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남부군 열혈(녀)남아 제위께...

onbike2005.07.12 12:31조회 수 577댓글 16

    • 글자 크기





그 이름도 존엄한 방태산입니다.

오래간만에 함 끌러 가려합니다.

헙!

손없는 날로 택일하야 최종 공지 하겠나이다.

빠리 대장님의 허리는 이제 좀 어떠신지요....^^;


    • 글자 크기
==== 2001년 5월 25일 술번개 ==== (by ........) [랠리답사 밍슈편]이모저모 03 - 뮤즈님과 밍슈 (by 밍슈)

댓글 달기

댓글 16
  • 구룡덕재 -> 구룡덕봉 -> 방태산(주억봉) -> 깃대봉 안부 -> 매화동
    시간되면 붙어 보겠습니다.
    815 광복절 이후에나 가능한데..아무래도...
  • 굽이 굽이 휘돌아감은 저 아래의 물굽이와.... 그 위 산하의 자태를 어찌 안품고 싶겠소!....
    마음가는 곳에 몸이 있으나....한시적 분주함으로 동행할수 없음이 애닲도다!...
  • ㅎㅎ 가야지요... 온바하구 끌어본지두 가물가물 한디..... ^^
    근데.. 코스는 어떻게 잡을건지..... 이왕이면 담날 좀 편하게 토요일루 부탁합시다.
  • 근디 방태산이 워디지? 행정구역상..
  • 강원도 인제군과 홍천군의 경계래요..
    아침가리골 후문에 해당하지용..
    예전에 가서 함 방태산한테 강간 당했던것 같은디..
  • 방태산에서 라이딩 하실때~~ 귀신조심하세요~~~ 총각귀신~~

    중공군 공세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는 현리 전투는 중공군의 제2차 춘계공세(5월 공세) 당시, 인제 남방 가로리에서 가리봉간을 방어중이던 국군 제3군단(제3, 9사단)이 중공군 2개군(제1, 27군)과 북한군 3개 사단(제6, 12, 32사단)의 공격을 받고 방어에 실패한 후, 하진부리 부근까지 후퇴하게 된 철수작전이다. 이 전투에서 북한군과 중공군은 국군 제3군단 정면에서 공격을 개시하는 한편, 일부 병력을 서측방으로 투입하여 군단의 주보급로인 오마치 고개를 점령함으로써, 퇴로를 차단당한 국군 제3군단은 전방의 압력에 밀려 현리에서 분산된 채 산악지대를 따라 70㎞를 후퇴한 후 하진부리 부근에 집결하여 부대를 재편성하게 되었다.
    중공군은 4월 공세에서 막대한 7만명에 달하는 인명손실만 입었을 뿐, 미 제8군도 격파하지 못했고, 서울도 점령하지 못한 채 공세를 그치게 되었다. 이틈을 이용하여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38도선 회복을 위한 반격을 결심하고, 5월 1일 모든 부대에 위력수색을 실시하면서 반격을 준비할 것을 지시하였다. 유엔군의 위력수색결과 방어전면 15킬로미터까지 적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적의 대공세로 상실하였던 지역의 절반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5월 10일 이후부터 중공군이 전 전선에 걸쳐 활동을 강화하면서 공세준비를 하고 있는 징후들이 발견되었다. 적은 5개군(15개 사단)을 양구-인제지역에 집결하여 재공세를 준비하였다. 이에 유엔군 각 부대는 4월 공세중 설정한 서울방어선의 진지를 강화하고 그 전선을 고수하기로 결의하였다. 유엔군이 220㎞의 전 전선에서 진지방어를 고수하기로 결의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미 제8군은 국군 9개 사단, 미군 6개 사단, 영국군 2개 여단으로 주저항선을 점령하고, 군 예비로는 군단예비를 겸하던 미 제1군단의 미 제3사단과 미 제9군단의 제187공정연대를 두고 있었다. 밴플리트 장군은 적의 공세가 개시될 무렵 주공방향을 간파하게 된 밴플리트 장군은 신속하게 미 제3사단을 중동부 전선으로 증원하였다.

