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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속초로...

바램2005.05.11 14:23조회 수 2006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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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4일 속초를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쓰고보니 이야기는 별로 없고 기록위주의 글이지만 저처럼 처음 속초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하여 올려봅니다. 여기나온 주행거리는 제 자전거 속도계를 기준으로 했으며 리셋 후 집에서 여의도 공원까지 10킬로, 그 다음은 여의도부터 거리를 가늠 하시면 될 듯 합니다.
아!  이글은 처음에 싸이에나 올려 친구들에게 읽어보게 하려고 쓴 글이어서 어투가 반말입니다. 양해해 주세요..^^*



출발하기전에...

언젠가는 속초라이딩을 해보겠노라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속초는 초보들에게는 꿈과 같은 곳이다. 여러 투어후기에서도 그 험난한 여정을 엿보면서 나는 언제 이런 라이딩을 해보나하고 허전한 마음을 커피로 달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였다.

5월...
어쩌면 나에게는 너무나도 잔인한 달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 여기서 주저 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답답한 마음에 뭔가 성취감을 얻을 것이 필요했고 조금은 벅차다 싶은 속초투어가 나의 부족한 성취감을 채워줄 목표로 자리 잡았다.
여러 선배 라이더들의 투어후기를 읽고 이 도전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내게 알맞은 목표가 되었다.
겸손한 마음으로 5월 중순이나 5월 말 속초투어를 계획했다. 그동안 몸을 만들고 정보도 수집하고 계획을 세울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보 수집과 장거리 연습 삼아 속초 중간 정도까지 라이딩을 5월 4일 결행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춘천의 소양강댐 업힐까지를 연습 삼아 가보려 했다. 거리는 대략 120~130㎞미터정도.. 속초까지 200㎞정도라 알고 있어서 이정도 해보면 대강 견적이 나올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춘천까지의 투어 후기를 읽어보고 이제 마지막으로 여길 경유하여 속초에 간 투어후기를 읽어보다 돌발사태가 발생한다.

속초를 가는 길은 크게 두갈래로 나뉜다.  춘천을 경유 배후령과 광치령을 넘어 원통 미시령으로 넘어가는 길과 양평 홍천을 지나 인제 미시령을 넘는 길이 있는데 춘천을 지나는 길이 훨씬 힘들고 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5월 4일 출발할  라이딩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3일에서야 알게 되었고 고민에 빠졌다.
그냥 춘천를 장거리 연습 삼아 갔다 올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속초라이딩때 길 찾아 가는 거나 시간배분 등을 짜기 위해 홍천이나 양평으로 목적지를 바꿀 것인지가 문제였다.
같이 떠날 형에게 의견을 물으니 양평이나 홍천을 원한다. 급히 목적지를 수정하고 다시 지도를 보면서 계획을 다시 짜본다.
일단 편도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 그러고 고속버스를 이용하여 돌아오자는 것이 큰 줄기이고 어디까지 갈 것인지가 문제였는데 양평까지는 100㎞ 홍천까지는 150㎞ 정도라서 일단은 홍천까지로 목표를 세운다.
일구형에게 대강의 계획을 알리고 내일 5시반에 모닝콜을 서로 해주기로 하고 6시에 일구형 집 앞에서 보기로 한다.

