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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다시 가본 추억의 강촌 첼린지 코스

우에사카2005.08.29 18:12조회 수 2591추천 수 4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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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딩이나 여행이나 떠니기전에 다가오는 설레임은 정말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동안 서울 근교에서만 움직이다가 오랜만에 강촌 첼린지 코스를 다녀오기로 했다.
많은 인원이 아니어도 조촐하게 둘이서 떠나는 라이딩이 때론 더욱 낭만적일 수 있다.
2005년 8월 27일 아침 7시 드디어 강촌을 향해서 출발이 시작되었다.
내 잔차는 앞바퀴를 분해해서 뒷 좌석에 실고 산안타님의 잔차는 앞뒷바퀴를 분해해서 트렁크에 구겨 넣었다. 이른 토요일 아침이었지만 춘천이나 양평으로 달리는 순환도로의 정체는 짜증을 나게 했지만 강촌으로 향하는 마음은 나나 산안타님이나 애들처럼 들떠 있었다.
한낮의 따가운 햇살을 예고라도 하듯이 안개가 자욱한 경춘가도는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강에서 피어오르는 새벽 안개는 오래 전에 양수리에서 보았던 그 안개 였다.
이제 40을 훌쩍 넘어버린 나이였지만 강촌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속에는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루 하루 다르게 변모하는 시간의 흐름은 가을을 재촉하고 있었다.
들녘으로 보이는 벼이삭의 누릇누릇함과 수수의 무거운 고개가 가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강촌에 들러 주차 후 간단히 해장국으로 배를 채운 후 잔차를 조립했다.
출발은 시간은 정각 9시 였다.





경춘가도에서 강촌으로 이어지는 다리와 강촌 철교는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나를 반겨 주고 있었다. 멀리서 강하지는 않았지만 희미한 햇살이 우리의 등뒤에 다가왔다.
낯익은 강변 잔차 도로를 타고 경강역 쪽으로 향했다.
비가 그친지 얼마 되지 않아 산비탈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잔차도로 군데군데에 고여서 마주오는 바람과 함께 등줄기를 시원하게 해주었다.



확 뚫린 잔차 도로를 9킬로 정도 달리다가 체린지코스로 가기 위해 좌측 길로 접어들었다.
좌우로는 산이 병풍처럼  우뚝 서있었고 시골의 한가로운 모습과 들녘의 너그러움이 동안 찌들었던 나의 마음을 잠시나마 정화시켜 주는 듯 했다.



처음 이곳을 왔을 때 그리도 멀어 보였던 길이었건만 오늘은 너무나도 짧은 거리였다.
우측으로 첼린지코스가 시작되는 안내지도가 보였다.



시골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풍경이 눈에 펼쳐졌다.
산밑 햇살이 잘 비치는 곳에는 집이 서너채 놓여있었고 전과달리 입구가 포장이 되어있었다.
마을 지나 업힐이 시작된다. 바로 이곳이 도치골이다. 어떤 이유에서 도치골이라는 이름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도치골을 향해서 업힐을 해야만 했다.



3년 만에 밟아보는 임도가 나를 반갑게 반겨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다가오는 자연의 숨결이 나와 함께 교감하고 있었다.
인간의 손이 닫지 않는 한 자연은 변함이 없었다.
언제가 이곳도 사람의 손길에 파헤쳐져 건물이 들어서고 황폐한 모습으로 변모할지도 모른다. 오늘 라이딩은 관광모드로 산안타님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면서 업힐을 시작하였다.
천천히 주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오르기 시작했다.
산새들의 노래와 우리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오는 산속은 고요가 감돌았다.
좋은 임도가 계속되다가 약간 가파른 곳에는 빗물에 드러난 작은 돌과 빗물에 의해 움푹 파인 도로가 놓여 있었지만 3년의 세월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을 쉽게 올라갈 수 있게 해주었다. 잔차에 입문하여 처음으로 임도를 탔던 곳이 이곳이 아니던가?
그렇게 어려웠던 길이 오늘은 힘들지 않았던 이유는 3년이란 시간속에 훈련이 되었던 모양이다.