    적의 증원은 5월 15∼16일 밤 개시되었다. 중공군이 첫 돌파를 시도한 것은 미 제10군단의 우일선인 인제지역의 국군 제5, 제7사단 정면이었다. 이곳에서 국군은 중공군의 기습을 받고 삽시간에 전선이 붕괴되었다. 우측에 인접한 국군 제3군단도 한계리에서 격전을 벌였으나 중공군을 막지 못하고 철수하게 되었다. 중공군의 돌파는 의외로 신속히 전개되었다.

    당시 현리지역을 방어하고 있던 국군 제3군단은 사령부를 하진부리에 두고 좌전방에는 제9사단이 미 제10군단과 경계를 이루고, 우전방에는 제3사단이 국군 제1군단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지역내 현저한 도로망으로는 인제-현리-오마치-침교-창촌-속사리에 이르는 31번 국도로 유일한 보급로로 매우 중요한 작전의 생명선이나 다름 없었다.

    이 때 공산군이 중동부 지역에서 한국군 부대를 목표로 운용할 수 있는 부대로는 중공군 제9병단과 북한군 제2, 제3, 제5군단(18개 사단)이었다. 중공군은 신남-현리 일대에서 국군부대를 포위 섬멸하기 위하여 이들 18개 사단을 운용하여 3중 양익포위작전으로 국군 4개 사단을 격멸한다는 것이었다.

    5월 16일 18:00경 공격을 개시한 중공군은 국군 제7사단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여 제7사단 전방의 2개 연대를 붕괴시킨 후 계속 진출하여 국군 3군단의 퇴로가 되는 오마치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5월 17일 07:30경 중공군의 오마치 점령부대는 처음 1개 중대 규모였으나 계속 증강되어 오전에는 대대규모, 오후에는 연대규모, 야간에는 1개 사단규모로 확대되었다. 또한 이 날 오후에는 오마치 10㎞ 후방 침교에 대해서도 적은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한 국군 제3군단은 5월 17일 오전중에는 대책도 없이 전방부대들이 현리일대로 집결하는가 하면, 오후에는 군단장 상황보고 내용인 오마치 돌파방안에 대한 검토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후 국군 제3, 제9사단에서 1개 연대식을 차출하여 21:00 오마치 돌파작전을 시도하였으나 실기를 잃은 공격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오마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각 부대들은 통제를 상실한 채, 무질서한 철수를 하게 되었다. 철수하는 과정에서 일부 간부들이 계급장을 떼어버린가 하면, 병사들은 무기를 버린 채 도망가는 등 혼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여기에는 제3사단장 김종오 준장과 제9사단장 최석 준장, 그리고 제9사단에 군단장 대리로 훈장수여식에 왔다가 미처 복귀하지 못했던 군단 참모장 심언봉 준장 등도 있었다.

    이러한 국군 제3군단의 무질서한 후퇴와 이에 따른 적 부대들의 추격은 창촌-광원리-하진부리에 이르는 70㎞를 가서야 끝을 보게 되었다. 5월 19∼20일까지 하진부리에서 수습된 병력은 제3사단이 34%, 9사단이 40% 정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제3군단이 입은 피해는 중공군의 최초 계획에 비하면 다행스러운 것이었다. 만약 북한군 3개 군단이 정상적으로 진출하여 계획된 포위망이 형성되었다면, 방태산 및 계방산 일대에서 대량의 살육전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이 전투로 국군 제3군단은 지휘체계가 와해되고 많은 병력의 손실을 입었을 뿐 아니라 주요 장비를 거의 파기 또는 유기하게 되었으며, 북한군과 중공군은 속사리와 강릉지역에 이르는 큰 돌파구를 형성하게 되었다.