대강의 짐을 챙기고 내일 가다가 먹을 음식도 마트가서 한아름 사온다. 흐흐 좋아하는 육포와 쏘시지 이온음료 양갱 쵸코바 등을 사와서 일부는 출출한 밤의 야식거리로 해치워버리고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11시 반정도에 자리에 눕는다.  
하~
근데 잠이 안온다. 낼 떠나는 거리야 150㎞면 내가 가장 많이 라이딩했던 것이 140㎞쯤 되어 별로 부담이 되지는 않지만 5시 반에 일어나는 일이 걱정이다. 최근 아침 알람을 못 듣는 사태가 몇 번 있어놔서 ㅡㅜ
마지막 시계를 본 것이 1시 10분정도,,, 그다음 5시 28분에 눈을 떴다. 알람이 울리기 전이다. 내가 긴장하긴 무척 긴장을 했나보다.
일구형에게 전화하고 6시에 만나기로 한다.
어제밤에 입을 옷 가지도 다 정해 놓고 자서 금방 준비를 마칠 것이라 생각 했지만 거의 일년만에 끼우는 콘텍트렌즈가 잘 착용되지 않는다. 20분간 씨름하고 나서야 밝은 시야를 얻게 되었다. 날씨가 화창하여 썬그라스 없이는 힘들 것이어서 억지로라도 콘텍트렌즈를 착용했다.
6시 10분경 일구형에게 독촉 전화가 온다. 막 출발한다고 답하고 긴 여정의 첫 페달을 밟는다.  




6시 반경 일구형과 만나서 워밍업삼아 천천히 여의도로 향한다.
원래 차들이 많이 다니는 도심구간인데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자전거타기가 엄청 수월하다.

  여의도 공원을 지나 한강에 나가서 잠시 휴식과 작전회의를 한다.(여기까지 10㎞) 양평까지 가는 길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다. 광진교까지 가서 미사리를 경유해서 팔당대교를 건너갈 것인지 아니면 광진교를 지나 워커힐쪽으로 6번국도를 바로 타고 넘을 것인지의 선택이었다. 미사리 쪽은 두 번 가본 적이 있어 길은 알고 있으나 비포장길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많은 길이고 워커힐 쪽은 온로드이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잘 찾아갈지가 걱정이다. 어차피 이번 라이딩은 사전답사의 성격이 있으니 새로운 길로 가보기로한다.

  일단 광진교를 목표로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린다. 처음에는 아직 잠이 떨 깬 몸을 무리시키지 않고 슬슬 17~18㎞ 정도로 20분정도 달리다가 본격적으로 달려본다.
  헉 그러나 속도가 나지 않는다. 겨우 22~25㎞ 정도 아무래도 맞바람의 영향이 크다. 아침에 운동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단 많고 자전거로 등교하는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다. 휴일 자전거도로에 나오면 거의 놀이터 수준인데 이른 아침에는 도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여의도에서부터 거의 30㎞정도 달려서 광진교다리 밑에서 휴식을 취한다. 육포 한 마리 해치우고 소세지도 먹고 완전 소풍 온 기분이다. 광진교를 건너서부터는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광진교를 건넌다.

워커힐 쪽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 많아서 달리기가 엄청 수월하다. 아까 맞바람에 속도  못 내던 것이 쉽사리 40㎞를 넘어간다. 본격적인 6번 국도에 들어서니 이렇게 좋을 수 없다. 옆에는 한강이 흐르고 넓은 갓길은 자전거 타기가 너무 좋다. 강변을 따라 쭉 뻗은 다리위에서 사진 한 판 찍고 잠시 쉰다. 큰 화물차가 지나가니 다리가 출렁인다. 이렇게 흔들려도 괜찮나 싶을 정도로 들썩이는데 ㅎㅎ 무섭다. 동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 눈이 부시다. 썬글래스를 꺼내쓰고 다시 출발!

