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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그 혼자만의 싸움(속초 당일 왕복 / 분당-춘천-양구-속초-홍천-양평-분당)

O-O2005.06.16 11:54조회 수 3455추천 수 10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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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다,
그 먼 길을 혼자 가야 한다. 처음 써바이벌 속초 공지를 올렸을 때 만 하더라도 몇몇 분들이 참가 의사를 밝혔었지만 중간공지에는 아무도 꼬리 글을 달지 않는다. 참가 의사를 밝히는 최종 시한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아무런 꼬리 글이 달리지 않는다.

혼자……
이미 나는 혼자 달리는 일에 익숙해 져 있었던 터라 혼자라는 사실이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단지 아쉬운 것은 시간 단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라이딩의 목표는 완주가 아니라 얼마나 지난 번 시간을 단축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이룰 수 없음이 못내 아쉬워 이미 마감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꼬리 글 달리기를 기다렸지만 결국 아무도 없었다. 어느 누구도……

결국 혼자 450키로 가까운 거리를 달려야 한다.
이미 나는 지난 10주 동안 4000키로 가까운 거리를 거의 혼자서 소화해 냈다. 충분할 만큼 내 몸이 만들어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한 가지 아쉬움은 허리 통증으로 인해 작년 가을부터 겨우내 자전거를 타지 않아 내가 생각했던 목표 치에 아직 5% 부족하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는 점이었다. 이 부족한 5%를 메우기 위해 무던 노력을 했지만 일상 생활을 하면서 10주 안에 목표한 만큼의 몸을 만든다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10주 전,
다시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으로 로라에 걸려 있는 자전거에 앉았을 때의 그 실망감이란…… 그 때 나는 15분을 앉아 있질 못했다. 얼마나 엉덩이가 아프든지…… 그 다음날 나는 다시 자전거에 앉아 보려고 시도 해 보았지만 엉덩이 통증을 인해 다시 15분을 견디지 못하고 내려 오고 말았다. 결국 일주일을 허송세월로 보냈고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이 9주이다. 나는 이 9주 동안 제법 치밀한 계획을 세워 자신을 독려했다. 덮어 놓고 우격다짐하듯 많이 타기 보다는 좀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워 자신을 채찍질 했었다.
-. 자세교정(될 수 있으면 3주째 까지는 야외 라이딩을 자제하고 로라를 통해 자세를 교정 할 것)
-. 페달링 분당 100 회전 유지(2주차 2*5, 3주차 2*6, 4주차 2*7, 5주차 2*8, 6주차 3*7, 7주차 3*8)
-. 근력과 지구력 향상(주 1회 100키로 이상 장거리 라이딩)
-. 심폐기능 향상을 위한 인터벌 훈련(웜 업 후 최대 심박에서 1분 견디고 75% 심박에서 5분간 휴식 하기 4에서 6회까지 늘리기)
-. 스피드 훈련(번개를 통해 다른 라이더와 함께 라이딩 함으로 한 주간 훈련을 종합하면서 스피드 훈련을 함)
-. 기타 (시간이 있을 때 마다 웨이트 트레닝을 해 줌)

시간이 지나가면서 확연히 달라지는 내 능력을 확인 할 수 있었고 그것은 훈련의 지루함을 상쇠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훈련을 위해 드린 시간이 자전거 위에서 나타날 때의 그 느낌은, 환희 바로 그것이었다. 페달링 시 몸에서 솟아나는 힘과, 그 힘을 페달에 전달 했을 때 쭉쭉 뻗는 그 느낌이란…… 아마도 이것이 자전거의 마력이 아닌가 싶다. 바로 이 맛, 이것이 자전거라는 마약이며 나는 서서히 그 마약에 중독 되고 있었다. 물론 늘 그런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훈련의 권태로움과 “쉬면 안 되는데……” 하는 중압감에 시달리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날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쉬는 것도 훈련의 연장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래곤 했었다.

4, 3, 2
카운트 다운이 시작 될 즈음 고민에 빠졌다. 혼자 왕복을 한다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물론 내 자신과 오래 전에 맺은 약속을 지키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번의 목표는 완주가 아닌 시간 단축이었기에 완주 자체만을 가지고는 내게 그리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혼자 시간을 단축하는 것도 무망하고……
“이미 나에게는 속초를 완주할 만한 체력이 준비 된 상태이고 이렇게 준비 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었기에 여기서 그만둔다 한들 무엇이 문제가 되랴…… 그렇게 먼 길을 지루한 라이딩으로 일관하느니…… 여기서 그만 두는 것은 어떨까? 어차피 절반의 목표 밖에 이룰 수 없다면 성실하게 훈련한 것만으로도 절반의 목표는 이룬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리를 스쳐갔다. 하지만 날 아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내가 이번 속초 행에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해 왔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관심을 갖고 지켜 보는 것은 과연 속초를 다녀 왔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 하여 차라리 비라도 오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지만 그 역시 무망한 것이었다. 기상청은 나의 바램과 아무 상관 없이 맑음으로 예보를 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즈음 갑자기 내 머리 속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속초 당일 왕복” 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말았다. 이유인 즉은, 내가 내 자신의 몸 상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내게는 한 가지 핸디캡이 있다. 그것은 라이딩을 오래 할 경우 목뼈의 통증과 어깨 근육의 뭉침으로 인해 고개 조차 들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지리산 종주를 한다든지, 장거리 라이딩을 할 때면 어김없이 나를 괴롭히는 복병이 있었기에 나는 이내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접고 말았다. 남들이 땅 끝 마을 투어 계획을 진행할 때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전혀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했었는데 자꾸만 한 번 해 보자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더욱이 누군가가 나의 이 속초 1박 왕복에 대해 폄하 하는 듯한 글을 본 터라(나중에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음을 확인 하였지만 어찌되었는지 속초 당일 왕복을 결심할 즈음에는 그렇게 느껴졌다.) 마음 속에서 오기가 발동했다. “한 번 해 보자” 하는……
그렇다면 문제는 목과 어깨인데…… 이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재작년 “속초는 아직도 속초다” 왕복 투어를 할 때 돌아 오는 길에 목의 통증으로 인해 고개 조차 들 수 없는 형편이 되었었는데…… 그것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 고민 되었다. 그러던 중 진통제 구입을 위해 약국에서 약사와 상담을 하던 중에 진통제를 먹으면 진통의 효과는 있지만 근육이 점점 더 경직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작년 일을 생각해 보았다. 재작년 어깨를 짓누르는 통증을 참기 위해 처음에는 세시간 만에 그 다음에는 한 시간 간격으로 계속 진통제를 복용하며 달렸던 기억이 났다. 어쩌면 진통제를 먹지 않는 것이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생각은 적중했다. 이번 라이딩을 하면서 어깨와 목뼈 통증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어깨를 쿡쿡 찌르는 통증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일 라이딩 시에는 그런대로 견딜 만 했었으니까……

