후쿠오카의 환락가를 가서 길에서 한국여자가 호객을 하는 것도 보고 많은 술집을 구경하였는데 많은 여행 중에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무척 힘들었다. 돌아오는 중에 선술집에서 라면하나 사먹었는데 옆에 있는 두 여자가 한국 사람이란다,. 참 한국사람, 많기도 하다. 돌아와 씻지도 못하고 바로 누워서 깊은 잠을 잤다.

8월 13일 맑음
오늘은 귀국 날이다.
아침 7시경에 일어나 샤워하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다른 한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은
어제 일본에 온 사람이란다. 주인에게 돈을 5천 엔을 지불하고 하카타 항을 향하여 출발
하였다.
길은 역시 어려워....
겨우 물어물어 도착하니 약 40분의 여유가 있었다.
이제는 자전거 분해는 도사니까 바로 분해를 하여 카트에 싣고 승선수속을 하고 나니 배가 고파서 스넥에 가서 나는 정식을 먹고 채 선생은 김치가 있는 다른 음식을 시켰다. 시키는 도중 옆에 있는 우리나라 말을 아주 잘하는 여자를 만났다. 이름은 “아가”라고 하고 중국에서 일본어 선생을 회사내 학원에서 강의를 하는 여자인데 우리나라에도 약 2개월 살았단다.
그래서 이렇게 셋이 승선을 하고 부산에 내려 채 선생이 좋아하는 한국음식을 위해
조기매운탕을 3인분 먹고 새마을에 올라 대전에 도착하였다. 출구가 복잡해서 대전 역 광장으로 갔다가 다시 동 광장으로 가려는데 아내를 출구에서 만나 집으로 오는 도중에 선우 횟집에서 전어 회와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일본 자전거 여행은 이렇게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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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e7
2005.09.21 조회 1763
dslee
2005.09.20 조회 2565
firstpic
2005.09.04 조회 3000
chongdy
2005.09.02 조회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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