  좀 더 가니 80㎞ 지점에서 팔당대교를 지난다.
원래는 6번 구도로를 타고 터널을 지나지 않는 길로 가려고 했으나 그냥 길 타고 가다보니 팔당터널 앞이다. 여러 후기에서 여기가 위험하다고 하는데 글쎄... 터널 안에 울리는 커다란 자동차 소리만 참으면 그리 위험하다 느껴지지는 않는다. 뒤에 우리가 지난 터널에 비하면 정말 매우 안전한 터널이다.ㅎㅎ
몇 개의 터널을 지나서 달리기 좋은 길이 강변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9시 반정도에 양평휴게소에 도착 아침을 먹기로 한다. 식당에서 밥을 주문하니 시간이 좀 걸린다. 새로 산 일구형 mp3도 구경하며 유쾌한 아침을 먹는다. 회비 3만원씩 걷고 노닥거리기 시작한다. 벌써 양평이라니 홍천까지 가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을 듯했다. 양평서 홍천까지는 50㎞ 정도로 알고 있어서 6번 국도 타고 온 속도대로면 2시간도 안 되서 홍천에 도착 할 듯했기 때문이다. 홍천에 12시 언저리에 도착하면 이거 인제까지 달려봐. 뭐 아직 체력도 그대로고 인제까지도 상태 좋으면 이참에 속초 그냥 넘어봐 어째? 거만한 농담을 하면서 커피한잔 하고 사진 한 판 찍고 출발한다. 우리 사진 찍을 때  로드연습하는 체고 싸이클부 애들이 지나간다. 뒤에 지원차량의 가드를 받으면서 달리는 모습이 부러웠다. 우리처럼 홀로 라이딩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원차량은 꿈 같은 일이다.  

  실컷 쉬고 10시 반경에 출발한다.
어랏! 이게 무슨 일이냐. 출발하자마자 갑자기 왼쪽 무릎이 아파서 힘이 안 들어간다. 어찌 포지션을 바꿔보고 해도 너무 아프다. 억지로 오른쪽으로 페달링을 해서 꾸역꾸역 가본다. 페이스는 15㎞ 그래도 너무 힘들다. 일구형은 일단 양평시내로 가서 파스라도 사서 붙이고 가자고 한다. 그게 오히려 더 빠를 것 같다면서... 그러나 양평으로 가려면 달리던 길에서 빠져야 하고 해서 그냥 억지로 계속 탄다. 가다가 약국이나 휴게소 보이면 파스를 사기로하고..

  페이스야 좀 떨어졌지만 그래도 즐거운 하이킹이다. 어차피 목표는 홍천인데 그리 조급할 것도 없었다. 계속 이런 페이스라도 여유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처음 보이는 휴게소에 들러서 스프레이파스와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먹는다. 아픈 무릎에 스프레이파스를 뿌리고 나니 한결 좋다.

  다시 출발!
왼쪽 무릎 상태는 달리다 보니 이제 하나도 안 아프다. 그런데 이건 뭐냐? 이번엔 오른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다. 아까 왼 무릎도 페달링하는 무릎각도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하다보니 안 아파 진 듯하여 오른 무릎도 그렇게 한번 시도해 본다. 좀 괜찮은 듯 하다가도 다시 아프고 말고를 게속 반복한다. 라이딩 끝까지 오른 무릎 통증 때문에 엄청 고생했다. 페이스도 올리지 못하고 리미터가 달린 차처럼 무릎을 달래면서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안가서 용머리 휴게소(12시 반 100㎞)에서 또 다시 휴식. 이번엔 양쪽 무릎에 전부 스프레이파스를 뿌리고 어께에도 뿌려주니 한결 살 것 같다.

  여기를 지나 약간의 언덕을 오르니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105㎞ 시각은 1시. 너무 늦은 페이스다.ㅜㅜ 그래도 기념사진 한번 박고 다시 출발. 얼마 안가서   검문소 앞에 산채비빔밥집 간판이 눈에 띠어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들어간다. 이제 1시 반 정도 여기까지 120㎞였다.

  산채 비빔밥을 시켰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고생한다며 공기밥 하나 서비스로 준다. 얼렁 해치우고 또 커피 한잔과 노가리 풀면서 쉰다. 뭐 오늘 그냥 가는데까지 가서 고속버스 타고 돌아오기로 한다. 일단 목표는 인제로 수정. 내가 정보를 홍천까지만 수집하여 그다음은 모른다. 그냥 후기에서 읽고 어렴풋이 기억에 남은 지명 정도밖엔 없다.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그냥 인제까지는 이길 그대로 따라가면 나온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또 양평서 홍천 가는 정도나 홍천서 인제가는 정도나 지도상에서 비슷한 거리였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용대삼거리(미시령입구)까지는 금방이라고 한 글도 읽은 기억이 있다.(후에 알게된 사실로, 천만의 말씀인 판단 착오였다.ㅜㅜ) 하여간 썬크림도 다시 바르고 산뜻한 기분으로 다시 출발한다. 쉬다가 출발하니 또 무릎이 심하게 아파온다. 슬슬 달래면서 천천히 가본다.


