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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도 갈망했던, 한계령!!!

........2001.12.26 23:32조회 수 781추천 수 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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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헉!
둥! 둥! 둥!
켁! 켁! 켁!
몸이 아파서 나는 소리가 아닙니다.
마음이 아파서 나는 진동도 아닙니다.
숨통까지 조여오는 심장의 피돌기가 손끝에서 따뜻한 체온으로 피어오르는 소리!!!
바라는 것을 성취하였을 때 황활한 격정이 노을 위를 둥둥 떠다니는, 정상의 극치에서나 맛볼 수 있는 소리!!!
절묘하다 못해 기기묘묘한 2중주의 합창곡이 땅거미를 헤집고 부채살같이 곱게 빛나는, 종내에는 별빛으로 승화되는 무언의 소리!!!

동공을 크게 벌리고 흐르는 촉수를 곤두세워 은하수를 지나는 한 점 별빛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가슴을 울리며 흐르는 눈물, 손으로도 만져지지 않는 진한 감동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이 순간!!! 한계령도 고요히 청년의 호흡을 가다듬어 주고 있는 이 순간!!!

은은한 묵화같이 어둠이 내리는 한계령 정상에서 지락한 환희의 극치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이 평화의 순간을 박제하여 가슴에 안고 살렵니다. 뱀처럼 꾸불꾸불한 한계령 고개를 넘어, 정상의 휴게소에서 곧게 뻗어버린, 더 이상의 기력도 미력도 남아있지 않은---

세상의 모든 것, 생의 모든 것, 그러니까 인간의 역사는 필연의 법칙이 지배하는 결정론의 무대가 아니라 도전과 응전의 역학적인 무대입니다. 역사의 도전보다 우리의 응전력이 강할 때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오늘만큼 주인공이 된 나도 응전력이 강했고 도전의식이 팽배하였기 때문에 오늘 여기, 한계령에 서있는 것입니다.

8월15일 새벽 6시에 어제저녁 준비해 놓았던 짐을 챙겨들고, 베란다에서 미리부터 기다리고 있는 분신(分身)인 자전거를 곱게 안아 마당에 내려다 놓았습니다. 녀석도 어제 저녁 한 잠도 잠을 자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 나보다 더 설레임이 컸던 것 같습니다. 녀석의 눈이 탱탱부은 것만 봐도 알 것 같았습니다. 녀석이 말합니다. 오늘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목표한 곳을 가자고. 한계령 고개에서 쓰러져 죽어 진토가 된다하더라도 끝까지 가자고. 그리고 즐겁게 라이딩을 하자고---

청년은 자전거를 너무 사랑합니다. 퇴근후 베란다에 고이 모셔저 있는 녀석만 보아도 하루의 피곤을 다 잊을 수 있으니까요. 청년이 자전거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나도 그렇고 녀석도 그렇고 서로가 거짓없는 순수한 감정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녀석이 가자는 곳을 나는 말없이 따라 주었고, 내가 가자는 곳을 녀석도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따라 주었답니다. 생의 발전은 이렇게 순수가 토대를 이룰 때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태고의 숨결이 아직도 묻어있는 자연을 여행할 때는 ---
7월 어느날 무더위가 욕정을 발하고 있는 날, 녀석이 하도 보채길래 녀석과 함께 내가 태어난 고향을 갔습니다. 강남구 역삼동, 말죽거리 은광여고 뒷동산이 제 고향이랍니다. 아직도 배냇물이 촉촉이 배어있는, 흙내음 물씬 풍기는 그 곳.

