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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 자전거도로에서 있었던 일

씩씩이아빠2004.01.23 23:41조회 수 1770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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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사고 처음 맞는 겨울인지라

과연 겨울복장이 얼마나 추위를 막아줄까하는 궁금증도 있고해서

월동복장 테스트 겸 구정 다음 날 정오 무렵에

중랑천 자전거도로로 나갔더랬습니다.

방송에서는 연일 영하 15도가 넘는 혹한이라고 해서

'너무 추우면 그냥 돌아오지 뭐' 이런 생각과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대문 밖을 나섰습니다.

나와보니 기온이 그냥그냥 그랬습니다.

'공연히 긴장했잖아'


동막교에서 내려다 본 의정부 자전거도로는 하얗길래 그냥 차도로 달렸습니다.

집을 나선지 십분 정도 지나서부터 둘째 손가락이 시렵기 시작하는데

나중에는 시렵다 못해 몹시 아팠습니다.

스트레치원단의 속장갑에 캐넌데일 겉장갑을 꼈는데도 대책이 없더군요.

날이 풀렸을 때만 해도 손에서 땀이 나던 장갑였는데 춥기는 춥나봅니다.


망월사역을 지나서 부터는 몸에서 약간의 땀이 나더군요.

헬멧 속으로 숭숭 들어오는 찬바람 덕분에 머리 속은 몹시 상쾌하지만

반면 둘째손가락은 여전히 아팠습니다.

군용울양말을 신은 발은 추위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발 상태에는 제법 만족합니다.

스페샬머드팬츠 역시 오늘 같이 추운 날에 적격이더군요.

폴라텍 긴팔 져지와 펄이즈미 방한쟈켓만 입은 상체도

추위는 커녕 땀이 송송 납니다.

엑스밴드 덕분에 얼굴과 귀 시려운 걸 전혀 못느낍니다.

쿨맥스원단으로 만든 여름용이지만 겨울용 엑스밴드였다면 더웠을 듯 합니다.

나름대로 겨울복장 테스트에 합격점을 줍니다.

장갑은 좀더 쎈놈으로 새로 장만해야 겠습니다.


도봉산역 밑으로 해서 자전거도로에 진입했습니다.

생각 외로 걷거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더군요.

생활자전거를 타고 도봉산 포장마차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드문드문 지나가는데 MTB를 탄 사람들은 전혀 없더군요.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 사람도 못만났습니다)

'휴일이라 다들 산으로 갔나보군' 생각하며 서울 쪽으로 달렸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아프던 둘째손가락이 멀쩡해졌습니다.

마비가 되거나 얼어서 감각이 없어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오늘따라 컨디션도 무척 좋습니다.

평소때 보다 기어를 한,두단 올리고 달려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속도가 쭉쭉 올라가는게 꼭 선수가 된 기분입니다. ㅎㅎ

'와! 오늘 컨디션 최고인데? 한양대 끝까지 가볼까?'

그래도 무리하지 말기로 다짐하고 반환점인 다리 밑에 도착합니다.


담배를 끊고 나서는 잠시 쉴 때에도 참 무료하더군요.

(덩달아 커피도 끊었습니다. 담배 필 때는 반드시 커피를 마셨었거든요)

말동무 할 사람도 없고...

그저 물 한모금 마시고 몇 분 동안 우두커니 서있다 되돌아오는게 전부입니다.

참 멋대가리 없습니다.

오늘은 잠시 쉬고 있자니

찬공기가 땀에 젖은 몸 속으로 사정없이 파고 들더군요.

감기 걸리기 딱이겠기에 지체없이 자전거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오늘 컨디션이 좋은게 아니라 바람 덕분이었습니다.

바람을 등에 지고 달리니 쌩쌩 잘 달렸던거였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정말 군자교 지나까지 갔더랬으면 큰일 날뻔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맞바람 때문에 너무 힘들더군요.

어째서 순풍은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인지...

저만치 앞에서 생활자전거를 탄 아저씨가 어슬렁어슬렁 가더군요.

전형적인 군고구마장사 복장에 구두 뒷축까지 꾸겨 신었더군요.