“혼자 속초 왕복 당일 라이딩……”
하지만 시간 계획이 영 어정쩡하였다. 밤 12시에 출발 한다면 경기도에 들어 설 때 즘이면 다시 어둠과 싸워야 하는데 혼자로서는 아무래도 무리 일 듯싶었다. 특히 춘천 양구 코스는 양평 홍천의 코스보다 더 멀고 시간상으로는 2시간이 더 걸리는 거리이다.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하더라도 식사 시간 빼고 쉬는 시간 포함하여 10시간 이내를 끊는다는 것은 무리이다. 뿐만 아니라 분당에서의 출발은 잠실출발 보다 약 10키로 이상 더 멀다. 아무리 생각해도 20시간 이내에 440키로 가까운 거리를 끝낸다는 것은 불가능 했기에 (이것은 순전히 내 능력에 맞춘 것이다.)  당일 왕복 계획을 하루 왕복으로 바꾸고 밤 10시 출발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혹시나 동행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 다시 공지를 올려 보았다. 역시나 아무도 뎃글을 달지 않았다. 정말 혼자 혼자였던 것이다.

문제는 밤길을 어떻게 혼자 라이딩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아는 형제와 가족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출발서부터 해 뜰 때까지 차로 뒤를 봐 주기로 하고 이것 저것 분주하게 챙겼다. 아직 가족들 앞에서 한 번도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어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밤을 가르고 밤새도록 자신과 싸움질을 하는 아빠가 저들의 뇌리 속에 강하게 자리 잡을 것은 뻔한 이치이다. 특히 집중 조명을 받으면 7,8시간을 아빠의 생생한 드라마를 감상한다는 것은 지루하기는 하겠지만 살아 가면서 저들에게도 큰 교훈이 될 만한 것이라는 생각에 둘째 딸아이, 그의 남자친구(비상시 운전병으로…… 자원했다.) 막내 아들, 아이들 엄마, 그리고 운전할 형제, 이렇게 다섯 명의 응원부대를 이끌고 나는 출발 라인에 섰다.

