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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산 다시만나기 -- 경북 문경새재 주흘산

onbike2006.06.15 14:41조회 수 8430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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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겁이 앞섰다. 혹은 자전거를 가지고 모르는 산속을 헤매는 일에 대해
온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열정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리라. 굳이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아도 세상엔 고단한 일이 너무도 많다, 이 말이지.

온씨는 전날 저녁부터 유난히도 몸이 무겁고 피곤했다. 이미 마음이 떠난
연인에게 겉치레의 데이트 약속을 한 것처럼 죄책감이 곁든 후회도 들었다.
잠자리에 들면서 온씨의 피로와 부담감과 후회는 극에 달하였다.  

그러나 온씨의 몸만은 개척질의 깊은 추억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인지, 장도에
오를 날 첫새벽이 되자 그의 팔다리는 전날의 피로를 말끔히 털고 팔팔하게
되살아나 주었다. 새벽6시 15분, 20킬로그램을 넘나드는 내리막 전용 자전
거와 각종 보호장비들을 차에 싣고 온씨는 경상북도 문경으로 출발한다.

가는 도중에도 온씨는 벌여놓은 직장 일들에 대한 부담감이 뻐근하게 머릿속을
짓누르는 바람에 도무지 신바람을 낼 수가 없었다. 원래 주말의 휴식이란 건
모름지기 CF에서도 나오듯이 주중에 할 일을 말끔히 끝낸 후에 “열씨미 일한
당신, 떠나라!...”가 되어야 하건만, 온씨는 제대로 매듭지워진 일 하나 없이
떠나는 주말의 행락이 참으로 송구할 따름이었다.

이런저런 분주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윙윙거리던 차에 벌써 온씨의 자동차는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IC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톨게이트 뒤편으로 솟아
오른 주흘산의 위용이 온씨의 눈을 압도했다.



오른쪽 제일 끝머리 뾰족 봉우리가 온씨가 올라가야 할 해발 1075미터의 주흘산
주봉이다. 저길 올라간다고... 20킬로그램짜리 다운힐 자전거를 끌고..??
“죽었다...”
온씨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 눈에 익은 자동차 위에 자전거 두 대가 솟대 마냥
서있는 것이 보인다. 토씨와 바씨다. 반갑다. 온씨는 바씨를 처음 보지만,
자신과 피가 비슷한 사람임을 한번에 알아차린다. 토씨는 너스레를 떨면서
투혼 팔찌를 돌렸다. 그냥 빨간 고무줄일 뿐이지만 그것이 팔뚝에 둘러지니
마치 무슨 부적처럼 알지 못할 힘이 솟구치는 듯하였다.

세 사람은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다시 차에 올라 밥먹을 곳을 찾았다.
파이팅 타이밍이 좀 적절치 못했던 것이다. 기껏 밥먹으러 가자고 그리도
비장하게...그나저나 한국사람들은 왜 시도 때도 없이 싸우자고 아우성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아침을 먹은 세 사람은 오름길을 잡는다. 문경읍 지곡리 월복사 길을
들머리로 택한 세 사람은 토씨의 차를 문경읍내에 세우고 온씨의 차와 함께  
월복사로 향하는 콘크리트 길을 달린다.

주흘산으로 오르는 가장 편안한 오름길은 조령제1관문을 지나 혜국사,
대궐터를 거쳐 주봉에 이르는 코스다. 그러나 조령1관문에서 3관문까지는 차량
및 자전거 통행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세 사람은 1관문을 통하지 않고 주흘
주봉으로 오를 수 있는 “개구녁”을 찾다 이 월복사 길을 들머리로 잡게된 것이다.

혜국사 길은 완만하지만 월복사 길은 급경사다. 게다가 정상 부근에서 너덜을
만나게 되어있다. 하지만 어쩌랴.... 온씨는 산신령께 모든 것을 맡기고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모르고 가다 뒤통수 맞는 것 보다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맞는 것이 낫다. 월복사를 지나쳐 얼마간 산판길을 오르다가 넓은 공터를
만나 온씨는 차를 세운다. 차문을 열고 자전거를 꺼낸다. 20킬로가 넘는 육중한
쇠덩어리가 가파른 산판길 위로 철푸덕 끌려 내려온다.

땅바닥에 누운 자신의 자전거를 보면서 온씨는 한번더 고개를 떨군다.