앞질렀습니다.


'찌그럭찌그럭'

갑자기 내 뒤를 따라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의식하지 않은 듯 자연스레 속도를 더 내서 달려봅니다.

'이 정도 속도면 따라올 엄두를 못내겠지...'생각하는데

이 아저씨 이제는 작정을 하고 바짝 뒤 따라오며 휘파람까지 붑니다.

휙~ 휙~


'누구 약올리는건가?'

애써 태연한 척 시프트업을 해서 내달립니다.

체력을 오버해서 달리자니 힘이 듭니다. 헉헉!

허벅지에 마비 증세까지 오려합니다.

그래도 최대한 몸을 숙인 자세로 열심히 달립니다.

하지만 여전히 뒷꽁무니를 바짝 따라오며 휙~휙~ 연신 휘파람을 붑니다.

"어으~ 허! " 이상한 괴성까지 지릅니다.

어렵소? 이젠 노래인지 타령인지까지 부릅니다.

꼭 매화틀에 앉아 타령 부르는 모양새입니다.

'아마 약간만 더 달리면 제풀에 떨어질거야' 생각하며 죽기 살기로 달립니다.

저만치 앞에 약간의 오르막이 보입니다.

이 곳에서 떨구기로 작정하고 힘을 다해 올라가는데 어휴~ 정말 힘듭니다.

어기적대며 용을 쓰며 올라가는데 그 아저씨가 휭하니 앞서 나갑니다.

얼핏 페달질을 하는 아저씨의 다리를 보니 힘든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iOi

일순간 맥이 탁 풀립니다.


내 자전거가 더블크라운에 10인치의 리어트레블 그리고 2.6인치의 타이어인

다밤 프로젝타일 다운힐 자전거입니다.

무게도 엄청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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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면야 창피하지나 않죠.

명색이 레이싱용 MTB에 완전 복장을 갖추고서 구두 꾸겨신은 아저씨한테

무참히 참패를 당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라이더들 망신, 대표로 시켰다는 자괴감까지 들려합니다.

체력이 바닥난 다리로 간신히 끌고 오며 다짐을 합니다.

'이런 일이 한 두번이냐?'

'마음을 비우자'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패잔병 마냥

어슬렁어슬렁 도봉산 포장마차에 도착했습니다.


구정연휴라 그런지 너무 추워서인지 포장마차도 한적하더군요

의정부까지는 빙판길이라 언덕으로 올라와 다시 차도쪽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확성기로 노랫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더군요.

어디서 이렇게 시끄럽게 하나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비닐하우스 텃밭에다 물을 대서 얼려가지고 스케이트장을 만들었더군요.

어릴 때 타던 썰매와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습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어릴 적의 생각이 나더군요.

아주 외진 곳인데도 용케 알고도 가족끼리 계속 찾아옵니다.

이참에 나도 좋은 아버지 노릇이나 한 번 해봐야겠다 생각합니다.

외갓집에 간 아들녀석 오면 썰매타러 같이 와야겠습니다.

오늘 대략 1시간30분을 탔더군요.