드디어 10시다.
이번 투어에 기자로 임명된 딸아이 앞에서 어색한 포즈를 취하고(사진은 한 장도 건지지 못했다.) 440키로의 대 장정의 힘찬 발진을 시작했다. 뒤에서 차로 밀어 붙여서 인지 응원석에 앉은 5명의 응원 덕분인지는 몰라도 페달은 점점 가속을 더해 가고 있었다. 1차 목표는 약 70키로 지점인 상천 휴게소까지 이다. 예상대로라면 2시간 20분쯤이면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출발한지 10분이 못 되어 마음속에 가벼운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몸이 덜 풀려서인지 뒤에 사람들이 있어 긴장을 해서 인지 몸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내가 괜한 오기를 부린 것이 아닌가? 이 밤길을 달려 왕복을 해? 출발부터 이렇게 몸이 무거운데 과연 완주를 해 낼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아마 뒤에 나의 뒷 모습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포기 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일을 제쳐 두고 운전을 해 주고 있는 청년과 또 함께 응원하고 있는 가족들…… 그리고 딸 아이의 남자친구…… 저들 앞에서 내가 페달 질을 멈춰 버린다면 얼마나 우스운 꼴이 될 것인가? 이 생각을 하니 공연한 오기를 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어찌하던 날이 밝아 저들이 되 돌아 갈 때 까지는 버티고 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야탑을 출발해서 팔당대교를 건너기까지의 길은 이미 내게 익숙하다. 이 길에서 나는 제법 많은 땀을 흘렸기에 이곳 저곳에서 나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 했다. 내 숨소리도 들리는 듯 했고…… 함께 숨소리를 들으며 달렸던 라이더들도 느껴 졌다. 이제는 어느 정도 몸도 풀려 제법 가속이 붙었다. 그런데 문제는 캄캄한 밤이라 도대체 내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 심박 수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백업 차량은 뒤에서 나를 밀어 붙이고 있고 내 옆으로는 미친 듯 질주하는 차량들이고 그 사이를 거친 호흡을 몰아 쉬며 달리고 있는 나…… 도대체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것일까? 속도와 심박 수를 알아야 페이스 조절을 할 텐데 아무것도 보이질 않으니…… 다행스럽게 간간히 비춰주는 가로등이 길잡이가 되어 나를 안내한다. 속도계는 35-40을 찍으며 심상치 않는 속도를 예고 해 주었고 나는 그 속도를 보면서 나름대로 만족하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본다. 하지만 “과연 내가 이 속도를 유지한 체 얼마나 달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 때문에 이내 걱정이 앞선다. 번갈아 바람막이를 해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나절 달리고 쉬는 것도 아닌, 20시간 넘게 계속 달려야 하는 나로서는 35-40의 속도는 고민으로 다가 왔다. 계속 이 속도를 유지해야 하나? 아니면 좀 서서히? 아직까지 호흡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것을 보면 춘천까지는 이 속도를 유지해도 좋을 듯싶었다. “그래 일단 상천 휴게소까지 가는 거다” 하는 생각으로 속도에 대한 생각을 지우고 페달 질을 해 본다. 46번 국도와 6번 국도의 갈림길에 도착했을 때 랩 타임을 찍어 본다. 1시간 16분 약 40키로, 평속 31.1이 나온다. 혼자서 이 정도이면 만족할만한 속도이다. 내가 이렇게 만족해 할 때 내 뒤 만을 바라 보며 뒤따르는 나의 응원부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또 집중 조명을 받으며 야생마처럼(뒤 늦게 안 사실이지만 뒤에서 보는 내 모습이 꼭 야생마 같았다 했다) 앞을 향해 달리는 나를 보는 도로의 운전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미친*? 훈련 중? 대단한 놈? 21&^%*@#$%*2i?
이때 즘 나는 파워 젤 하나를 빨아 먹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달리면서 먹는 그 맛…… 그건 해본 사람만이 안다고 했던 선배들의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내 몸은 아직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지 않았기에 그 맛의 깊음을 깨닫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아마도 내 몸에 있는 수분이 소진되기 시작 할 때 즈음이면 나는 그 깊은 맛을 절실히 알게 될 것이다.
다시 한참을 페달 질 하고 상천 에덴 휴게소에 도착을 했다. 분당을 출발해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2시간 20여분, 거리는 약 73키로 나는 이 거리를 쉬지 않고 분당 99 알피엠을 유지하며 달려 왔다. 차에서 내리는 가족들의 모습은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번도 자전거 타는 것을 본 적이 없던 그들로서는 쉬지 않고 분당 100번에 가까운 페달링을 하면서 달리는 내 모습이 경이로웠을 것이다. 힘들지 않느냐? 어떻게 쉬지 않고 같은 속도로 달릴 수 있느냐? 뒤에서 보니 평지에서는 35-40키로 언덕은 25킬로를 달리는 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면서 말을 건네 온다.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직은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일러 준다. 횡 하니 부는 찬바람으로 인해 이들은 추위를 호소하며 하나씩 차 안으로 들어 가 버린다. 나도 잠시 트렁크를 열고 등을 붙이고 눈을 지긋이 감는다. 마음만 먹으면…… 아니 마음을 먹지 않아도 달려야겠다는 생각만 접으면 금방이라도 잠이 올 것 같은 느낌이다. 옹색하기 그지 없는 트렁크 바닥이 이렇게 안락할 줄이야…… 준비한 꿀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바나나 두 개를 까 먹은 후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 탔다. 그리고 2시간 만에 한 번씩 휴식 한다는 계획을 한 시간에 한 번씩으로 수정하고 다시 힘찬 페달 질을 시작했다.

춘천가도에서 나는 내 앞에 나보다 한 걸음 먼저 달리고 있는 내 모습에 감탄을 한다. 아스콘으로 포장 된 도로에서는 몰랐었는데 시멘트 포장 도로에 접어 들자 헤드라이트에 비춰진 내 모습이 기린처럼 긴 모습으로 내 앞에 길게 드리운다. 현란한 페달링이다. 사실 나도 달리는 내 자신을 본 것은 처음이다. 도로 위를 현란하게 질주하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자세의 흩으러 짐도 없이 일정한 페달링을 하는 내 모습에 한참을 넋 놓고 바라 보았다. 지나가는 차에서 파이팅을 외치지 않았다면 그 모습에 더 도취되었을 텐데……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하게 내 뇌리에 박혀 있다.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모습일 것이다. 약 50분을 페달 질을 했을 때 자전거는 춘천터널을 지나 춘천시가지와 외각도로 분기점에 서 있었다. 여기서 잠시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하고 전의를 다져 본다.

지금까지는 예상대로 잘 달려 왔다. 하지만 이제부터 미시령을 넘을 때까지 끊임 없는 언덕들과 씨름을 해야 한다. 여기서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하면 돌아오는 길이 힘들 것이다. 춘천 – 속초 구간에 나름대로 힘을 비축하면서 적절한 속도를 내 준다면 돌아 오는 길도 별 무리 없을 것이다 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몸을 풀면서 우측으로 길게 뻗어 있는 춘천 외각도로를 바라본다. 어두움 속에서 장승처럼 버티고 있는 그 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이내 외면을 하고 만다. 내가 잡아야 할 언덕들을 굳이 주시하면서 미리 힘을 뺄 필요는 없었으니까……