산판길은 이내 끝나고 녹음이 우거진 오솔길이 시작되었다. 그다지 큰 경사도
아닌 길에 폐병 환자같은 숨을 몰아쉬면서 땅만 보고 걷는 온씨가 불쌍했는지
토씨는 온씨의 자전거를 거의 뺏다시피 가져갔다. 자기 다운힐 자전거보다 더
가벼운 거 같다느니 더 잘 구른다느니 말도 안되는 너스레를 떨어가면서...
온씨는 못이기는 척 자신의 자전거를 토씨에게 넘기고 토씨의 자전거를 끌기
시작한다. 세상에나 이렇게 가벼울 수가... 이제 허리도 좀 펴지고 눈도 떠지고
문경새재 심산의 아름다운 풍광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 서로 자전거를 바꿔 끌기로 한 온씨와 토씨. 온씨는 희희낙락, 토씨는 비장
하다.>

길 옆으로 산딸기(복분자)가 지천이다. 산 아래 것들은 아직 덜 익어 몹시
시었으나 고도를 높여 갈 수록 제 맛을 찾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인간 세상의
복분자 맛이 아닌 듯 한 경지에 이른 놈들을 만난다. 일행은 아예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자리를 잡는다. 복분자가 이렇게 수분이 많은 열매였던가....
그 단아하고 상큼하면서 신선한 맛에 온씨는 이제 다운힐 자전거가 아니라
쌀집 짐자전거라도 끌 힘이 생겼다. 그러나 토씨는 자전거 바꾸자는 온씨의
원기왕성한 제안을 잘라 거절하고,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한다.


< 복분자...요강을 박살낸다고 했던가..>

고맙게도 길은 아직 벌떡 일어서지 않고 푸근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구간이 길어질 수록 막판의 경사는 살인적일 것이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이런 불안을 공유하고 있던 세 사람에게 드디어 능선에 진입했음을 알려주는
첫 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 능선 쉼터에 도착하기 직전의 온씨와 토씨.토씨, 죽어난다.>


<능선 쉼터. 직진방향이 정상쪽.>

여기서부터 정상을 향해 능선을 공략한다. 반대 방향으로는 자생하는 허브나
약초가 많아서 인지 “아로마 테라피 로드”로라고 명명된 소담스러운 길이
능선을 타고 아래쪽으로 뻗어있다. 장난기가 발동한 토씨가 아로마 테라피
로드 입구에다 소변을 본다. 아침에 큰 일을 못 보고 온 온씨는 강력한 배변욕을
느꼈지만 아로마 테라피 로드를 차마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릴 수가 없어서
꾹꾹 눌러 참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온씨의 항문을 짓누르던 유기물질은
얼마 안 가 오름길의 고통스러운 노역 덕분에 장 속에서 그대로 완전연소하고
만다.

온씨는 더 이상 미안한 마음 때문에 토씨에게 자신의 자전거를 맡겨둘 수가
없었다.
“여기서 부텀은 자기 차 끌고 갑시다.”
왠일인지 토씨 이번에는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그러자고 나온다. 온씨, 은근히
야속하다. 자기 자전거를 받아서 두어 걸음을 옮기자 온씨의 이 야속함은
원망으로 바뀐다. 잔차가 배는 더 무거워진 것 같다. 왜 첨부터 잔차는 바꿔
끌자고 해가지고... 토씨는 모래주머니 달고 연습하던 마라토너가 모래주머니
벗어던진 것처럼 자기 자전거를 가지고 훨훨 날듯이 팔짝팔짝 난장을 떤다.


< 제 자전거 끌기. 처지가 바뀐 온씨와 토씨>

능선에 진입하고 나서부터 드디어 길의 경사가 서서히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절벽에 가까운 난코스가 가로막고 있을 거라 지레 겁을 먹고 자일까지
준비해 가려고 법석을 떨었던 온씨로서는 감읍할 정도로 원만한 구간이
이어졌다. 이 감읍한 호강은 능선 쉼터를 출발한 지 20여 분이 지나 드디어
첫 너덜지대를 만나면서 완전히 끝이 난다.


< 첫번째 너덜.>

첫 너덜 앞에서 망연자실한 온씨는 몽롱한 머릿 속으로 이런 생각이 스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너덜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도대체 저 많은 돌들이
다 어디에서 왔을까..??” 이 산 전체를 누군가 키질하듯이 까불어서 산 속에
나돌아 다니던 돌들만 한곳으로 솎아 놓은 듯, 어떻게 이리도
가지런하게 한 곳에 모여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왜 우리는 이 넓고 넓은
산자락 중에서 하필 그곳을 지나가야 한단 말인가?