소년시절 함께 자랐던 떡갈나무, 소나무는 아름드리가 한 팔을 더 보태었지만 옛적 향취는 그대로 였습니다. 빗자루를 만들던 싸리나무도, 하이얀 아카시아꽃을 따먹던 아카시아 나무도 많이 컸고 덩치가 커졌지만 노스탤지어의 향수는 아직도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유달리 컸던 한 그루의 밤나무도 그대로 있습니다. 그 밤나무 밑에서 원 웨이 티켓 팝송을 들으며 밤나무 가지처럼 몸을 흔들었던 중,고시절의 추억이 밤송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 유년시절의 고향동산은 꽃대궐이었고 꽃피는 산골이었습니다. 맑은 물이 수풀속에서 여울지게 울고, 다람쥐는 분주히 도토리를 줍던 그곳. 초저녁 굴뚝에서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유년의 추억들이, 따뜻한 아랫목 같이 남아있는 고향. 지게, 삼태기에 담아도 담아도 못자랄 것 같은 고향의 푸근함. 그 곳을 녀석과 함께 다니는 기쁨이란---한 번 상상해 보십시요.

아직 갓밝기가 피어오를 무렵, 집 마당에 사뿐히 내려앉은 녀석의 모습은 외씨버선을 신은 듯 날렵하게 떠날 갈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는 둥 마는 둥 새벽부터 부산떠는 아들을 본 엄마는 걱정과 근심으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유년부터 마음먹은 것을 해내는 성격을 알기 때문입니다.
배낭에 각종 장구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500km이상을 달리는 여정인지라 행여 녀석의 몸에 어떤 이상이 생기면 진단하고 치료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그래 몇 명이나 가는 거여. 거짓말로 여럿이서 간다고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말했습니다. 혼자간다고. 이것아 강원도 양양이 옆동네인줄 ---. 채 말이 끝나기고 전에 대문을 닫고 기다리는 자전거에 몸을 실었습니다. 엄마 걱정마슈, 사막에서도 살아올 나유-라고 속으로 되 내이면서---.

애야!! 가자, 갈 길이 멀구나!!!
녀석의 단단한 두 팔을 꼭 잡아 애무하여 줍니다.
핼멧을 단단히 턱에 조여매고, 배낭을 어깨에 걸치고 기나긴 여정을 향하여 잠실을 출발합니다. 새벽 6시 동녘하늘에는 흰구름과 흑구름이 뒤섞여 세력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편이 이기느냐에 '따라 소낙비가 오느냐 마느냐, 흰구름이겨라!!! 힘차게 응원하여 줍니다. 엊저녁 예보에는 날씨가 맑겠다고 했는데 ---

잠실선착장 포장된 도로위에는 엊저녁에 내린 빗물들이 아귀다툼격으로 이리튀고 저리튀고 ---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갈길이 바빠 고수부지 자전거 전용도로를 고속질주 합니다. 양쪽 사이드로 쫘쫘 갈라지는 보랏빛 물살이 시원함을 더해줌니다. 흙탕물이 등짝에 붉은 선을 선명하게 스케치합니다. 어설프게 내리는 이슬비가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서울만 벗어나면 맑은 하늘이 지천으로 널려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시속 30km로 달리니 벌써부터 한계령을 넘어 양양에 도착한 듯 마음은 은빛 바다위를 질주합니다.

잔뜩 오만상을 하고 있는 서녁하늘과는 다르게 동녘하늘에는 상서로운 빛이 얼굴을 보이곤 하였습니다. 붉게 붉게 홍조띤 어리디 어린 얼굴이 반갑기만 합니다. 제발 울지만 말아다오, 빌고 빌었습니다. 네가 울면 더없이 힘들어 진단다. 탄탄히 검정신발을 조여맨 자전거 바퀴가 물살을 가르고 햇살을 가르고 바람을 가르고 안개를 가르면서 팔당대교에 도착하였습니다.

