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바람의 계곡 - 유명산에 서다.

퀵실버2006.10.23 23:03조회 수 537추천 수 4댓글 8

    • 글자 크기


바람입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깊은 계곡의 근원에서 밀려 올라오는 바람.
끝없이 휘몰아치며 세상을 삼켜버릴듯 고통의 뿌리를 난폭하게 늘춰내며
허연 이빨을 들어냅니다.
무한 에너지의 공급을 받으며 맹렬하게 돌아가는 바람공장입니다.
쏴아아~~~  몰아치며 무서운 몇개의 돌개를 생산해냅니다.
흐려서 희뿌연 계곡과 봉우리들, 헤아릴 수 없는 중첩의 능선들을
엄청난 힘으로 뒤로 뒤로 밀어냅니다.
끝없이 장쾌하게 펼쳐진 억새의 허리를 끊어버릴듯 휘몰고 휘몰고 휘몰아칩니다.
부러뜨려 놓겠다 작정하고 달려듭니다.
그러나 억새는 유연한 허리를 자랑이라도 하듯 순응하며 부드러운 몸짓으로
바람의 얼굴로부터 돌아앉아 있습니다.
엄청난 무리의 억새 그 전부의 하얀 얼굴을 돌리고 하늘거리며 앉아있습니다.
끊어질듯 부러질듯 하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는 억새의 인내가 부럽습니다.
아~  나는 어째서 굴종과 부러짐의 연속인가?
달콤한 굴종의 열매를 맛보다가도 굴하지 않고 결국 부러짐을 선택하는
이중의 얼굴을 소유한 나.
바람은 거칠고 거칠다가 문득 아이의 숨소리처럼 부드러워집니다.
새침떼다가 질투하며 사랑하다 슬퍼져서 웁니다.
얼굴을 향해 변덕의 바람이 몰아쳐 눈에서 눈물이 비집고 나옵니다.
피하다가 숨을 멈추고 팔을 벌려 바람앞에 섭니다.
오냐!  기다렸다.
작정한듯 바람은 가열차게 볼품없는 몸을 휘감습니다.
바람과 함께 하고 싶어집니다.
바람이 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바람은 광폭하게 밀쳐냅니다.
나의 영역에 함부로 들어오지 마라.
누구의 허락을 받았느냐며 포악하게 몰아세웁니다.
아무말도 못하고 꼼짝없이 서있습니다.
오라.
와서 내 심장을 파괴하고 검붉은 피를 뿌리라.
쓸모없는 내 심장의 피를 뽑아 차라리 대지위에 뿌리라.
뿌려서 붉은 흙, 더 시뻘겋게 물들이고 차라리 돋아나는 풀들의 자양분으로 주라.
유명산의 흙은 붉습니다.
두텁게 올라 앉은 붉고도 고운 흙먼지들은 마치 인절미에 묻힌 콩고물처럼 곱습니다.
바람이 불면 그 붉고도 고운 흙가루들이 사라락~ 날아오릅니다.
날아올라 자유로운 새들처럼 얼굴로 어깨로 가슴으로 그리고 하늘로
엄마꽃의 품을 떠나는 민들래의 씨앗처럼 퍼져 나갑니다.
그 곱디 고운 흙먼지들 사이로 이를 악다물고 한참을 서있습니다.
문득 바람이 잦아듭니다.
고요해져서 부드러워지고 순수하게 다가와 벌리고 있는 두팔, 그 손가락의 사이로
물위를 흐르는 기름처럼 간지럽히며 지나갑니다.
사랑에 빠진 여인의 손길처럼 얼굴을 쓰다듬으며 살랑거립니다.
후우~~~  긴 숨을 내쉬다가 길게 바람을 들이마십니다.
냄새.
바람의 냄새.
바람속에는 냄새가 있습니다.
유년의 기억을 들춰내는 아릿한 냄새.
여름날 아득한 신작로의 끝에서부터 몰려오는 소나기가 밀어내는 텁텁한 흙냄새.
동네 형들에게 떼를 써 얻어낸 아카시아 꽃뭉치를 손으로 주욱 훝어 입안에
가득 집어넣고 우적거리면 입안 온통 퍼지던 그 황홀한 향내.
방금 감은 어머니의 머리카락에서 나던 물냄새.
뛰어들어 품에 안기면 날듯 말듯하게 코끝을 맴돌던 젖냄새.
산골이라 귀하디 귀해서 아버지의 밥상에만 올라가 있던 잘 구어진 김, 그 파아란 바다 냄새.
아~  아버지...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아버지의 완강한 냄새.
그리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냄새.
사랑하는 사람들의 냄새.
그 사람도 지금 바람을 맞고 있을까?
나를 지나간 바람이 그사람에게 닿았을까?
바람을 맞으며 그와, 그들과 교감하고 싶습니다.
휘몰아치는 바람의 심장부에 굳세게 서서 함께 웃고 울며 기뻐하고 사랑하며 교감하고 싶습니다.
내 눈물과 기쁨과 설래임과 고백을 보내고 싶어집니다.
그와 그들의 웃음을 수신하고 싶어집니다.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눈물샘이 아려옵니다.
얼른 돌아서서 눈을 감아버립니다.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집니다.
서둘러 산을 내려와 차를 몰아갑니다.
동행을 내려주고 집을 향하며 CD 플레이어를 틉니다.
절절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한참동안 미친듯이 빠져들어 돌리고 돌리고 돌리며 들었던 그 노래.
지금도 문득 갈증이 나면 한참을 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노래.