< 너덜에서 쉬다.>

이런 부질 없는 앙탈은 너덜의 따스한 돌덩어리 위에 앉아 발아래 펼쳐진
주흘산의 치맛자락을 바라보고 있자니 시나브로 수그러들었다. 다시 힘을
추스린 온씨는 묵묵히 첫 번째 너덜을 가로지른다.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은 턱에 차 오장육부가 입 밖으로 쏟아질 것 같고, 땀은 거칠 것 없는
민머리에서 사정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가로지르는 너덜이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첫 너덜을 지나자 마자 또다시 족히 100미터는 돼 보이는
너덜이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이 너덜을 세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온씨는 뒷바퀴가 앞으로 오도록 자전거를 거꾸로 든다. 똑바로 들면 앞바
퀴가 급경사를 이룬 바위들에 튕겨 까딱하면 뒤로 나자빠지기 십상이다.
뒤로 나자빠지는 날이면 여기서 그대로 자전거와 함께 돌무덤이 되는 것이다.
열 걸음을 채 못 옮기고 온씨는 선다. 숨을 토한다. 걸쭉해진 침이 함께 튀어
나온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이번에는 여섯 걸음을 못 넘긴다. 이미 맥이
풀려버린 다리 때문에 꿀럭거리는 바위돌 위에서 균형을 잃을 뻔한 순간이
자주 되풀이 된다. 다 올라갈 수 있을까....


< 두번째 너덜. 사투를 벌이는 온씨>

그때였다. 바씨가 맨손으로 다가왔다. 그가 뒷바퀴, 온씨가 앞바퀴, 이렇게
그 육중한 자전거를 마주 든 두 사람은 마치 상여를 옮기듯이 구령에 발을
맞춰 너덜을 기어 오른다. 한편 토씨는 자기 자전거를 먼저 너덜 꼭대기로
옮겨놓고 다시 내려와서 바씨의 자전거를 또 짊어지고 올라갔다. 자기 혼자
내리막질 즐겨보겠다고 감당도 못할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온 온씨가 뭐가
이쁘다고 두 사람은 이리도 무고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단 말인가...
온씨는 결국 이들의 도움으로 두 개의 너덜을 통과하여 주흘산 주봉 직전의
안부인 전좌문에 올라설 수 있었다. 더위와 피로 그리고 두사람에 대한
송구함으로 온씨의 사지는 제자리를 못찾고 휘청거렸다.

전좌문 좌우는 깍아지른 절벽으로, 너덜 끝지점에서 이 절벽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잠시 자신이 어디에 있는 지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냥 저 두 절벽의
호위를 받으면서 영겁의 세월을 거기 몸 박고 있던 바위돌이 된 듯 한
기분이다.


< 전좌문 동쪽 절벽>


< 전좌문 서쪽 절벽>

이제 정상은 100여미터 남았다. 로프가 매어있는 구간도 보이지만
방금 올라온 너덜지대에 비하면 자전거를 타고라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이
만만해 보인다. 정상쪽을 바라보고 왼편으로는 오늘의 하산로가 될 조곡골
등산로가 도도하게 내리벋었다. 잠시만 기다려라. 주봉에 인사 한 번 올리고
와서 어루만져 주마...


< 정상직전 안부, 전좌문. 직진방향이 정상, 오른쪽은 세사람이 올라온
월복사방향, 왼쪽은 하산로인 조곡골.>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100미터를 기어오른 세 사람은 드디어 주흘산
주봉 1075미터 정상에 선다. 정상의 동쪽은 장쾌하게 깎여나간 바위 절벽이다.
사방에서 달려오던 능선들이 그 기운과 여세를 한 곳으로 몰아부쳐 마침내
불끈 솟구쳐 놓은 봉우리. 그 위에 자전거를 가지고 세 사람이 올라서 있다.
사방의 능선이 발아래서 세 사람을 떠받들고 능선을 타고 올라온 바람은
섬섬옥수가 되어 세 사람의 뺨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진다. 이 순간 만큼은
그들이 세상의 왕이다.


< 주흘산 주봉 정상. >


< 정상의 세사람. 전세계에 판매된 엠원 중에서 이런 곳에 서본 넘은
저넘 뿐일 것이다.>

잠시 황홀경에 취해 있던 세 사람은 싸온 음식으로 간단하게 허기를 달랜
다음 내려갈 채비를 한다. 그 때 늘 듣게 되는 등산객들의 질문..
“이거 얼마나 하능교?”
“예 한 삼사백 갑니다.”
“거 바라 내 머라카드노, 이거 천만원 넘는 거또 있다메요?”
“예에...”


