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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포대에서...(검둥이, 바이크홀릭, 파도) ===

........2001.04.14 17:20조회 수 382추천 수 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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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에서는 해야할일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다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너에게그러하듯이.

오랜만에 손님이 왔다고 반기는 민박집 주인 할아버지는 반가워서인지 아니면, 날 구워먹기라도 하려는 속셈인지 방바닥을 절절끓게 만들어 주셨다다.
방바닥에 놓아두면 무엇이든 흐물거린다. 치약이건, 비누건, 양말이건, 사람이건.

민박집 한쪽벽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자전거가 요며칠 유난히 정겹다.
이렇게 철저히 혼자인 바다에서이기에 더욱 더 귀한 친구처럼느껴진다.

민박집의 검둥이는 한쪽눈이 심하게 다쳤다.
내가 개를 워낙 좋아하는지라 친구가 되고 싶어 작은 참치캔 한개로 유혹해보지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눈의 상처를 유심히 보아하니 사람으로 인한 상처겠지.....
불로지진듯한 눈,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러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검둥이는 사람을 몹시도 두려워한다.
생명의 근원인 이 장엄한 바다앞에서 이다지도 잔인하게 한 생명을유린할 수 있는 존재, 인간.
인간들이여 저주를 받을지어다.
저렇게 사느니 죽는것이 덜 괴롭지 않을까? 라고 나도 모르게 인간의 오만을 부려보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생명의 고귀함 앞에 숙연해지고 부끄러워진다.

생명의 소중함이여.

민박집 한귀퉁이에 차곡차곡 모아둔 수백병의 소주병들, 혼자마신것은 분명 아닐진대 다들 무슨 사연이담겨있는것일까?
소주병의 껍데기는 겉보기에 다 똑같아 나로서는 그 안의 사연들을 알턱이 없다.

그저 나의 360미리리터짜리 사연 4개를 가만히 옆에 놓아둘 밖에.....

5분전부터 이곳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며칠간 조용했던 나만의 숙소는 이제 주말을 맞아 철없이 시끄러운 아이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비가오니 모두들 들어가고 빗소리와 파도소리만이 귓가에 부대낀다.

저 우라질놈의 파도는뭐가 맘에 안들어서 저리도 밤새도록 부숴지고 지랄인지.
저 청승맞은놈의 비는 안그래도 청승맞은 나의 휴가에 뭐가 불만이 있어 하필 지금 내리는지.

오늘 낮에는민박집에서 키우는 또다른 백구(엄청큰)와 손을 잡고 놀았다.
우리에 갇힌 처지라, 나오지도 못하고 손만 안타깝게 내민다.
우리앞에 털썩주저앉아 백구의 손을 잡고 가만히 있었다.

따뜻하다.

자신을 가둔 인간들이건만, 뭐가 그리 좋은지...사람만 보면 몸을 비비꼰다.
숫놈과 암놈이 창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꽉막힌 욕정이 서러워 차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몸을 비빈다.

아...생명이란...육체의 따스함이여.....

방에 널부러져 있는 조선일보와 강원일보를 통해 치졸한 인간들의 연극은 연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잘 돌아가는군.

이제 집에 돌아가면 이 바다의 파도소리를 한동안 들을 수 없겠지.
검둥이의 깊은 상처도, 백구의 욕정도, 경포의 밤비도 다 잊어야지.
그렇게 다시 삶은 행해져야만 한다.
그래도 이 소중한 것들 평생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리라....

이제얼른 돌아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야지.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도 만나야지.
그들도그러하듯이...

이제 며칠간의 경포는 잊어버리고 도막난 침묵들을 남발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황량한 도시로 돌아가야지.

왜 가야하는지는 생각하지 말자.
왜 이 바다를 버려야 하는지 생각지도 말자.
내가 왜 그토록 고통스러웠는지 생각지도 말자.

내 나이 서른의 며칠간의일탈도, 짧은 인생의 연극도 이제 끝내야지.

그래도 그리운것은 사람인 까닭에 나의 여행은 '해피앤드'


- 경포에서 핸드폰 충전을 위해 시내로 잠시 나왔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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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재님 수고가 많아요... (by ........) 서른을 넘기며...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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