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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SF소설형식] 저시력자(안경착용자)를 위한 고글 <천리안>을 쓴 시간여행자 (수정보완판)

키노2009.02.15 11:06조회 수 3312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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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탁월한 리뷰 http://drspark.connect.kr/cgi-bin/zero/view.php?id=mtbmania&no=1233 에서 퍼옴

시간여행자 구보씨가 새로 맡은 프로젝트는 이제까지 행해왔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몇 가지 징후가 있었다. 예언자들이 말한 지구의 종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는 이미 수년 전에 다 녹아버렸다. 몇몇 대륙의 일부분은 물에 잠겼고, 삶의 터전을 잃은 국가들은 엄청난 크기와 숫자의 난민선들을 수주하여 바다를 미아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조선업을 자랑하던 대한민국은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다. 정말 인류는 이대로 멸종할 것인가. 그토록 찬란한 지구의 문명이 여기서 끝이란 말인가. 어쩌면 이번의 시간여행이야말로 구보씨에게는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였다. 모든 것을 바로 잡으리라 결심했다. 이번 시간여행에서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잔차를 타고 가야만 했다.

구보씨는 골동품점에서 구입한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증조할아버지가 난생 처음이자 생애 마지막으로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면서 가보로 전해져 내려오던 ㈜파란인터내셔널의 저시력자를 위한 고글 <천리안> 케이스가 있었다. 도깨비 문양이 그려진 케이스는 이제 세계 고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낡은 것이었지만 구보씨에게는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었다. 구보씨 역시 저시력자였던 것이다. 이건 일종의 유전이었다. 젠장! 물려줄 것이 없어서 저시력을 물려준단 말인가! 그리고 A4 크기의 색이 누렇게 바랜 종이가 한 장 나왔다. 그곳에는 증조할아버지가 작성한 <천리안 리뷰>가 있었다.

“난생 처음, 이벤트라는 것에 덜컥 당첨이 되고 기쁜 척을 하였지만 실상은 무덤덤하다. 평생 색안경 같은 것을 한번 착용해보는 게 소원이어서 무수한 안경점을 돌아다녀봤지만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았다. <천리안>이라고 해서 별 게 있는가 싶었다. 도수클립이 없는 정도의 스포츠 고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눈의 안전을 위해 고글을 쓴다지만 나로선 뽀대가 우선이었다.

<천리안>이 도착했다. 거울 앞에서 착용해보았다. 이게 웬일이냐? 전혀 나쁘지 않았다. 어린 아이처럼 기뻐서 이렇게도 폼을 재보고, 저렇게도 폼을 재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좋을 수가~!

블랙색상이었다. 물품이 도착하기 전, 검색해서 알아보았더니 <천리안>은 네 가지의 색상이 있었다. 화이트, 블랙, 화이트와 블랙의 조합, 건메탈. ㈜파란에 전화를 걸어 블랙이나 건메탈 색상으로 보내주세요, 라고 부탁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운에 맡기기로 했던 것이다. 기왕 선심 쓰는 김에 색상 별로 다 주면 어디가 덧나나? 색상 별로 조립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았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제품의 초기 출시에는 생산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색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인기가 오르면 더욱 다양한 색상의 출시도 가능하겠다 싶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별로 패키지로 묶어나온다면 이건 완전히 프라모델 조립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색상을 조합하여 고글을 쓰는 재미는 감추어진 또 다른 메리트다.

가까운 동네 안경점에 렌즈를 맞추러 갔다. 사전정보로 습득한 지식으로는 렌즈를 겉면 산각방식으로 하는 게 좋다고 하여 그렇게 주문하였다. 결과는 별로였다. 테를 손으로 쥐고 힘을 주면 렌즈가 손쉽게 빠졌다. 지금은 그냥 일반 안경의 렌즈를 맞추듯 양각방식으로 하는 게 가장 무난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뒤늦게 다른 사람의 리뷰를 읽어보았더니 일반 안경점에서 양각방식의 렌즈를 맞춘 이도 있었다. 그 역시 나와 똑 같은 불만을 갖고 있었다. 즉, 림에 끼운 렌즈가 쉽게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문제가 있다. 일반 안경점의 안경사에게 맞추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해도 이건 문제가 있다. 특별한 실력의 안경사에게 렌즈를 맞춰야만 한다는 구조는 무조건 잘못된 것이다.

림 어댑터용 렌즈 가격은 1만5천원. 클리어와 메탈 색상을 맞추었다. 3만원 소요되었다. 프레임에 맞는 8커브의 고글 렌즈도 맞추려다가 그건 일반 안경점에서는 기술상 무리였고, 특정 안경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말에 포기했다. 그러자면 가격도 무시 못했다. 뭐든 싸게 가는 거다.

림 어댑터용 클리어 도수렌즈는 안경사의 잘못인지 어리어리했다. 메탈 색상의 도수렌즈는 이상이 없었다. 이 차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그런 리뷰가 꽤 많았다. 단순한 커브 문제인가 싶었다. 특별한 안경점에서 고가의 렌즈를 맞춘 이들에겐 그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것도 문제가 있다.

투명도 아니고, 불투명도 아닌 볼록 튀어나온 림의 색상이 거슬렸다. 잔차의 특징이라면 자동차나 오토바이와는 달리 백미러가 없는 탓에 라이딩 시 뒤를 돌아보는 경우가 많다. 그때 볼록 튀어나온 림으로 인한 굴절현상이 발생했다. 이건 분명 문제 있다.