  3시40분경 팜파스 휴게소에 도착했다.(142㎞) 사진에서 본대로 정말 휴게소 분위기는 이국적이고 쉬어갈 만하다. 갈증과 열기를 한꺼번에 충족시키기 위해 딸기 쉐이크를 주문한다. 위에 메뉴판에는 값이 표시돠어 있지 않았다. 뭐 그래도 신림동에서 천원이면 사먹는 것이 얼마나 비싸겠냐면서 주문하고 살펴보니 으악~ 데스크위에 한잔에 3500원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이속에 아이스크림은 하겐다즈가 들어갔을 거야라고 위로하면서 잔디밭 벤치에서 휴식을 취한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이 여기 쉼터에서 많이 쉬다간다. 잔디밭에 그네도 있어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사진 몇 장 찍고 4시쯤 다시 출발한다.


  홍천서 인제가는 길은 매우 위험하다.

  홍천까지 올 때는 갓길도 넓고 좋았는데 홍천서 인제까지는 곳곳에 공사를 하고 있고 갓길도 거의 없다. 차도 맨 가생이 흰 라인을 자전거도로 삼아 아슬 하게 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운전사들이 자전거 타고 가는 우리들을 배려하여 운전해줬다. 뒤에서 빵빵거리지도 않았고 우리를 추월해 갈 때도 옆 차선으로 멀찌막히 돌아나가 주었다.

그러나,  개중에 안 그런 운전자도 있었다. 아줌마가 운전하는 소나타2였는데 까딱했으면 내 핸들과 사이드밀러가 부딫일뻔 했다. 앞서 가는 뒷모습을 보니 중앙선쪽으로 여유공간이 더 많았는데 바깥차로로 바짝 붙어 운전해갔다. 우리들을 못 봤는지 중앙선 쪽으로 붙는 것이 무서워서 그렇게 운전하는 것인지... 하여간 지나가는 순간에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놀랬었다.  이것 말고도 도로가 좁아 두 번이나 차선 밖으로 밀려나간 적이 있다. 대형 차량들은 차선하나에 차폭이 꽉 찬다. 무슨 도로가 이렇게 좁은지..

  또 얼마간 가다보니 공사중인 터널을 만났다. 근데 이건 뭐냐. 갓길하나도 없다. 길 폭도 차량 한 대 겨우 지나갈 폭 밖엔 안되고 터널은 굽어있고 터널안에는 조명시설도 없다. 한 눈에 보기에도 위험스러웠다. 후미등이 있는 내가 뒤에 가기로 하고 차들 지나가는 타이밍을 잘 맞춰서 좀 뜸 할 때 획 지나가기로 한다. 일구형 먼저 출발. 그리고 내가 출발 했는데 오른 무릎 통증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 ㅜㅜ 에라 모르겠다고 그냥 운명에 맡기고 터널을 막 달렸다. 뒤에서 다가오는 차소리가 터널에 울린다.ㅜㅜ 그러나 소리가 더 커지지는 않고 오히려 줄어든다. 그럭 저럭 빠져나오고 보니 뒤에 오는 차량이 내 뒤에서 천천히 따라와 주었다. 어찌나 고마운지ㅜㅜ 날 추월해 갈 때 손 한번 흔들어 고마움을 표시해주고 또 달렸다.  


