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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의 양신선언과 국민경선이라는 암수!

........2003.07.28 14:49조회 수 328추천 수 1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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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font color="#9900FF">김근태의 양신선언과 국민경선이라는 암수!!</font></b></p><p>

   김근태 의원은 민주당 국민경선을 '코미디' 였다고 법정에서 최후진술하고 이어서 노무현 대통령을 지목하여 김 의원은 또 "모두가 다 아는 비밀을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이 지도자의 자리에 선다면 그 공동체는 황폐해진다" 며 "앞으로도 이중성과 위선을 강요하는 잘못된 정치관행의 질곡으로부터 저 자신을 구출하기 위해 행동하고 투쟁하겠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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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다 앞서 정대철 민주당 대표는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1인당 20억 원씩의 경선비용이 들어갔다" 고 양심선언을 하였다. 그러나 노무현은 엇그제 "대선후보 경선자금은 밝힐 수 없다. 자료도 다 폐기해 버렸고 기획비용, 홍보비용을 넣고 보니 합법적 틀을 지킬 수 없었다. 그리고 국민경선을 위한 후원금 모금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었다" 말하였다. <p>
   그리고 국민경선 직후에는 민주당 국민 경선을 주도했던 김영배 위원장이 민주당 국민경선은 (이인제를 팽하기 위한) 사기 경선 이라고 양심선언을 한 바 있다. <p>
   또한 김근태의원은 "중앙선관위의 지침에 지출한도는 3억원인데 민주당 선관위는 대통령 본 선거 기탁금의 절반인 2억 5000만원을 기탁금으로 내라고 했다" 며 "선거인단만 7만명, 잠재적 선거인단 숫자로는 15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단지 5000만원을 갖고 국민경선을 하라는 것은 정말 코미디였다" 고 말했다. <p>
   그리고 노무현 당선에 일조한 「오마이뉴스」는 지난 4월에 정몽준과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결정도 청와대가 개입했을 것으로 보도한 바 있다.<p>
   그런데 최근「신동아」8월호에 실린 기사를 보면 박지원이 김대중의 마음을 읽고 노무현을 대통령후보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새천년 민주당 국민경선은 청와대가 가획하여 만든 사기경선임이 분명하게 확인 된 셈이다. 참으로 아무리 세상이 속고 속이는 거라지만 이럴 수가 있는가? <p>
   물론 이인제가 국민경선이라는 청와대 암수에 걸렸다는 것은 익히 짐작이야했지만 이제 그 사실에 언론에 까지 노출되고 보니 이인제는 YS에 당하고 DJ에게 팽 당한 가장 가련하고 억울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p>
   너우기 국민들은 자유스러운 판단으로 객관적 평가를 하여 나라를 위한 대통령을 뽑아야 함에도 청와대가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이를 잘못 판단하게 하는 쑈를 연출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민주주의를 파괴한 가장 추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그 사람은 민주주의의 화신이자 민주주의 파괴자이기도 하다. <p>
  국민경선 비화가 실린「신동아」에 실린 주요 내용을 한번 살펴보면 민주당의 국민경선을 앞두고 '이인제 대세론' 이 우세했을 때 박지원은 이를 탐탁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인제는 기본적으로 (선거과정이나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DJ를 밟고 넘어갈 것이란 게 박지원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이인제는 (여권의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박지원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당시 박지원의 최대 관심은‘DJ를 밟지 않을 후보’를 찾는 일이었다. 그 메신저 역할을 A라는 사람이 했다고 한다. 노무현 캠프에서도 A를 인정해줬다고 한다.<p>
   그렇다면 박지원은 왜 노무현 후보를'믿을 만한 사람' 으로 간주하게 됐을까. 당시 여권에 몸담았던 핵심 관계자들에 따르면 여기에는 중요한 계기가 있다. 바로 2001년 국민의 정부와 언론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이다.<p>
   김대중 대통령은 그해 1월11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강한 톤으로 '언론개혁' 을 언급했다. 이어 국세청이 중앙 언론사 모두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특히 주요 타깃은 「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였다. 그러자 이 세 언론과 한나라당은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역공에 나섰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정면대결이었다.<p>
  '전쟁' 초반에 서슬이 퍼렇던 청와대는 한나라당과 주요 언론사 연합군의 거센 반격이 시작되자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일부 언론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여론이 '원군'(援軍)이 못된 것이다.<p>