10분 간의 휴식을 하고 춘천 외각도로의 언덕들과 한 판 씨름을 시작한다. 이제는 지나는 차량들도 현저히 줄어 들었고 가끔씩 굉음을 내고 달리는 오토바이들이 나의 심심함을 달래 줄 뿐이다. 뒤 따르는 차도 저속으로 달리는 것이 지루했는지 언덕 아래 멈추어 서서 언덕을 다 오르도록 빛을 비추며 꿈쩍도 않는다. 잘하는 일이다. 비록 언덕이 길기는 하지만 굽은 길이 아니었기에 언덕 아래서 언덕이 다 끝나도록 빛을 비춘다 한들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이렇게 아홉 번이 넘는 오름 짓을 하고 난 후, 배후령 입구에 도착한다. 구간 랩 타임이 55분 평속 23정도 였다. 제법 많은 언덕과 씨름을 한 후의 결과 치고는 제법 괜찮은 편이었다. 팀 라이딩을 할 때와 비슷한 속도였고…… 배후령 입구에서 10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어두움 속에 묻혀 있는 배후령을 노려 본다. 배후령…… 내겐 미시령 보다 훨씬 힘들게 느껴지는 고개이다. 거의 한 시간을 페달 질을 해야 올라가겠지…… 볼 것도 보여 질 것도 없는…… 보이는 것이라고는 라이트에 비친 아스팔트 밖에 없는 길을 한 시간 동안 씨름해야 한다는 사실에 한기를 느낀다.

자! 다시 출발!
출발을 외치며 굽이치는 배후령에 붙어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지나가는 차도 없고 함께 놀아 줄 만한 오토바이도 없다. 그저 외로이 내 자신과 이야기를 하며 페달을 밟을 뿐이다. 끝 없이 이어지는 언덕이 지루하기 이를 데 없다. 칠 흙 같은 어두움으로 인해 내가 도대체 어느 정도 올라 서 있는지 조차 분간이 되질 않는다. 굽이치면 또 언덕이 나오고 돌아 서면 또 굽이치고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여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여기 같은 언덕들을 수 없이 굽이쳐도 여전히 내 앞에는 또 다시 굽이치는 언덕이다. 도대체 이 굽이침이 언제나 끝나려는지, 끝은 있기나 한 것인지…… 하지만 나야 좋아서 하는 고생이지만 나를 뒤쫓는 저들은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10키로 좀 넘는 속도로 차로 자전거의 뒤를 따른 다는 것, 구경할 것도 감상할 것도 아무것도 없는 칠 흙 같은 길을 그것도 졸음과 싸우면서 뒤 따른 다는 것을 생각하니 언덕의 지루함 보다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한참 동안의 자신과의 독대를 마친 후 46분만에 배후령 정상에 올라섰다. 어차피 내리막 길이니 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오음리를 향해 내려꽂는다. 하지만 이내 나는 속도를 줄이고 만다. 백업 차량의 라이트에 의지해 달려가는 내가 차량 보다 먼저 굽이치고 나면 앞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먹통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뒤 따르는 차량을 향해 꽁지에 바짝 붙도록 하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하여 낮이라면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내려 꽂았을 길을 절반의 속도로 더듬거리며 내려 왔다. 배후령을 다 내려 왔을 때 내 앞에는 추곡령이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추곡령, 지금은 터널이 있어 예전보다는 수월하지만 들판을 가로 질러 뻗어 있는 제법 만만치 않은 긴 언덕이다. 저 언덕만 넘으면 소양호 주변을 끼고 도는 지리지리한 길이 있을 것이고 내 체력도 거의 한계점을 드나 들게 될 것이다. 나는 또 다시 추곡령 앞에서 내 자신과 독대를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의 자신과의 독대란…… 참 매력적인 것이다. 이제 나는 서서히 혼자만의 라이딩을 즐기기 시작한다. 그래 즐기자, 아직 내 앞에는 멀고 먼 길이 남아 있지 않은가? 이 고독을 즐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먼 길을 갈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은 참 적응이 빠르다. 어느 틈엔가 나는 내 자신의 모든 환경에 적응해서 내 여건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의 독대가 마쳐질 즈음 나는 터널을 빠져 나온다. 또 다시 내리 막 길이다. 얼마간을 내려 왔을 때 길은 다시 꿈틀거리며 자신의 등성이에 힘을 주기 시작한다. 산허리를 돌아 한참을 페달 질 한 후에 나는 추곡 약수터 입구에서 2시간 여 만에 휴식을 취한다. 추곡약수터 입구는 내게 추억이 있는 곳이다. 자전거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겁도 없이 이 길로 속초 도전을 했었다. 그것도 낮 기온이 35도인 7월 하순의 어느 날…… 그 날 얼마나 덥든지 나는 달아 오르는 몸을 식히기 위해 바로 이곳 다리 밑에 몸을 숨기고 멱을 감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의 그 시원함이란…… 여기서 잠시 그 때 썼던 후기를 보자 “추곡 터널을 지나 추곡 약수터 가는 입구에 있는 계곡이 저를 유혹하더군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옷을 벗고 목욕을 했습니다. 여기가 천국인가 싶더군요. 목욕을 마치고 페달을 밟아 소양 호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로 다닐 때의 느낌과는 영 딴판이더군요. 아하 이래서 자전거를 타는 모양이다 싶었죠” 이렇게 그 때의 상념에 잠길 무렵 아주 어렴풋이 여명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뒤따르는 차를 돌려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갈 길을 재촉했다. 양구 선착장까지의 길은 급 커브가 많고 길이 외져서 항상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른 새벽에 혼자 라이딩 하다 사고라도 난다면 뺑소니로 이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다. 하여 양구 선착장까지는 차를 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페달 질을 시작했다. 하지만 배후령을 넘으면서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라이딩을 한 뒤라 그런지 속도가 여간 해서 붙질 않는다. 아마 굴곡도 심하고 경사도 있어서 일 것이다. 사실 양구 속초 구간 중 이 길만큼 지루한 길은 없을 것이다. 경치야 그만이지만 뻔히 눈 앞에 보이는 길을 한 없이 돌아가야 만 하는 그 심정이란…… 그래서 일까 여기 저기 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추곡에서부터 양구까지 잇는 새 도로처럼 보였다. 얼마 있지 않아 이 길도 고속도로처럼 뻥 뚫린 길이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힘이야 덜 들겠지만 고생 뒤에 얻어지는 쾌감은 덜할 것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를 몇 번을 돌아 치고 난 다음에야 겨우 양구 선착장 부근의 폐허가 된 통일 휴게소에서 쉴 수 있었다. 잠시  휴게소 광장에 드러누워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해 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운전하는 형제의 빠듯한 오늘의 일정을 알기에 서둘러 돌려 보내야만 했다. 짧은 팔, 반바지로 옷을 갈아 입고 엉덩이에 바디 글라이드를 바르고 남은 과일을 주섬주섬 주워 먹는다. 원통 삼거리 휴게소에 갈 때까지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과일로 배를 채우고 차에 있던 배낭을 짊어 지고 아쉬운 작별을 한다. 그리고 뒤 돌아 선 시간이 아침 6시가 조금 못 된 시간이었다.