  인제에서 고속버스를 탈 예정이었으나 인제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다. 가다가 인제로 빠지는 길이 나왔지만 무시하고 달린다. 무릎은 더 아파 왔지만 더 오기가 생기고 뭐 가다가 안되면 백담사 언저리에 민박이나 하고 다음날 올라갈 작전도 구상해 본다.
사실은 인제대교 지날 때까지만 해도 해가 8시정도 지는 것으로 계산하고,
  '미시령입구에서 한 시간이면 오를 것이라 잡고 정상까지만 해 있을 때 올라가면 라이트(버닝타임1시간 20분정도) 하나로 내려가기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미시령입구까지 7시에 도착하면 되겠다.'

가면서 잠시 쉬는 매점에서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보지만 차타고 얼마 걸린다고 알고 있을 뿐 별로 도움이 되진 않는다. 대강 계산해 보니 얼추 아슬하게 계획한 대로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오늘 속초를 넘어가 보기로 한다.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지 못해 또한 번의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다.


  계속 달렸다. 무릎의 통증은 사그러들 줄을 모른다. 물도 다 떨어지고 허기도 져서 가다가 서울 쉼터란 간판이 보이길래 들어가 쉬기로 한다. 현재 시각 6시반 여기까지 188㎞를 달려왔다.
매점서 아이스크림 하나랑 게토레이 하나 마시고 물을 보충한다. 싸간 음식도 거의 다 먹어치운다. 육포 양갱 핫브렠 잠시 요기하고 금새 출발 한다. 난 여기가 용대 삼거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좀 늦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미시령은 넘어갈 듯 했다.(착각이었다.)

  그러고 몇 백미터 달리니 내설악 휴게소(189㎞)가 보인다. 그 앞에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드디어 미시령에 다와가는 느낌이다 주변 풍경도 슬슬 설악의 냄새를 풍긴다. 난 여기 삼거리가 미시령초입의 용대 삼거린 줄 알았는데, 이후 한 참을 더 가서야 용대 삼거리가 나왔다. (뒤에 확인 해 본 결과 여기는 미시령과 한계령의 갈림길이었다.) 여기 지날 무렵이 7시 언저리니까 거의 계산이 맞아 떨어진다고 하면서 달렸다. 그러나 계속 평지다. 이상하다. 초입에서 미시령까지 12㎞ 정도 된다고 하던데... 벌써 한 참을 달렸는데 왜 언덕이 안나와... 일구형이 허기가 진다고 해서 길가에서 소세지랑 칼로리바란스 하나를 비운다. 이때가 7시 15분. 슬슬 날은 저물어 간다. 그냥 설렁 본 기억으로 인제 원통지나 곧 삼거리 있고 거기가 용대삼거리란 지명과 매치되면서 같은 곳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큰 삼거리 분기점(46번 국도와 44번국도)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었다.

  이 시점에선 어떤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적어도 7시엔 용대 삼거리에 도착해야 라이트 도움없이 미시령을 넘을 수 있는데... 하산 길도 적어도 20㎞는 될 것이고 나 밖에 라이트가 없어서 라이트 하나로 둘이서 하산하는데 시간이 적어도 한 시간을 걸릴 것 같고...그럼 하산 하는데에만 라이트를 쓰기에도 빠듯 할 것 같았다. 에라 뭐 어찌되겠지...’
좀 앞에서라도 용대 삼거리가 나오면 어찌저찌 시간을 맞출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웬걸 한 시간을 더 달려가서야 용대 삼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에 날은 완전히 어두워 졌고 십이선녀탕휴게소와 백담사휴게소가 지나쳐지자 그제서야 10여년전 대학생때 처음 설악산 오르면서 외웠던 여기 지리가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ㅜㅜ 큰일이다. 아직 더가야 미시령 입구가 나올 텐데 벌써 날은 어두워지고 설상가상으로 달도 없다. 서울 같지 않아서 시골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간간히 지나치는 민박집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합리적인 선택은 여기서 1박하고 내일 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남는다. 시험에 항상 조금씩 못 미쳐 떨어지는 것이 지금 상황과 같은 것 같다. 조금만 더 부지런히 달려왔더라면 여유있게 넘었을 것을 항상 조금 부족하여 다음 기회로 미뤄야만 하는 것이 그렇게 넘고 나면 성취감을 얻으려했던 속초라이딩이 더 좌절을 남겨줄 것 같았다. 아니면 여길 하루만에 넘기로 하는 도전을 다시 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일단 8시 10분 정도에 용대 삼거리에 도착했다.(여기까지 205㎞? 정도) 클릿을 빼고 오른 다리로 땅을 짚는 순간 발라당 자빠졌다. 내 체중을 오른 무릎이 지탱하지 못했던 것이다. 페달링이야 왼쪽 위주로 하면서 꾸역꾸역 여기까지 왔지만 걸음을 걸을 때 오른 다리는 몸무게를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아팠다. 더 억울하다. 아직 허벅지는 충분한 힘을 갖고 있는데 무릎이 아파서 그 힘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다니...