   당시 청와대 고위인사 B씨에 따르면 청와대는 주목할 만한 상황 판단을 내렸다. 즉, 전세가 역전된 데는‘여당 정치인들의 전선 이탈’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본 것이다. 대선 출마를 준비중이던 민주당 중진 대다수가 침묵을 지키거나 원론적 입장만을 표명했다. 특히 그때까지 동교동계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생각하고 알게모르게 힘을 몰아줬던 이인제 최고위원에 대한 청와대의 실망은 컸다. 당시 이인제 최고위원은 청와대가 언론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음에도 이 문제에 대해 “조세당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법 집행은 정치쟁점이 될 사안이 아니다”고 말하면서 뒤로 비켜섰다.<p>
   이때 이인제 최고위원이 결정적으로 DJ의 눈밖에 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1년 5월4일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인제 최고위원은 “최근 언론사세무조사는 언론탄압이 아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다음날 “그동안의 원론적인 입장에 변화가 있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자 이인제 최고위원은 측근을 내세워 “연설내용 중 정보기술(IT)과 통일문제에만 이최고위원의 개인 생각이 들어갔을 뿐 나머지는 당 정책위가 만들어준 연설문을 그대로 읽었다”고 말했다.<p>
   언론사 세무조사 부분은 개인의 소신과 상관없이 당론을 따랐을 뿐이란 설명이다. B씨에 따르면 이 보고를 받고 DJ는 이최고위원에 대해 크게 화를 냈다 한다. 반면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특히 조선일보를 겨냥해 총대를 메고 나섰다. DJ의 언론개혁 발언이 나온 직후인 2001년 2월6일 노무현 장관은 해양수산부 출입기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언론과의 전쟁 선포를 부사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같은 해 3월 개각으로 해양수산부 장관을 그만두고 민주당 고문에 취임한 이후에도 그의 ‘조선일보 때리기’는 계속됐다.<p>
   그 중에서도 8월1일 민주당 수원 국정홍보대회에서의 조선일보 비판은 공개적인 선전포고였다. 노무현 고문은 이 자리에서 조선일보를 가리켜 '친일반민족 신문' '민주세력을 탄압한 반민주적 신문' '세무조사도 받지 않겠다고 버티는 비리특권 신문' 이라고 강도 높게 공격했다. <p>
   노무현 고문의 이런 몸을 사리지 않는 지원사격에 DJ는 매우 흡족해했다고 한다. 언론과 ‘나홀로 전쟁’을 벌이던 DJ 입장에선 노무현 고문의 적극적인 가세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던 것이다. 오죽하면 이때의 노무현 고문 연설 내용을 녹음 테이프로 들은 뒤 전국 각 지구당에 돌려 홍보자료로 이용하게 했을까.<p>
   이런 일을 겪으면서 민주당 대선후보와 관련한 DJ의 의중이 '믿을 수 있는' 노무현 고문에게로 기울었다는 게 대선과정을 지켜본 정치권 인사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당시 권노갑 고문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 구파는 이인제 최고위원을 적극 밀었다. 권노갑 고문 계열의 현역의원들과 젊은 당료들이 이인제 캠프에 속속 합류했다. 이에 신파 쪽에서 적극적인 견제 필요성을 느끼던 시점이기도 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물증은 아직 없다. 다만 몇 가지 정황은 찾아 볼 수 있다.<p>
   첫째, 2002년 3월부터 시작된 후보경선을 앞두고 당내의 DJ 측근들에 의해 '게임의 룰' 이 노무현 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고쳐졌다. 당내 기반이 없던 노무현 후보로선 국민경선제 도입이 승리의 발판이었다. 16개 지역별로 실시된 경선 순서도 '노풍' 을 일으키기에 안성맞춤으로 짜여졌다는 분석도 있다. <p>
   둘째, 광주경선에서 '노무현 돌풍' 을 일으키는 데 DJ의 청년조직이었던 '연청' 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갖가지 후문이 있다. 광주에서 1위를 장담했던 한화갑 후보는 당시 경선 결과가 나오자 "어젯밤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며 의혹을 표시했다.<p>
   셋째, '박지원 사람’들의 노무현 캠프 합류다. 언론과의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분위기가 무르익던 시점인 2001년 말에 박지원씨는 10.25 재보선 참패 후 제기된 당 쇄신 요구에 의해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직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있었다. 이때 박지원씨의 핵심 측근이던 유모씨와 윤모씨가 노무현 캠프에 합류했다. 그러자 정치권에서는 경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를 밀기로 한 DJ의 뜻에 따라 박지원씨가 "이 두 사람을 노무현 캠프에 '파견' 한 것 아니냐" 는 말이 파다했다. 하지만 유씨는 국민경선 이후 후보 교체론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사실상 노무현 캠프 중심부에서 멀어지게 된다.
                                           <p> <2003년 7월  ID : 기림아><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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