하늘도 쾌청하고 마음도 상쾌하니 내일도 나와야겠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고수(?)를 만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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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9일 밀양 사자평라이딩 (by 천재소년) 04년 2월 21일 강화도 벤뎅이 라이딩 후기입니다; (by 지방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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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1
  • 하핫.. 철튀비 고수를 만나셨군요 ㅋㅋ
  • ㅎㅎ 후기에 나온곳들이 제가 전부아는곳들인지라 매우 반갑습니다 키키 근데 그 아저씨유명한분같으네..그분이 중량천을 누비신다는 공포의 흰운동화 아니신가..씹힌 라이더가 벌써 여럿인듯 합니다 ㅋㅋㅋ
  •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자전거를 한 번도 타지 않은 것 같은데, 새로 산 윈드스토퍼 장갑 테스트나 할 겸 저도 자전거 몰고 나가봐야겠습니다.
  • 담배 안피고 우두커니 서있다가 되돌아오는게 훨~씬 멋있습니다.^^
  • 중랑천 잔차도로 인적이 드문 저녁에 가다보면 나이드신 고수분들 정말 많습니다..
  • 안양천에서 타면 두손을띄고 체조(?)하시며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급커브도 돌고... 절대 못따라가요..
    정말 절대적인 내공(?)의 소유자들인가 봅니다.
  • 2004.1.24 17:23 댓글추천 0비추천 0
    이추위에 타셨다니... 부럽네요. 저도 내일은 한강을 달려볼까 생각중인데... 넘 추울까요?
  • 저 역시 눈에 익은 코스들에 눈에 익은 장면들이 절로 웃음이 나오는군요. 재밌고 상쾌한 글이라 참 좋네요!
  • ^^ 저의 아버지 같은분 만나셨나보군요.. 그나저나 의정부 가는 자전거길 어떻게 진척이 좀 되었나요?
  • 눈에 익은 아이디가 몇 분 보이네요. 반갑습니다. ^^
    자전거도로는 쉼없이 계속 달리니깐 추위는 느끼지를 못하겠더군요.
    다만 손과 발이 문제라 그렇죠.
    의정부까지 자전거길은 몇백미터만 비포장이고
    나머지는 기초포장공사(시멘트포장)가 완료되었습니다.
  • 가끔 한강에서 철티비 고수 만나면 정말 장난아니더군요. 패달 돌릴때마다 끼리릭 소리를 내면서 오리털파커 같은거 하나 입고 가시는데, 못쫓아가겠더군요 -_-
  • 하하, 막차에 당한 분들이 의외로 많군요.
    씩씩이아빠님... 대단하십니다. 전 이번 연휴동안 추워서 꼼짝도 안했는데...ㅠ.ㅠ
  • 공포의 흰운동화... 3~5m뒤에서 라이더를 계속 따라오는건 라이더를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공포의 흰운동화님 불안과 긴장으로 삘삘거리며 앞서는 라이더를 차라리 즈려밝고 가소서... 그것이 정작 그를 위한 길입니다.ㅠㅠ 언젠가 저와도 만나시겠군요..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금연중이신가 봅니다 성공 하시길 빌며 제경험상 커피는 절대 금물이며 물을 많이 마시길 권해드립니다
  • lsd
    2004.1.27 20:13 댓글추천 0비추천 0
    누군지 알겠네요 "어으~ 허! " 이상한 괴성까지 지릅니다<=== 이부분, 저도 중랑천에서 한번 만난적이 있습니다.
  • 저도 만난적 있는 아저씨 같은데.. 배낭메고 죽으로 쫏아오던데. 저야 누가 앞질러 가던지 상관 없는데 그러다 사고 나면 큰일납니다요.
  • 무료하시죠? 저도 그렇답니다 ㅋㅋㅋ 저도 금연 중이에요 하지만 그잠시의 무료한만 참으면 건강과 관련된 모든 잡병과 자전거 엔진의 고민이 만사 형통 된다는 생각을 하면 무료라는 말이 않나오더군요^^
  • 무료 할 때 말동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날씨 풀리면 집사람 살살 꼬셔 같이 나갈 생각입니다만
    작년에 몇 번 해봤는데 사정사정해야 가끔가다
    한 번씩 따라 나와주네요.
    완전 상전 모시고 타기입니다.
    야옹버스님, 연휴때 조카들과 친척들이 많이
    찾아와서 집이 하도 복잡해서 밖으로 나갔던겁니다.ㅎㅎ
  • 추석은 9월달인데 추위를 그렇게 타시다니 존경스럽습니다^^;;
  • 앗!
    SMSC분을 찿았습니다^^전 수서차량기지입니다^^
    자일님반갑습니다...
  • 2004.2.24 18:15 댓글추천 0비추천 0
    하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공포의 철잔차 아자씨....
    찌그럭 찌그럭, 어으~허.... 아 참 재밌네요. ㅎㅎㅎ
지방간
2003.04.30 조회 1454
지방간
2003.02.14 조회 1197
pureslv
2004.08.08 조회 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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