  잠시 상의를 한다. 계속 도전을 할지 민박을 할지. 일단 삼거리 앞에 있는 가게에서 물을 보충하고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 전화를 걸어 서울 올라가는 막차 시간을 알아본다. 10시반 11시반에 있단다. 미시령을 넘기만 하면 고속버스를 이용하여 서울까지 가는 것은 문제 없어보인다. 근데 문제는 버닝타임 1시간 20분짜리 라이트 하나로 둘이서 미시령을 넘을 수 있는 것인가이다. 일구형도 여기서 멈추기 싫어하는 의지를 보인다.


  그래 출발이다. 여기서 그만 두면 성취감보다는 패배감이 들 것 같다. 라이트를 부착하고  출발하면서 본 핸드폰시계는 8시 22분을 알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럭 저럭 올라갈 만하다. 뒤에 간간이 오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과 마주오는 차량들의 불빛으로 대강의 도로 상황을 파악한다. 아무런 빛도 없으면 그제서야 잠시  라이트를 켜서 길을 확인한 다음 끄고 가다 다시 켜고 확인 한 다음 가기를 반복했다. 껐다 켰다를 반복하는 것이 배터리 절약에 득이 되는 것인지 해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켜고 달릴 수는 없었다. 최대한 끄고 달리는 시간을 늘이려고 노력해 본다.
솔직히 어둠과 싸우는데 온 신경을 곤두세워 언덕이 힘든지는 잘 몰랐었다. 하기야 초반부는 아주 완만한 언덕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한동안 가다보니 라이트를 끄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뒤에서 계속 빛이 비춰져서다. 거참 무슨 차가 이렇게 느리게 오나 하고 올라가는데 급커브를 돌고서도 곧 바로 길이 비춰지는 것이 이상했다. 차라면 코너 도는 시간차 생각하면 벌써 앞질러야 했는데 말이다. 궁금해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정말 놀랬다.
  빨강 파랑 의 경광등이 번쩍거리는 차가 우리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말 없이 계속 우리를 묵묵히 따라와 주었다. 손을 들어 고마움을 표시한 뒤 마음 놓고 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 우리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힘이 되는 줄 몰랐다. 무릎 아픈 것도 잊었다. 빨리 올라가는 것이 뒤에서 가드해주시는 분에게 덜 미안 할 것 같아서 사력을 다해 올랐다. 그러다 힘이 빠지고 자전거 컨트롤이 안 되어서 도로변 배수로에 빠져 넘어 졌다. 기왕 넘어진 김에 잠시 쉬면서 순찰차 타신 분과 몇 마디 얘기를 했다. 그 아저씨 춘천에서 출근하는데 출근길에 우리를 봤었고 순찰하다 여기서 다시 보게 되었다는 얘기, 너무 위험해 보여서 뒤에서 가드를 해 주겠노라고... 너무 고마웠다. 사실 이분이 없었다면 자전거를 타고 미시령을 넘는 일은 너무 위험했지 싶다. 아마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거나 도로 내려왔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최순경님 덕분에 안전하게 미시령까지 오를 수 있었다. 뒤에서 경찰차가 호위해주고 지나가는 차들도 안전하게 비껴가고, 우리도 이제 순찰차 폭만큼의 도로를 넓게 사용할 수 도 있고 뒤에 차가오는지 노심초사 안해도 되고, 흐흐 아마 한 밤중에 순찰차를 지원차량삼아  라이딩한 팀은 우리 말고는 없지 싶다. 지원 차량이 가드해주는 부러움도 일거에 해소되었다.^^*