햇살이 내리쪼이는 길에 무언가가 휙 지나갔다.
뱀이 었다. 아주 작은 무서운 독을 가진 살모사였다. 본능적으로 내려서 잔차 바퀴로 뱀을 눌렀다. 순각적으로 죽이고 싶었지만 자연의 일부인 뱀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
산안타님은 뱀을 보자마자 멀리로 달아나 버렸다.
나는 뱀을 놓아주고 다시 정상을 향해 패달질을 하였다. 굽이굽이 돌아서 이어진 길은 금방이라도 정상일 것 같았지만 정상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얼마를 더 가다보니 처음 왔을 때 보았던 첫 번째 정상의 소나무가 팔을 쫙 벌리고 커나란 그늘을 만들고 늠름하게 서있었다. 누구나 이곳에 오면 한번쯤 쉬어 가는 곳이었다.
우리도 그곳에서 목을 축인 후 기념 사진을 찍고  다시 한치 고개를 향해 달렸다.
아마도 이곳 소나무가 있는 정상이 도치고개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다. 아주 빨리는 아니어도 시속 20킬로 이상의 다운힐은 업힐을 보상해주었다. 산안타님은 뒤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말을 타고 달리며 외치는 인디안 들의 환호성처럼 우리의 소리는 산 계곡을 타고 멀리로 퍼져 나갔다. 좌우 전후를 둘러 봐도 산밖에 없다.









많은 시간동안 내리막은 시작되었고 이제 한치고개가 바로 눈앞에 보였다.
한치고개를 오르기전에 잔디가 이쁘게 깔려있는 자리에서 앉아 가져온 행동식을 먹었다.
빵과 과일이 정말 꿀맛이었다. 벌써 한시간이 흐른 듯 하다.
대회가 아니었기에 죽기살기로 달릴 필요가 없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놓치며 바보처럼 달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요기를 마친 후 다시 한치 고개를 향해서 패달질을 하였다.
그전에 한치고개는 상당히 가파른 것 같았지만 오늘 다가오는 한치고개는 서울 근교의 임도와 다를바가 하나도 없었다. 별로 힘들지 않고 한치고개에 올랐다.



산안타님은 자갈에 의해서 미끄러져 두 번정도 내렸다 올라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상에서 남들처럼 산안타님도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가정리 쪽으로 내리막길을 달렸다.
한치고개 내리막의 칼돌도 오늘은 아주 잘 닦여져 있었다. 오히려 내려갈수록 빗물에 돌출된 작은 칼돌들이 잔차를 가로 막았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임도를 비켜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이었다. 나는 흐르는 물에 손을 담궜다. 정말 맑고 차가웠다.
얼굴에 물을 껴 얹었다. 갑자기 물장난을 치고 싶었지만 갈길이 있어 다시 잔차에 몸을 실었다. 다시 내리막을 달렸다. 어느 정도 달리다 보니 가정리 마을이 시작되었다.



밤나무에는 아직은 일렀지만 탐스러운 밤송이가 열려있었다.
3년전 이곳에 올 때는 밤송이가 벌어져 밤알이 길에 흩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들녘에는 드문드문 늙은 모습의 할머니들이 보였다.
정말 시골 생활에 찌들어진 모습이었다. 사방은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만 둥그렇게 뚫린 이곳에서도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아버지의 모습과 흡사한 모습들이었다.
마을을 지나서 곧바로 직직하면 홍천강이 나온다.
첼린지 코스는 마을을 끼고 좌측으로 향한다.