정말 혼자다.
묵시적인 후원자도 없는 상태로 외로운 길을 가야만 한다. 내 자신과 싸우면서…… 기운이 쫙 빠진다. 나를 바라 보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지치게 한다. 갑자기 페달이 무거워 지고 자전거는 힘겹게 용트림을 한다. “아! 앞으로 남은 길이 많은데…… 이를 어쩐다.” 한참을 어거적 거린 후 나는 광치령 앞에 섰다. 광치령은 배후령 보다 길이도 짧고 높이도 낮지만 일직선으로 뻗은 언덕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아득한 기분을 들게 만드는 곳이다. 어떻게 저 긴 언덕과 싸움을 벌이나? 하는 생각이 들 자 나는 이내 광치령 넘어에 있는 긴 내리막을 연상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 본다. 광치령에서 원통까지 30키로 가까운 거리가 내리막이다. 약간의 힘만 주어도 평속을 훌쩍 뛰어 넘을 수 있는 지형을 가지고 있음을 머리 속에 상상하면서 “조금만 참자…… 조금만” 이라는 말을 되 뇌이며 스스로를 다그쳤 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밤새 자지 않고 달려 온 길이 상당한데 아직도 그것보다 더 먼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지치게 한다. 이 때 머리 속에 내 자신과 대 타협이 시작 된다. 당초 출발을 할 때는 미시령을 넘는 것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가지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미시령까지 인가? 미시령을 넘을 것인가? 미시령을 넘었다가 다시 넘어 올 것을 생각하니 아득하다. 지금까지 넘은 고개만도 숨막히는 것인데 미시령을 넘어 다시 되 돌아 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지난 봄 모 동호회에서도 미시령만 찍고 오지 않았는가? 그것도 귀한 일인데 꼭 넘어야 하나? 설사 내가 미시령만 찍고 온다 한들 나의 이 라이딩을 폄하 할 사람이 있겠는가? 또 나 혼자인데 미시령만 찍고 넘어 왔다 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에게 협상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것을 진정한 의미의 완주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자 힘이 들어도 넘자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작정한 것이 미시령 정상에 섰을 때 쉬지 않고 한 걸음에 속초로 내 닫는 것이었다. 혹여 라도 미시령 정상에서 내 마음이 흔들릴까 하여…… 내 자신과 대 타협이 끝날 즈음 나는 광치령 터널을 힘겹게 지나고 있었다. 이제부터 원통까지는 내리막이다. 시원한 아침공기를 가르며 한 달음에 원통 3거리까지 내 달았다. 나는 다시 두 시간 가까운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린 것이다(여기서부터는 시간이 정확하지 않다. 랩 타임 찍는 것을 잊어 버렸다.).

아침 7:30분이 좀 넘은 시간 나는 원통 삼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내가 처음 계획했던 시간 계획보다 약 1시간 가까이 늦어지고 있었다. 잠실서 속초까지 10시간, 분당에서는 좀 더 멀기에 30분 정도 더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시간 정도 더 지연이 되고 있었다. 혼자 라이딩에 양호한 시간이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지금 상태로라면 9시 좀 넘어야 다시 미시령을 향해 자전거를 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미시령을 넘을 때면 언제나 이놈만 잡으면 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넘었는데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다시 미시령을 넘어 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숨이 턱턱 막힌다. 광치령에서 나에게 협상을 벌렸던 바로 그 놈이 살짝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 온다. “우리 다시 협상을 시작해요” 하면서…… 나는 수 없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미시령 휴게소는 처다 보지도 않고 가리라는 다짐을 해 본다. 이 구간에서 미시령을 내려 오는 몇몇 라이더들을 만났다. 얼마나 반갑든지…… 밤새 사람 그림자 하나 보지 못하고 달려 온 나로서는 그들은 나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비록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들의 인사는 내게 큰 응원이 되어서 나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미시령의 자존심처럼 보이는 바짝 선 구간을 아무 생각 없이 오른다. 이제는 제법 아침 햇살도 따가워 졌고 기온도 올라 몸에서 솟아난 땀이 옷을 적신다. 나는 이 때 미시령과 한판의 자존심 싸움을 벌였다. 미시령은 내게 더 낮은 기어 비를 요구 했고 나는 2단 밑으로는 내려 갈 수 없노라고 항변한다. 내가 생각해도 미련스럽다. 좀 더 낮은 기어 비로 페달을 빨리 돌리면 속도가 더 날 텐데…… 굳이 나는 2단을 고집하며 미시령 정상에 설 때까지 미시령과 자존심싸움을 벌인다. 미시령을 오르면서 내 스스로에게 다짐한 대로 미시령 휴게소 쪽은 쳐다 보지도 않고 속초를 향해 내 달았다. 저 멀리 보이는 땅 끝과 푸르른 바다가 소리 없니 나를 지켜 본다.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절반의 성공을 이룬 것이다.