  드디어 미시령 정상이다. 순찰차가 앞서 들어가고 우리가 따라들어갔다. 최순경님이 음료수를 사주시겠다면서 차에서 내리신다. 황급히 여기까지 가드해주신 것만도 고마운데 그럴 수는 없다면서 먼저 매점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또 자빠질 뻔 했다. 역시 자전거에서 내리니 오른쪽 무릎이 힘을 못 받는다. 미시령 매점의 계단을 쩔뚝이면서 올라가니 벌써 최순경님이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 주신다.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분도 대학 졸업하고 자전거로 여기를 올랐었다고 하면서 그때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최순경님은 기념사진 한 장 찍고나서, 조심해서 내려가라는 말과 함께 관내로 돌아갔다. 음료수 산다 어쩐다 하다가 올라온 시간을 체크 하지 못 했는데 수다 좀 떨고 음료수마시고 사진찍고 매점 나올때 시간이 9시 20분이었다. 일구형 말로는 우리가 정상에 도착 할 때 9시 5분쯤이었다고 하는 데 그 기록은 서로 못 믿겠어서 그저 50분쯤 걸렸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미시령 정상까지 211㎞. 초입부터 7㎞ 정도되는 듯하다.)



사진 몇 방 더 찍고 9시 35분경 다운을 시작한다. 내가 앞에서 불을 밝히고 최대한 천천히 내려가기로 한다. 뭐 위험한 건 둘째치고 이제 페달링을 하지 않고 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도 잠시 하산 길에 다른 복병을 만났다. 추위다. 위에 윈드자켓을 입었고 아래는 칠부바지를 입었는데도 이빨이 부딫칠 정도로 바람이 차가웠다.  최대한 속도를 죽여서 내려오긴 했는데 어느 정도로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중간에 속초시 경계에서(10시경) 기념 사진을 몇 장 찍고 속초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속초지리를 몰라 속초시에서 잠시 헤메다가 10시 50분에서야 서울가는 고속버스터미널 앞에 설 수 있었다. 민박하고 가라는 아주머니의 유혹을 물리치고 심야우등버스표 두장을 사고 저녁을 해결하러 앞에 해장국집에 들어갔다.

  여기까지 총 주행거리 230㎞ 평속 20.5㎞/h

  무릎은 아프지만 서울서 속초를 하루만에 왔다는 사실에 너무나 뿌듯했다.
  처음 홍천간다고 알린 친구들에게 속초에 무사히 도착했노라고 연락하고 맛있게 선지국 한 대접 비우고 나니 딱 11시 20분이다. 얼른 가서 11시 30분 발 서울행 고속버스에 자전거 두 대를 싣고 자리에 앉아 오늘 하루를 되새겨 본다. ㅎㅎ
그래봐야 앞 타이어 굴러가는 저편으로 도로위에 하얀 선이 기억의 전부다. 경치를 느끼고 뭐고가 없었다. 그냥 무릎 통증을 참으며 달렸을 뿐이었다. 아침 6시 반부터 시작한 오늘의 라이딩이 여기서 마감(?)하면서 버스의 우렁찬 엔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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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다가 추워서 깼다. 옆에 아줌마와 기사 아저씨 얘기를 들으니 뒤에 손님이 토해서 힛터를 틀었다가 에어컨으로 바꿨다고 한다. 아~ 춥다. 그래도 어쩌냐 아까 미시령에서 내려올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 잠을 청해본다.