또 림 어댑터를 분해해서 렌즈를 끼우는 방식보다는 차라리 림 어댑터를 고정하면 어떨까? 렌즈 별로 여분의 림 어댑터를 준비하고 있다가 여차하면 카트리지 식으로 본체에 고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렌즈를 더욱 견고하게 림에 부착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렌즈가 빠지는 현상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렌즈를 교체할 때마다 지문이 묻어 더럽히는 문제도 조금은 방지할 수 있을 듯했다.

이러한 사소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천리안>은 안경착용자에게는 더 없이 큰 선물이다. 도수 클립이 없는 것만 해도 어딘가? 더구나 나 같이 색안경에 관한 한 도무지 대안이 없는 자에게도 스포츠 고글을 착용하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것만 해도 어딘가?

<천리안>은 저시력자 또는 안경착용자에게는 축복 그 자체다. ㈜파란의 저시력자를 위한 기술적 배려에 큰 박수를 보낸다.”

구보씨는 거울을 보며 <천리안>을 착용했다. 마치 1930년대 오토바이 라이더의 고글이 연상되기도 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박태환이 쓴 물안경 같기도 했다. 구보씨는 매우 흡족했다. 정장을 입고 회사에 출근하거나 결혼식장에 참석해도 전혀 튀지 않는 디자인이었다.

“그건 왠 구닥다리 스포츠 고글이야? 나 커피 한 잔 줄래?”
그녀였다. 침대에서 빠져나왔는지 아직 알몸의 상태였다.

“기계가 다 있으니까 직접 만들어 마셔.”
평소 같았으면 잽싸게 튀어가서 커피를 만들어 바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천리안>을 낀 MTB 라이더였다.

“죽을래?”
구보씨는 <천리안>을 레이저 빛보다 빠르게 벗어 놓고, 커피를 고전적인 방식으로 정성을 다해 만들어 그녀에게 바쳤다.

그 사이 그녀는 <천리안>을 들고 요모조모 살피고 있었다.
“프레임의 소재는 그릴라미드(Grillamid)™ TR55 LX야. 쉽게 말해 ‘가볍고 질긴 플라스틱’이지. 지구상에서 오래 전에 퇴출된 소재이지만 아직은 쓸만한 상태네.”

하긴 대를 거듭하며 지금껏 부러진 데 없이 튼튼했으니 믿을만한 소재라고 구보씨는 생각했다. 그녀는 박사학위만 오십 개 정도였다. 뭐 그 정도는 요즘 시대에 흔한 것이었다. 그 중에는 재료공학 학위도 있었으니 믿을만한 관찰이었다. 그녀는 이미 증조할아버지의 리뷰까지 다 읽은 상태였다.

알몸 상태로 커피를 호르륵 마시는 그녀는 여전히 섹시했고, 아름다웠다. 구보씨는 한 번 더 할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밤새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 했었다. 체력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은 지구를 구할 때였다.

그녀는 어느새 TH-3807을 불러내어 검색을 하고 있었다. 옛날 식으로 표현한다면 일종의 컴퓨터였고 인터넷이었다. 그에게 비밀이란 없었다.

“아주 오랜 옛날에 와일드바이크라는 MTB 사이트가 있었나 봐. 그 쥔장은 바이크홀릭이란 분인데 잔차 카페를 하면서 돈 벌 생각은 않고, 다트 게임판 같은 거나 새로 사고 이런 식의 방만하고 나태한 운영을 하다가 쫄딱 말아먹고, 홀아비로 늙어가던 중에 대박 터졌네."
“뭔데?”

“로또!”
“그 당시 로또 별 거 아냐. 상금이 얼마 안돼.”
“아니야. 미국 여행 중에 라스베가스에서 구입한 로또가 초대박 터뜨렸나 봐. 그것도 독박으로.”
“헉!”

“부자가 된 그는 강원도의 산 하나를 통째로 사서 5성급의 호텔을 짓고, 다운힐 전문의 MTB 코스를 운영, 피부색이 다른 플레이메이트 출신의 다섯 명의 미녀와 살다가…”
“됐어 그만해. 엄청나게 부러운 분이군.”
“그런데 이거 대충 살펴봤는데도 꽤 괜찮은 스포츠 고글이야.”
그녀가 <천리안>을 손에 들고 간닥간닥 흔들며 말했다.
“조심해서 다뤄. 우리 집 가보야.”
구보씨는 간이 철렁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냥 떠나면 되는 것이다. 구보씨는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어 한 모금 마셨다. 속이 시원했다. 그러고 보니 액자 속의 증조할아버지도 <천리안>을 낀 사진이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얼마나 좋았으면!

구보씨는 캔맥주를 들어 증조할아버지께 건배를 하고 기나긴 여정에 나섰다. 물론 그녀에게 작별의 뜨거운 키스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헬멧을 쓰고, 잔차에 올라탔다.

거리를 나서자 지나가던 늘씬하고 예쁜 한 여자가 힐끔 고개를 돌려 <천리안>을 착용한 구보씨를 아쉬운 표정으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구보씨는 핸들을 돌려 저 여자를 꼬셔볼까 하고 잠시 흔들렸지만 지금은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할 때였다. 기어를 바꾸며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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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주)파란인터내서날입니다. 베스트리뷰어로 선정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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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한번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 게시판 글을 보고 이제야 읽어 보았습니다.
    특이한 리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키노글쓴이
    2009.4.5 07:48 댓글추천 0비추천 0
    헉! 손님이 너무 없어 파리 날리는 외로운 방에 전년도 베스트 리뷰어님께서 다녀가셨군요. 영광입니다.
bsg0834
2009.01.25 조회 12010
lounger
2008.11.06 조회 2096
kulca89
2008.10.31 조회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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