미시령에 내려서 자전거를 돌린 시간이 9시 30분이 좀 못 된 시간 이었다. 배낭에 있는 마지막 바나나 하나를 까 먹고 파워 젤로 칼로리 보충을 한 후 나는 다시 미시령에 붙었다. 아직까지 아침식사를 하지 못했다. 당초 계획은 미시령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을 계획이었는데 내 마음이 꺾일 까 하여 여기까지 내려 서 있는 것이다. 미시령을 오르면서 아침 먹을 곳을 궁리 해 본다. 미시령 정상에 올라서면 10시 30분이 가까울 텐데…… 너무 늦다. 어차피 미시령부터 원통 삼거리까지는 내리막 길이니 쉬는 시간이다 는 생각을 다시 하며 미시령을 내려서서 아침을 먹을 것을 생각해 본다. 이제는 미시령과 기어 비를 가지고 자존심 싸움을 할 처지가 아니다. 그저 미시령이 요구하는 대로 순응해 가며 미시령 정상을 올라 원통을 향해 내려 쏜다. 그 순간의 느낌은 이제 거의 다 끝났다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선배들의 말이 떠 올랐다. 미시령에서 서울까지 페달 질 몇 번 하니까 오더라는…… 정말 그럴까? 정말 나한테도……

허기가 진다. 속이 헛헛해서 더 이상 달릴 수가 없다. 하여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 서 있는 식당들을 힐끔힐끔 쳐다 보지만 어느 곳 하나 마땅한 곳이 없다. 좀만 더 가자 좀만 더 가자 하는 것이 12선녀 탕 입구까지 와 버리고 말았다. 제법 근사하게 보이는 설렁탕 집에서 설렁탕 한 그릇을 시켜 놓고 얼마간의 휴식을 취한다. 한가지 신통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음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등을 붙이면 잠이 오겠지만 식당에서 그것도 혼자 눕겠다는 말은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개 눈 감추듯 한 그릇을 해 치우고 커피 한잔을 하면서 잠시 상념에 잠긴다. 지난 밤 나누었던 자신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여기서 나온 시간이 11시 20분이다. 많이 늦었다. 아마 내가 마지막으로 원통을 지나는 라이더 일 것이다. 혼자만의 외로움을 달래며 인제 들녘을 내 닫는다. 인제 터널을 막 들어섰을 때 터널 저 끝에 가물거리며 사라지는 하나의 점이 있다. 사람일까? 사람이라면 자전거일까? 아니면 오토바이일까? 자전거를 탄 라이더라면 나에게는 행운이다. 먼 길을 외롭지 않게 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다시 엔진에 시동을 걸어 본다. 부릉…… 부르릉…… 엔진이 생생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쓸만하다. 저들이 얼마만큼의 속도로 달리는지 모르지만 이대로 간다면 3,40분이면 족할 것이다 는 생각을 하고 인제 터널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로에는 차량으로 가득하다. 차가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갓길도 제대로 없는 공사중인 도로에 차들이 가득 차 있으니 난감하기 이를 대 없다. 속도를 낼래야 낼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다. 그래도 어쩌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는 수 밖에…… 차량들 사이로 저 건너 희미하게 보이는 두 명의 라이더를 발견하자 다시 힘이 솟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도로 끝까지 엉덩이를 내 밀고 있는 차량으로 인해 속도를 줄이고 만다. 이렇게 해서 쫓고 쫓는 추격전이 한 시간 넘게 진행 되었다. 잡힐 듯 하면 다시 도망치고 도망치면 다시 잡고…… 결국 한 시간 여 만에 이들의 꽁지를 잡고 잠깐의 인사를 나눈다. 이들은 자신들을 추격해 온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역시 동일한 속도로 달린다.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12선녀 탕 입구에서 쉬지 않고 달려온 나에게는…… 아니 밤새 달려온 나에게는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었다. 좀 쉬어 가면 좋으련만 쉴 생각도 않는다. 속도는 떨어지고 기진맥진이다. 하여 다시 따라 붙을 즈음 좀 쉬어 갈 것을 제안한다. 얼마를 다시 달렸을까? 어느 휴게소에 이르러 잠시 쉼을 갖는다(지명이 정확하기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신남에서 약 30분 정도 지난 지점에 있었을 것이다). 따져 보니 아침 먹고 쉬지 않고 2시간을 달린 것이다. 그것도 추격전을 벌리며…… 무리다. 사실 홍천까지 차가 밀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쉬지 않고 달린다는 것은 내게는 부담이었다. 하여 쉬면서 나를 소개하고 한 시간에 한 번 정도만 쉰다면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건 낸다. 그들도 자신들을 소개했다. 상당히 젊은 라이더 들이었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홍천을 향해 출발한다. 홍천 들녘에 들어 섰을 때 차량 정체는 해소 되었고 제법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덕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평지야 빠른 페달링으로 인해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지만 언덕은 그렇지 못하다. 근육의 피로도가 이만 저만이 아니어서 힘을 주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한 참을 페달 질 한 후 홍천 검문소를 지나 처음 만나는 휴게소에서 다시 휴식을 취했다.