  얼마 못되어서 다시 깼다. 갑자기 배가 슬슬 아파오는 것이다. 아까먹은 선지국이 잘못 되었는지 속이 너무 안 좋다. 그러나 곧 휴게소에 도착 15분간 정차한단다. 잘되었다 싶어 일어나려는 순간 무릎이 말을 듣지 않는다. 흑흑... 속이 안 좋은 거랑 화장실까지 무릎 통증을 참고 가는 거랑 비교해 봤다. 결정은 그냥 서울까지 참자로 났다. 그러나 이 선택도 어쩌면 잘못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때부터 내내 괄약근에 힘주는데 신경을 쓰느라 한 숨도 못 자고 조마조마 하면서 겨우 서울에 도착 할 수 있었다.  

  3시 반에 서울터미널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일구형에게 부탁하고 난 바로 화장실로 갔다. 이제 좀 후련하다.
이제 콜벤을 불러 집에 가는 길만 남았다. 서울행 차편을 일구형이 계산한 관계로 서울서 콜벤값은 내가 내기로 하고 전화를 걸었다. 몇군데는 거절. 어찌 연락이 되었더니 3만 5천원을 달란다. 비싸다. 차라리 자전거를 바퀴를 떼고 일반 택시를 한사람씩 타고 가는 것이 더 싸게 치겠다고 하면서 일반 택시 몇 대에 물어본다. 전부 사양한다. 내참 치사해서... 하는 수없이 터미널서 신림동 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한다.

  서울서는 거의 왼쪽다리로만 페달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 사당고개를 넘고 서울대 고개를 넘었다. 일구형은 사당고개를 내려서 끌고 가는데 너무 부러웠다.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타고 넘을 수 밖에... 끌고 가는 속도보다 더 느리게 꾸역꾸역 올라간다. 여차저차 하여 집 앞에 당도하니 4시 반이 넘었다.

총거리 241㎞   라이딩 시간만 12시간 31분 평속 19.3㎞/h 가 이번 라이딩의 흔적들이었다.

3층 고시원까지 자전거를 올리는 데도 10분이나 걸렸다. ㅜㅜ

대충 사워를 마치고 다시 잠을 청해본다.
너무 아쉬운 속초행이었던 것 같다.
사전 준비없는 무리한 도전이 여러 사람을 힘들게 했었고 위험한 여행이었지만 많은 분의 배려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번엔 철저한 준비와 계획으로 다음 도전을 기약하면서 먼 동이 터오는 창 밖이 페이드 아웃된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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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고생들 하셨군요. 축하합니다. 오래 기억에 남겠지요.
  • 잘 읽었습니다.
    제가 사는 속초 이야기라 더욱 반갑구요.
    미시령 무사히 넘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번주말엔 미시령과 진부령을 넘어봐야겠습니다.^^
    아..신림동 익숙한 곳에 사시네요..~
  • 고생 많이 하셨네요 출발 시간이 넘늦은거 같아요 보통 새벽 5시경~6시경 서울 시 경계를 빠져 나가야 되는데....
    사전 준비로 그곳 지리를 좀 더 알고 가셨으면 수월 하셨을텐데....
    완주 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바램글쓴이
    2005.5.12 19:45 댓글추천 0비추천 0
    청아님, 엘파마보이님, 락헤드님 관심과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 정말 고생 많이 하셨겠지만 한편으론 뭔가 했다는 뿌듯함이 있겠죠... 근데 질문 있는데요..
    고속버스 탈때 잔차는 어떻게 실으시는데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입문한지 2달 된 초보입니다. 저도 내년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데........하여튼, 부럽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와~~~~ 넘 멋져요!
    저도 그 멋진 여행 다음달 1일에 합니다. 하하하
    자전거 경력 공원에서 대여 밖에는 없지만...
    용기내서 !! 멋지게!! ㅎㅎㅎㅎㅎ
autellee
2005.05.14 조회 1736
바램
2005.05.11 조회 2006
nambur
2005.05.07 조회 1566
nambur
2005.05.07 조회 1645
nambur
2005.05.07 조회 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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