    국군 제3군단의 패퇴의 책임을 물어 미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5월 26일부로 제3군단을 해체하고 기존의 한국군 제1군단에 대해서도 육군본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통제하였다. 그러나 중공군도 이 전투를 통해 아군의 전선을 돌파하여 대부대를 포위한다는 것이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유엔군사령부도 계속적인 북진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오우.... 이렇게 상세하게.....
    근데.. 저 짱꼴라들을 누가 보냈죠 ? 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모택동이 아닙니까 ? ㅎㅎ
    이 짱꼴라들 아니면 그때.. 통일 되는건데..... ^^
  • muj
    2005.7.12 16:06 댓글추천 0비추천 0
    오~ 방태산..그렇찬아도 아침가리골로.. 구룡덕봉으루 해서...............
    핸들바에 텐트묶고 한번 가볼까 했는데...
    온바님 날짜확정되면 함 올려주세요~~~~
  • 왈바 탄생이래 이렇게 장문의 리플은 처음인것 같습니다 prollo님..ㅋ

    핸들바에 텐트묶고 ... 강츄~ ㅎ
    815광복 후에..ㅋ
    핸들바에 텐트묶고 코스
    월정사 입구 출발 -> 북대사 -> 명계리 -> 구룡덕재-> 아침가리골 조경동분교(1박)->방동약수->진동계곡->설피마을(1박)곰배령-> 주전골->오색약수->양양->어성전->법수치계곡(1박)->부연동->전후치->진고개->월정사 입구(3박4일~4박5일)
  • 4차랠리 2,3구간 +알파구먼 ㅋ...
  • 바이킹님 안녕 하세요. 위의 코스에서 설피마을=>곰배령에서 오색약수로 떨어지는코스를
    탈수있는곳 있나요.지난번에 가서 곰배령 부터 그냥 끌고만 내려와서 아쉬웠는데..

    바람소리가 탄코스:서림에 차 세우고 구룡령 업=>아침가리=>방동약수=>설피마을=>곰배령=>오색=>양양=>서림 이렇게 라이딩 했는데 곰배령 에서 길을 잘못들었나 오색까지 내내 끌고만 내려 왔답니다.기회되면 다음에 다시 가고싶은 코스라..
  • 바람소리님 강촌대회 끝나고 잘 내려가셨지요..?

    1. 설피마을 => 강선마을=>곰배령=>작은점봉=>점봉산=>단목령=>오색초등학교 (4시간30분~5시간)
    2. 설피마을=>단목령=>오색초등학교 (2시간)

    점봉산 정상에서 한계령 휴게소로 내려갈 수 있고요
    아니면 단목령으로 내려오다가 오색 주전골로 빠지는 등산로가 있습니다.
    아마도 바람소리님이 이코스로 내려오신것 같네요..ㅎ
    "곰배령=>오색 "코스는 작은점봉,점봉산을 넘어야 합니다..

    전 815광복절 후에나 가능합니다..ㅎ
  • ㅎㅎ 맞네요. 단목령에서 오색으로 빠졌네요. 그런데 이곳 등산로는 거의 탈수가 없고
    등산객도 많이 안다니는코스 같더라구요.단목령에서 코스가 여러곳으로 나눠 지기는 하던데..
  • 단목령(고도 809m )에서 직진 다운하면 오색초등학교가 나오고요 - 3km
    좌측으로 올라가면 점봉산(고도 1424m) 정상(설악산 사북능의 파노라마가 한눈에 들어오죠) - 5km
    우측으로 올라가면 북암령 입니다.

    해서 설피마을이나 진동계곡에서 야영하고 양양수력발전소로 올라가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1136봉,북암령,단목령, 오색초등학교로 다운하는 코스를 타고 싶습니다..
    815광복 후에요..ㅎ

    1136봉 정상전 산능선 마루에 넓은 초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야생화가 만발하고..1136봉에서 바라 보는 설악산 대청봉 조망이 끝내줘요..ㅎ
  • muj
    2005.7.13 13:07 댓글추천 0비추천 0
    내년 280이 요쪽 이구마...

    광복절에 눈오면 며칠 못 나올텐데...ㅎㅎ

  • onbike글쓴이
    2005.7.13 13:26 댓글추천 0비추천 0
    빠킹님.. 저 광복절까지 몬기달림미다. ㅋ

    그나저나 남부군 형님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감사드립니다. 꾸벅!
이전 1 ... 5 6 7 8 9 10 11 12 13 14... 603다음
첨부 (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