아이스크림을 연거푸 먹으며 더워진 몸을 식혀 본다. 허기졌지만 다음 휴게소에서 식사를 할 요량으로 행동 식 몇 개 주워 먹고 양평을 향해 출발한다. 점심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한 시간만 달리면 제법 오래 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이 구간에서 나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가속이 붙는 것에 놀라면서 달려 본다. 처음 출발할 때와 비슷한 35-40을 넘나들면서 달린다. 그러다 뒤를 따르는 젊은 라이더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잠시 잠시 속도를 줄여 본다. 그렇게 달려 양평을 25키로 정도 둔 지점에 있는 휴게소에서 다시 쉼을 가졌다. 아마 당시 시간이 오후 3를 좀 넘긴 시간으로 기억 된다. 나는 당연히 점심을 먹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점심 제안을 했지만 자신들에게 먹을 것이 많아 그것을 먹고 가도 충분하겠다면서 영양 갱을 꺼낸다. 아…… 이 아득함이란…… 혼자 식사를 하고 갈 수도 없고…… 머리 속이 복잡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한 끝에 양평까지 가자는 생각을 했다. 이들은 서울로 향했기에 양평에서 헤어져야 하고 그러면 그 때 식사를 하리라는 생각에 양평까지 한 시간 남짓한 시간임으로 참기로 했다. 권하는 영양 갱을 입에 물기는 했지만 단 맛에 다 먹지 못하고 얼음과자로 배를 채우고 다시 출발을 한다. 나보고 앞 설 것을 제안하지만 이제 그럴만한 기력도 용기도 없다. 저들을 뒤 따르며 파워 젤을 먹어 보지만 그것 역시 효력을 다해 간다. 생각이 복잡하다. 차라리 휴게소에 남아 혼자서라도 식사를 할 껄, 후회가 막심하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출발한 것을……

생각해 보면 양평까지 억지로 온 것 같다. 힘도 다 소진했고 체력도 바닥이 났다. 근육의 피로도도 극에 달하고…… 이런 상황에서도 웃으면서 잠시 함께 했던 이들과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누고 양근 대교를 건너 퇴촌 쪽에 붙었다. 하지만 또 다시 난감한 상황이 벌어 졌다. 도로 상황이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속도를 내는 것은 고사하고 차들 사이를 빠져 나가는 것조차 힘든…… 어쩌면 이것이 잘 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상황으로 속도를 낸다는 것도 무리이고 다음에 후기를 쓸 때 차가 밀려 좀 늦었다 하면 자존심도 세워 질 것이고…… 허기 진 배를 달래기 위해 두리 번 거리며 길가에 늘어 서 있는 음식점을 살핀다. 먹을 만한 것이 없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너무 덥고 갈증이나 시원한 동침이 국수를 먹었으면 좋겠는데 적당한 것이 없다. 퇴촌으로 넘어 가는 고개를 넘어야 “죽여주는 동침이 국수 집”이 있었던 기억이 났다. 지금 이 상태로 저 언덕을 넘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 즈음 언덕 오르기 직전에 열무국수 집이 눈에 뛰었다. 열무국수 한 그릇을 시켜놓고 화장실에 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아니 모습이라기 보다 몰골이었다. 자신과의 지루한 싸움을 하고 돌아 온 멋진 장수의 모습이 아니라 어디서 연탄을 나르고 온 숯 검댕이었다. 매연으로 인해 얼굴이 까맣게 변했고 고글이 닿는 자리는 더욱더 진한 검댕이 묻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시령을 넘으면서 바른 썬 크림이 지워 질세라 세수 한 번 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달려 왔으니까…… 이제 더 이상 햇볕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세수를 하고 다시 거울을 들여 다 보니 그제서야 거기 자신과 밤새 씨름을 하고 늠름하게 서 있는 장수를 보게 된다. 회심의 미소를 짓고 열무국수 한 그릇을 비운 시간이 6시가 좀 넘는 시간이었다. 20시간 가까이 달려 오면서 한끼 식사로 지금까지 달려 온 것이다.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 졌는지…… 장거리 라이딩은 계속 먹어야 한다는 나의 지론이 무색하리만큼 무모한 달음질을 한 것이다.

아이들과 잠시 통화를 하고 퇴촌을 넘는 언덕에 붙었다. 자전거가 헛헛해 지는 느낌이 들어 타이어를 보니 펑크가 나 있었다. 다 와서 펑크가 난 것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차가 밀려 갓길도 없는 비포장도로를 수 없이 드나들었으니 그도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을 하며 펑크를 때우고 다시 오름 짓을 시작한다. 이 때 즘 내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릎이 아픈 줄 알았는데 무릎 뒤쪽 근육이 뜨끔거리는 것이었다. 아마도 20여 시간 당기는 근육을 사용한 연고리라. 그래도 견딜 만 했고 이제 조금만 더 달리면 라이딩을 마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끊임 없는 페달 질을 해 본다. 광주를 통과 할 때 즈음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고 고뱅이의 뜨끔거림은 더 심해져서 페달 질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여기서 지원 차량을 요청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였다. 자전거를 세우고 뭉쳐진 근육을 풀고 해 보지만 자전거에 올라 타 페달을 당기기만 하면 여지 없이 뜨끔거린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기는 힘을 자제하고 미는 힘만을 사용 할 수 밖에…… 속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 지고…… 언제나 장거리 라이딩을 하고 돌아 올 때면 분당에 들어 서기 직전에 버티고 있는 갈마치재가 부담스러웠었는데 이런 몸으로 갈마치재를 넘는다는 것은 무리다 싶어 갈마터널을 선택한다. 터널을 통과한다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 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약간의 갓길이 있어서 그리 위험하지 않았다. 터널 끝났을 때 그리고 내리막이 시작되었을 때의 그 환희란…… 고뱅이의 아픈 것도 잊고 힘찬 페달 질을 해 본다. 다시 자전거는 차들 사이를 비집고 질주하기 시작한다. 그 때 나는 음악 소리를 들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를…… 내 심장에서 연주하는 음악 소리를...... 질주하는 차량들이 연주하는 교향곡의 웅장한 선율을......