할리퀸 - 세상 하나뿐인.

세상 하나뿐인 나의 전부여.
다시 시작해도 후회는 없어
시간을 되돌린다 하여도
너를 다시 사랑할거야.
너를 다시 사랑할거야.
너를 다시...
너를...


리사오노의 노래가 듣고 싶어집니다.
그녀의 그루브하고도 스모키한 소리가 듣고 싶어집니다.


    • 글자 크기
詩想 (by 아프로뒤뚱) 안녕하세요~!! (by 투캅스)

댓글 달기

댓글 8
  • 와인 한잔과 함께 한다면
    더욱 분위기가 날 것 같네요.. ^^
    실버님..
    가을 타시나봐요..
    역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가 봐요..
    저도 가을타는데..
    헉.. -_-;;
    그럼 나도 나....남자? ㅠ_ㅠ
    이게 아닌디..
  • 유명산이 더 가고싶어지네요. 흑 T.T 왜 다들 일요일에 결혼식을 해가지고서는...그것도 부산에서... 마지막 가을의 정취를 한껏들 만끽하고 오셨으면 합니다~!
  • 유명산 사진 잘 보았습니다. 그리고 잊었던 유년시절, 아카시아 향그러운 꽃잎을 뚝섬서 따먹던 기억, 그리고 퀵님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어린 말에 배인 무엇처럼 제게도 깊이 새겨진 돌아가신 장모님에 대한 그리움, 이런 걸 유명산에서 가면 떠올리겠군요. 유명산, 과거로의 시간여행인가요. 아주 기대됩니다. 그리고 유명산의 바람이 장대하다면 그건 원초적인 대자연의 호흡이고, 그 자체로 영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순간의 집결, 우리의 심장과도 뇌와도 연결된 생명의 동력으로서 호흡이란 무형의 동앗줄로 엮여진 자연의 바람 그리고 우리의 호흡. 혼연일체의 그 단계를 유명산서 퀵님처럼 호흡하고 오고 싶습니다. 새벽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일요일에 뵙죠.
  • 제목만 보고
    아이들이 보는 애니 제목"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가 떠오르는
    나는 아직도 유년인가봐 흠흠~`
    실버님글은 거의 작가 수준입니다^^
  • 헛~
    내고향니임~ ㅎㅎ
    나우시카를 아시다니..
    제가 지브리스튜디오 왕팬임다~
  • 한 잔 하러 가야겠습니다 ^^
  • 금년엔 유명산 못갈 줄 알았는데...
    이미 퀵실버님의 글로 다녀왔네요.
    회원님들 유명산투어 가열차게 참여하세요.
    소생은 병원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 작가님의 글에 끌려 유명산이 부르는 것 같네요.
    불참하려 하는데...
    억새로 흔들리네요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험머님이 2015년도 마일드바이크 번짱으로 선출되었습니다.5 낑낑마 2014.12.14 8637
공지 마일드바이크에 처음 오신 분들께21 땀뻘뻘 2011.04.07 64697
31717 열쇠 찾았습니다. 흑흑 죄송합니다.3 Bikeholic 2006.10.29 413
31716 *** 긴급 삐뽀삐뽀삐뽀~~~ ***1 퀵실버 2006.10.28 416
31715 파전님....5 땀뻘뻘 2006.10.28 339
31714 아빠곰님...4 땀뻘뻘 2006.10.28 284
31713 *** 투표 리플용 ***12 퀵실버 2006.10.27 416
31712 from 평택 to 청량리...4 말근육 2006.10.27 427
31711 무릎과 무릎사이...6 thebikemon 2006.10.27 525
31710 이제서야 ...... 드디어........10 파전 2006.10.27 414
31709 퀵실버님7 바이크리 2006.10.26 462
31708 사진, 가족...5 thebikemon 2006.10.25 447
31707 여러분 지각하지맙시다.20 미니메드 2006.10.25 729
31706 부담스러워 하시는것 같아...16 퀵실버 2006.10.24 700
31705 아빠와 산행하기.9 짱아 2006.10.24 478
31704 옥상 먹벙...25 아빠곰 2006.10.24 732
31703 물 빼기...9 아빠곰 2006.10.24 375
31702 詩想9 아프로뒤뚱 2006.10.24 571
바람의 계곡 - 유명산에 서다.8 퀵실버 2006.10.23 537
31700 안녕하세요~!!3 투캅스 2006.10.23 269
31699 흐흐~~27 아네 2006.10.23 371
31698 흐흐~~18 아네 2006.10.23 394
첨부 (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