<자 내려갈 준비!!>

이런 질문들로부터 도망치듯 세 사람은 황급히 정상을 벗어나 조곡골
하산로를 향해 돌진한다. 정상에서 전좌문 안부로 다시 내려오는 길은
노면이 상당히 미끄럽고 로프가 매어있는 급경사 구간도 있었지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름길 너덜지대에서의 고통을 보상받으려는 듯 온씨는 좌우로
미끄러지는 뒷바퀴를 제어하며 마음껏 노면을 탐닉했다.

전좌문 안부로 되돌아오자 온씨의 얼굴은 또다시 땀범벅이 된다. 고작 100
미터 정도를 타고 내려왔을 뿐인데... 끌고 올라가나 타고 내려오나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숨을 고르며 조곡골 하산로를 응시하고 있던 온씨는 덜컥 불안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오후 두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이었음
에도 인파를 이룬 등산객들이 끊임없이 정상에서 쏟아져내려와 조곡골 쪽으로
흘러들었다. 여기서도 서울 관악산에서 처럼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면서 내려가야겠구나.... 사실 산속에서 자전거라는 흉기를 소지한
사람들과 걷는 사람들 간의 평화로운 공존은 흉기를 소지한 쪽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있다. 오버하지 않으리라, 나만의 쾌락을 위해 약자를
위협하지 않으리라... 온씨는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면서 조곡골 하산로로
조심스레 접어든다.

아....그러나 길이 너무도 온씨의 취향과 잘 맞았다. 적당한 경사에 큼지막
하게 박힌 돌무더기들, 심심치 않게 좌우로 굽이치다 중간중간 큰 낙차를
만들어 잔차꾼을 흥분시키는 전형적인 내리막질 전용 코스!! 덕분에
등산객을 배려하겠다던 온씨의 굳은 각오는 브레이크 레버를 쥔 검지의
힘이 풀려나감과 동시에 따라서 풀어져 버렸다.

온 몸에 남은 힘을 다 짜내어, 돌덩이에 튕겨 껑충대는 자전거를 찍어누르고
얼르고 달래면서 온씨는 거침 없이 조곡골 아래로 아래로 빨려들어갔다.
약간의 평지가 나온다. 난장 내리막질로 오름길에서 처럼 숨이 턱에 찬
온씨는 자전거를 세우고 헨들 스템에 머리를 쳐박고 구역질 하듯 가쁜 숨을
토해낸다. 이 멋진 길이 얼마나 더 계속될까... 행복한 기대를 하던 온씨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핀다. 이상하다. 그 많던 등산객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입구에서 그렇게 쏟아져 들어가던 등산객들이 마치 증발해 버린
듯 온데 간데 없다. 가끔 부부인 듯 해 보이는 중년의 남녀들이 한쌍 씩
지나칠 따름이었다. 아, 이건 또 무슨 축복이란 말인가....


< 조곡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만나는 꽃밭서들. 이름이 고와서 꼭 한번
보리라 생각했지만 온씨는 이곳을 언제 지나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

가쁜 숨이 잦아들면 또다시 난장의 시작이다. 편안하게 안장에 앉아서
내려올 수 있는 구간은 하나도 없다.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사지의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속도가 너무 죽거나 기운이 빠져
자전거를 밀고 당길 힘이 팔다리에 남아있지 않게 되면 여지 없이 앞바퀴가
돌무더기 사이에 처박히고 마는, 그렇다고 속도를 너무 냈다가는 사정없이
길 밖으로 나동댕이 쳐질 수 있는, 그런 맹랑하기 그지없는 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참을 이런 길과 씨름하다 보니 어느 덧 계곡에 닿았다.
이후부터 길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곡을 건너왔다 건너갔다 한다.
첫 건널목에는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도 건너감직 한 바위무더기가 계곡을
가로질러 놓여있었다. 그 주변으로 넓은 자갈밭과 너럭바위가 있고 거기에는
자취를 감췄던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간식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많던 등산객들이 다 계곡 주위에서 터를 잡고 쉬느라 길은 그리도
한산하였던 것이다.