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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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보 번장의 축령산 라이딩 후기. (by ........) 0508 신월산, 우리들의 이야기..^^ (by yang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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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소 멋을 부려서 긴 리플을 달았는데,

    로그아웃이 되어서 다 날아갔네요 ^^

    여하튼 수고하셨습니다. 써클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 대단하십니다~.그리고 경의를 표합니다.
    저 또한 일년전 5월말에 수원->속초까지 나홀로 라이딩을 한사람으로 누구보다도 공감대를 갖고 후기를 끝까지 읽어내려갔습니다.
    편도로 한번 가기에도 고난의 길이었는데, 당일 왕복으로 라이딩을 한다는것은 대단함을 떠나서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오는군요^^.
    아무런 사고없이 힘든길을 무사 완주하신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자세히 읽고 리플달면 날라가내요 ㅎㅎ 배후령 미시령 차이가 뭘까요?
  • O-O글쓴이
    2005.6.16 17:14 댓글추천 0비추천 0
    글이 길어서 읽는 동안에 로그아웃이 되는 모양이군요. 이궁 긴 글이라 죄송합니다.^^
  • 2005.6.16 19:26 댓글추천 0비추천 0
    힘든 만큼 가슴엔 무언가가 많이 남아 있기 마련이죠,,,,저도 서울 부산 무박할때 무릎에 이상이 생겨 한달 정도 고생한 기억이 나네요,,,,,,무픞 충분히 맛사지 해주셔서 큰 탈이 없었으면 합니다,,,,,,정말이지 대단하신 도전에 박수 보냅니다,,,,,
  • 대단합니다...6월초 속초에서 광치터널을 지나...양구,화천,춘천거쳐 안산까지오며 다시는 이길로는 자전거를 타지 않겠노라고 기를 쓰고 왔던길을....ㅠㅠ
    왕복으로 하루만에....
    생각만해도 그 체력에 집념이 오기가 무서워 집니다.
    경의를 표하면서 무사 완주에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며 라이딩하시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 합니다.정말 대단하십니다.!!
  • 혼자 가실수 밖에 없군요........번개 공지 보고는 겁 부터 들던기억이.......
  • 가족들이 한번도 잔차를 제대로 타본적이 없다는데 또 한번 놀랐습니다..
    슬슬 입문을 시키시죠~~
  •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신걸 축하 드림니다
  • 참. 이글은 물론 명예의 전당으로 추천하는 것이 ......

    저는 개인적으로 이부분이 정말 인상적이네요..

    "헤드라이트에 비춰진 내 모습이 기린처럼 긴 모습으로 내 앞에 길게 드리운다. 현란한 페달링이다. 사실 나도 달리는 내 자신을 본 것은 처음이다. 도로 위를 현란한 질주하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자세의 흩으러 짐도 없이 일정한 페달링을 하는 내 모습에 한참을 넋 놓고 바라 보았다. "

    기린이라니.............
    참 멋진 표현입니다. 보지않아도 눈앞에 그 광경이 선하군요....
    새벽의 적막한 국도를 홀로 미친듯이 페달질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 O-O님 대단하십니다... 상상도 안될 일을 정말 해 내셨군요... 존겹합니다. 짝짝짝~~~~~~!
  • "내 앞에 나보다 한 걸음 먼저 달리고 있는 내 모습에 감탄을 한다"
    (읽는도중..카피했다는..ㅋ)
    이말이 참 멋있어요....패달링하는 0-0님의 그림자는 얼마나 멋찔까...
    지금보니.. 0-0 자전거 모양이네요~
    기립박수 보냅니다!!!
  • 멋집니다...최근 나태한 제생활에 대한 반성이 됩니다...고맙습니다.
  • 건강한 모습으로 귀향하심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 한 편의 역사를 기록하셨군요. ㅎㅎㅎ. 요즘 즐겁게 바쁘다 보니 인사가 늦었네요. 함께 갔다면 초 죽음이었을 제 모습을 생각하니 역쉬 현명한 제 판단에 안도의 한 숨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아직 님의 글 다 읽지는 못했지만 가족과 함께 가는 어둠의 질주 정말 인상적입니다. 무척 의미있는 장면이라고 여겨집니다. 막연히 님의 2년전 님의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잠실-미시령에 대한 꿈을 상상하며 현실로 이뤘고 지난해엔 춘천경유 미시령의 꿈도 이뤘습니다. 모두 님의 글 속에 녹아있는 이상한 매력에 이끌려 시작했던 게죠. 기록은 저조했지만 최선을 다한 지라 자기만족의 극치도 맛보았구요. 어쩌면 올 해엔 서울-목포가 목표일 수도 있었겠지만 제겐 그다지 이상하게도 장거리에 대한 유혹이 많이 사라지더라구요. 단지 마음이 자꾸 해외로 쏠리며 괜한 몽상만 의자에 앉아 하곤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여름에 한 가지 저질러 볼려구요. ㅎㅎㅎ. 가까이 편한 곳 함께 라이딩하며 콩국시나 실컷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간 힘드셨던 얘기도 들어보면서요. 건강하시구 다시 한 번 뵐 날을 기대 해 보니다. 즐라하세요.
  •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저도 꿈꾸어 봅니다.
  • 잘 읽었습니다.....대단하시네요..저도 2002년 서울에서 속초까지 자전거로 완주하고
    다음날 다시 속초에서 미시령 올라와서 왕복하는 팀원들 배웅하고 버스로 돌아왔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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