아리따운 처녀네가 치마 속살을 살짝 드러낸 듯, 백설같이 희디흰 수밀도의 오롯한 유방을 드러낸 듯 봉글봉글한 물안개가 낙수하는 물을 따라 띠를 이루며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팔당대교는 졸고 있는 듯 물안개를 솜이불 삼아 목언저리까지 끌어당겨 덮고 있었습니다. 구름속을 달릴 때 물안개는 몸을 휘감아 떨어지질 않습니다. 잠깐이나마 정이 들었는지 이별을 아쉬워하는 듯합니다. 미로의 안개터널을 나오니 늦은 휴가를 가려는 차량행렬이 번호순으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검은 옷, 흰옷, 빨간 옷을 입은 차량들은 자기보다 몸집도 작은 자전거가 사이사이 누비며 고속질주하는 모습을 우두커니 보고있을 따름입니다. 이따금 심하게 트림하고 울부짖는 놈들은 갓길로 나와서 다른 동료의 정직함을 비웃습니다. 관습적으로 승인된, 법적으로 규범화된 그래서 누구나 준법해줄 것을 믿는 금기의 약속을 저버리는 삼류들입니다.  다중이 굳게 믿고 지키는 규범의 범주를 일탈하는 데서 흥미와 스릴을 즐기는 저속한 무리---. 그래도 더 많은 사람은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것을 믿으며 살고 있답니다.

배낭에서 지도를 뽑아 갈 길을 확인합니다. 이 길이 맞는가, 저 길이 맞는가? 이정표의 글을 잘 확인할 수 없어 서울에서 양양까지 흰띠를 두른 지도를 보고는 양평방향에서 좌로 돌아 44번 국도로 접어듭니다. 이제부터는 4차선의 긴 도로가 맞이하여 줍니다. 팔등신의 미녀 각선미같이 쭈쭈빵빵한 포장된 도로가 여름철의 바람을 여과없이 얼굴과 팔 다리를 주물러 줍니다. 덩달아 녀석도 좋았는 지 더 가속을 냅니다. 주인님 갑니다, 꼭 잡으셔---이잉.

양평땅을 뒤로하고 홍천으로 가는 길은 서서히 기력이 쇠잔해갑니다. 오전의 날씨에 대한 걱정은 스러지고 작열하는 사막의 열사가 금방이라도 삼킬 듯이 떼거지로 덤벼듭니다. 얼굴을 할퀴고, 목을 물어뜯고, 팔뚝을 꼬집고 그럴때마다 진물은 그칠줄 모르고 육수를 뿜어냅니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도 이미 치유기능을 상실하였습니다. 겨드랑이의 빽빽한 숲속에서는 끈적끈적한 땀이 분수를 이룹니다. 한손으로는 녀석의 손을 잡고 한손으로는 숲속의 잡목들을 다듬어 줍니다. ---------
시원한 수박 한 덩이가 그립습니다. 국도 옆에는 갓 꼭지를 떼어낸 과일들이 더위를 몸으로 인채 풀이 죽어 누워 있습니다. 단내를 맏고 달려드는 날파리에게 시달려 좀채 잠을 자지 못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 과일들의 피나는 적자생존의 몸부림,
5월의 잉어보다 더 팔딱, 촐딱대는 태양은 점점 몸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독기품은 복어배와 같이 퍼저오르는 진공의 공간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만 같습니다. 진공의 공간이 싫어! 싫어!! 열심히 페달링을 합니다. 그러나 처음 출발할 때와는 다르게 속력은 많이 줄었고, 머리 손 발 목 허리 허벅지등 뻐근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애야 좀 쉬었다 가자!!! 녀석의 등을 쓰다듬어 주고 행길 옆의 과일상에 잠시 엉덩이를 붙였습니다. 엉덩이가 아파 제대로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열기로 가득찬 입속의 탁한 공기를 길게 내 뿜으며 과일상의 아줌마에게 물었습니다. 이 길이 홍천가는 길이 맞냐고. 아줌마는 땀으로 범벅이 된 나를 딱하다는 듯이 바라다 볼 뿐입니다. 옥수수 수염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고서야 샛바람이 부는 줄 알았습니다. 오늘은 녀석도 주인을 잘 못만나 고생을 합니다. 녀석을 1년전 저잣거리에서 처음 만날을 때 그리 날렵하지도 건강해보이지도 않았답니다. 그런데 녀석이 나를 만나고 부터는 건강과 날렵미를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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