산속에서 흘러오는 개울은 물이 많아서 굉음을 내며 흘러내린다.
이곳을 향하다 보면 개울을 두 개 건너야 한다.
하지만 첫 번째 개울은 언제 놓여졌는지 다리가 놓여져 있었다.
하기야 이곳 산골에 사는 사람들도 편리한 생활을 해야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다리를 지나 계곡으로 약간의 오르막은 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는 길이었다.
하지만 3년 전 이곳도 우리에게는 꽤나 힘들었던 길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부터 오르막은 구곡폭포 주차장으로 가기위한 봉화산 정상 길이다. 가파르지 않지만 끝없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좌측 계곡에는 물이 많아서 웅장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린다. 이곳은 칡이 많이 자생하고 있다. 보랏빛 칡꽃이 예쁘게 나를 반겨 주었다. 나는 산아타님을 등뒤에 두고 고개를 숙인 채 봉화산 고개 정상을 향해 패달질을 하였다. 남서 방향에서 다가오는 햇살이 제법 따갑게 느껴졌다. 머릿속과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오히려 흘러내리는 땀이 좋았다. 동안 찌들었던 몸과 마음속의 모든 것을 토해버리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다. 이름 모를 생명체들의 움직임이 주변에서 들려왔다. 산은 고요하면서도 온갖 생명체가 서식하고 있었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는 우주의 한 공간에서 많은 생명체와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얼마를 올랐을까? 굽이굽이 돌아서  고개 정상에 올랐다.
잔차에서 내렸다. 산아타님을 불렀다. 한참 아래에서 계곡사이로 소리가 들려 왔다. 10분 정도 지나자 산안타님이 가쁜 숨을 토하면서 올라왔다. 자전거를 내 팽개치고 풀숲에 누워버렸다. 아마도 여자로서는 힘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지간한 남자보다는 훨씬 더 나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정리에서 봉화산 정상 고개까지 올라오면서 두 번 내렸다니 말이다.
남은 행동식을 먹어치은 후 잔차에 몸을 실었다. 이제 부터는 구곡폭포 주차장까지는 내리막이다. 정말 좋은 임도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간간이 등산복 차림의 선남선녀가 우리를 부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이곳에서부터 주차장까지는 대략 8킬로 정도로 걸어서 1시간 남짓 걸린다. 하지만 잔차로 내려가는데는 10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 환호성과 함께 몸을 좌우로 비틀며 신나게 내리막을 쏘았다. 구곡폭포에 도착해서 한숨을 돌린 다음 우리의 차를 향해 포장도로를 달렸다. 계속 내리막이어서 엉덩이만 들고 있어도 시속 30킬로는 거뜬히 나온다.
도로 주변으로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꽃들이 정비된 도심의 꽃보다 더 정겹게 다가왔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포장 도로를 달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잔차를 분해해서 차에 집어넣었다. 우리의 입가에는 웃음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약 3시간 30분정도 여유로운 40킬로 정도의 강촌 첼린지코스는 또 하나의 추억으로다가 올 것이다. 오는 길에는 산음 휴양림에 들러 다음주 라이딩을 위해 사전 답사를 했다. 오는 길에  차는 밀렸지만 우리의 마음은 배부른 아이처럼 만족스럽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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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지난 봄 힘들게 한치령, 봉화산을 힘들게 올랐던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군요.
    입문하고 산이라곤 처음가본 챌린저였기에 힘들었지만 스스로 너무대견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 형님 강촌엘 갔다오셨군요. 아깝다... 저도 갈 수 있었는데. 전 토요일에 갈때가 없어서 그냥 동네 한바퀴 한 세시간 정도 탔거든요. 그리고 제 캐리어 가지고 가시지 그러셨어요. 그럼 잔차 분해하지 않고 편하게 다녀오셨을텐데요.
  • 마치 제가 라이딩 한 느낌이네요^^~ 후기 잘 읽었읍니다.
  • 글 잘 읽었습니다. 이번 강촌대회 때의 치열함과는 또 다른 느낌이 다가오는게, 이번 가을 꼭 가고싶어지는 군요.
  • 저도 이번 가을 한번 가보려고 정보 수집중이었는데
    잘보고 갑니다~~^^
  • 우리도 지난주에 다녀왔는데~~한치령을 쉽게 오르셨다니 에라이 데스네 기회가 되면 함께타고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고 갑니다
  • 대회 나가 존 성적은 아니지만 (그럭 저럭 ) 고향이 춘천이고 자주 놀러 가던 곶이지만 그런곶에 이런 장소 있엇나 하는 생각이더군요 암튼 즐거운 추억 에 그림을 그리고 오셧군요.
lake7
2005.09.21 조회 1763
dslee
2005.09.20 조회 2565
firstpic
2005.09.04 조회 3000
chongdy
2005.09.02 조회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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