돌들이 맞부딪치는 굉음과 물보라를 일으키며 온씨의 자전거는 첫 번째
계곡 건널목을 돌파했다. 주변에서 이를 지켜보던 등산객들로부터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우쭐해진 온씨는 건널목 이후에 숨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돌무더기를 향해 힘찬 패달질로 돌진하려다, 이미 힘이 빠져 후달거리는
허벅지가 전혀 협조를 해주지 않는 바람에 앞바퀴만 돌무더기에 꽂힌채
나자빠진다. 와~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아저씨 멋제이” “파이팅!!” 카랑한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물소리에 섞여 계곡을 울렸다. 걷는 산꾼과 자전거
탄 산꾼과의 평화로운 공존!! 온씨의 뇌리속에는 이 화두가 다시한번
성성해진다.  

그 후로도 계곡길은 한 치의 수그러듬 없이 계속 온씨 일행을 까불러 댔다.
계곡을 건너는 경우 말고는 모든 구간이 바위길 내리막질에 익숙한
라이더라면 다 탈 수 있는 구간이었으나, 바로 그 때문에 온씨의 체력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나중에 온씨는 기력이 마침내 거의 쇄진하여
길과 자전거가 합심하여 자신을 들었다 놨다 하는 대로 사지를 내맡기고
거친 탁류에 이리저리 휘몰리며 떠내려가는 일엽편주처럼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더욱이 조령제2관문이 가까워올 수록 계곡을 건너는 빈도도
잦아져 온씨의 체력은 급격히 바닥을 드러낸다.

거의 중력의 힘에만 의존하여 엉덩이를 자전거 안장에 붙이고 내려오던
온씨의 풀린 눈에, 드디어 조령제1관문-2관문-3관문으로 이어지는 넓은
산책로가 들어온다. 이제 다 내려왔다. 사람들이 주말 극장가 만큼이나 많이
오가는 길 한쪽 켠에 자전거를 자빠트리고 온씨는 큰대자로 널부러진다.
팔다리에는 아직도 돌길의 거친 질감이 남긴 충격이 채 가셔지지 않았는지
갖가지 근육들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 널부러진 온씨>

온씨가 그나마 기력을 조금 회북하자 일행은 넓디 넓은 양탄자 흙길을
살포시 달려 조령제1관문을 향해 내려왔다. 그 길은 바퀴 달린 것이라고는
유모차가 전부였고, 오로지 걷는 사람들의 천국과도 같은 길이었다.
그곳을 바퀴달린 기계로 유린하는 입장이 된 세 사람은 너무도 미안하고
송구하여 뒷바퀴 허브의 라쳇 돌아가는 소리도 내기가 민망하였다.

1관문에서 제재를 당하면 어떡하나 염려스러워 온씨는 최대한 지치고
불쌍해보이도록 노력했다. 산속에서 헤매다 길을 잃었는데 다행히 조난
직전에 이 길을 만나 내려왔노라... 한번만 봐달라... 관리공단 측에 둘러댈
대사까지 읊조리면서 막상 1관문에 도착해 보니, 공단 직원은 고사하고
그 누구도 그들 세 잔차꾼에게 눈길 하나 주는 이가 없더라.


< 조령제1관문 앞.>

유유히 1관문을 나온 세 사람은 이런저런 장난을 치면서 차를 세워둔
문경읍으로 돌아와 몸들을 추스르고, 두 사람의 희생에 감읍한 온씨가 낸
닭백숙을 거나하게 먹은 다음, 문경새재 도립공원 주차장 옆의 시리도록
맑은 개울 물에 개척질로 부르튼 발을 담그고 망중한을 즐기다가, 시간이
오후 여섯 시가 넘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작별을 고하고 총총히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을 향해 떠났다. 그들의 뒤로는 저녁 노을로 붉어가는 주흘산이
드리운 긴 산그림자가 아쉬운 듯 뒤쫓고 있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거늘, 주흘산 개척질의 흥분은 열흘을 넘긴 지금도 좀체
사그러들 줄을 모른다.  

(사진은 소모임 2.3의 Bikeboy님이 찍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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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수고하셨습니다...^^

    지난번에 사주신 홍탁 땜시 7차 280랠리

    완주했습니다...아자!!!
  • ^^ 앞으로의 업데이트될 칼럼이 기대됩니다. 언제 기회되면 참석해보고 싶습니다!! 좋은 글과 사진 부탁드립니다^^
    그대있음에 올림.
  • 역시 2.3...그래도 여긴 탈만 했내요...ㅎㅎㅎㅎ
    온바님 이제 글 자주 쓰셔야 할듯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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