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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삼대(三代)

이상발2008.01.11 14:40조회 수 121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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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자전거를 배운 것은, 그 누구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버지로부터였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에 숫기가 없어 밖에 나가 놀지 못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어디서 중고 자전거를 하나 얻어 오셨다. 비록 중고 자전거였지만, 아버지는 열심히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치면서 아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으리라 짐작된다.

처음 자전거를 타던 날, 나는 안장에 걸터 앉아 좌로나 우로 넘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에 페달을 밟지도 못하고 있고, 아버지는 뒤에서 “꼭 잡고 있다, 페달이나 밟아라.” 하시며 나를 격려하곤 하셨다. 아버지는 또 이렇게도 가르치셨다. 자전거가 왼쪽으로 넘어지려고 하면 핸들을 왼쪽으로 조금 틀고, 오른쪽으로 넘어지려고 하면, 오른쪽으로 틀어라.“ 물론 글로 쓰는 것과 같이 표준말을 쓰지는 않으셨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고함을 치셨지만, 자전거를 멋지게 달리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는 마음이야 충분히 표현되고도 남음이 있는 가르침이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성격에 혼자서는 자전거를 달려볼 엄두도 못 내고, 이렇게 며칠을 아버지와 함께 연습을 하던 어느 날, 나는 앞만 보고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물론 아버지는 자전거 속도에 맞추어 어려운 숨을 몰아쉬며, 자전거의 뒷 부분을 잡고 뛰어오시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 그래 바로 그거야, 잘 한다. 계속 밟어라, 계속 밟아.” 그것은 바로 뒤에서 나의 자전거를 든든히 잡고 계시리라 생각했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그렇게 꽉 잡고 있던 손을 슬며시 놓고서 아들 혼자 자전거를 타는 기쁨과 즐거움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또한 자전거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자신의 힘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귀한 교훈도 함께 새겨 주셨다.

그 뒤로 나는 초등학교 시절 집이 멀다는 이유로 유일하게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으로 졸업을 하였고, 그 뒤로도 계속 자전거를 즐겼다. 비록 녹슬고 오래된 자전거였지만, 자전거 한 대 만 있으면 주말에 무엇을 하고 놀까 하는 걱정은 전혀 없었다. 마치 오토바이라도 탄 냥, 경사진 언덕 위에서부터 저 아래로 쏜살같이 달려보기도 하고, 집 앞 개천을 따라 해질 무렵까지 먼 길을 가 보기도 하였다.

어느덧 다 큰 어른이 되어서 직장 따라 수원에 자리를 잡고서도 자전거는 여전히 내 옆에 있었다. 그러던 자전거와 잠시 떨어지지 시작한 게 나의 큰 아들이 태어나던 그 날이었다. 산통에 힘들어 하는 집사람을 병원에 눕혀 놓고, 나는 이불가지며 옷가지를 챙기기 위해 집으로 왔다. 짐 보따리를 꾸린 후에는 당연히 자전거에 짐보따리와 내 몸을 싣고 병원으로 내 달아야지 생각을 하고 집에 와 보니, 잠시 병원을 다녀 온 사이에 자전거는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자전거가 있던 자리에는 누가 쇠톱으로 열쇠를 잘랐는지, 쇳가루만 바닥에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비록 비싸지는 않지만 귀하게 여기던 자전거를 도난당했다는 분노가 잠시 일었지만, 병원에서 산고로 힘들어 할 집사람 걱정과 곧 아빠가 된다는 흥분에 자전거는 잠시 접어 두었고,

그렇게 접혀진 자전거에 대한 추억은 세상 살아가는 분주함과, 남편으로서 애 아빠로서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부담감으로 7년이란 세월동안 마음 한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다.

7년이 지난 작년 봄에 불현듯 나는 다시금 자전거에 대한 열정이 일어났다. 충동적으로 발걸음을 자전거포 - 예전에 시골에서는 이렇게 불렀다 - 로 옮겨 자전거를 하나 장만하였다. 그리고는 주말마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페달을 밟는다. 그 옛날 중고 자전거를 처음 갖던 날의 흥분을 재현해 보면서 말이다. 어릴 적에는 동네 개구쟁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탔지만, 지금은 자전거 타는 동호인들과 함께 자전거를 달려 보곤 한다.

그 옛날 아버지가 나에게 자전거 타는 기쁨을 가르쳐 주셨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우리 아들들에게 자전거 타는 즐거움을 전해주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 시절의 우리 아버지처럼 잘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고, 넘어질까 겁내는 아들을 보면, 그 옛날의 내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아버지, 제가 고향을 가면 튼튼한 자전거 뒷 안장에 아버지를 태우고 동네 한바퀴를 돌고 싶습니다. 아니, 아버지는 여전히 건장하시니, 우리 삼대가 함께 동네 한바퀴를 돌면 어떨까요. 아버지가 제게 주셨던 자전거의 가르침과 인생의 귀한 교훈들을 이제는 제가 아들에게 가르치겠습니다.
                                                                 - 2002년 10월 어느날 일기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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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 어떻게보면 평범한 내용같지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글 이었습니다.
    눈에 물이 살짝 맺히네유 ~
  • 옛날을 상기시키게 하는 좋은 글이네요.

    고향 산골 동네에 이사 온 형제 많은 집의 형이
    신사용 보다는 한 단계 아래인 반 짐차를 타는 것을 보았을 때,
    어쩌다 한 번 올라가 볼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때의 황홀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얼마 후에 자전거 통학을 하겠노라고
    부모님을 졸라서 산 신사용 자전거를
    매일 닦고 조이고 했던
    그 때가 그립습니다.

    등교길 35리는 산비탈과 강변을 따라 달렸는데
    친구가 있는 동네에 도착해 보면
    여지없이 눈썹에 안개가 맺혀져 있어서
    그 친구는 저를 '도사'라 불렀습니다.

    저는 신사용 자전거,
    저의 친구는 반 짐차,
    그리고 1년 선배는 '싸이클'을 타고 다녔는데

    그 싸이클을 타고 싶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저 세상 사람이 된 그 형 생각도 나는군요.

    등교할 때는 주로 내려가는 길이어서
    학교까지 50분이 걸렸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하교길은 언덕을 올라야 하므로
    두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MTB를 타고 나서 옛날 생각에 고향으로 가는 길은
    길도 좋아졌고, 자전거도 가벼워서
    옛날의 그 고통은 없었습니다.

    자전거에 펌프와 망가진 튜브조각, 고무풀과 망가진 쇠톱을
    항상 넣고 다녔지만 한 번도 길에서 펑크가 난 일은 없었으니
    그나마 행운이었습니다.

    (저의 고향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동호인이면 다 가보셨을
    화야산 임도 아래의 시골입니다.)
  •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실 수가 있습니까요... 왼쪽으로 쓰러질라고 하면 왼쪽으로 핸들을 꺾고 오른쪽으로 쓰러질라고 하면 오른쪽으로 핸들을 더 꺾으라는 아버님의 가르침이 정말 현명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사에도 의미심장한 역설이 많지요. ^^
  • 이상발님 오랜만에 글을 올리셨군요. 요즘 어찌 지내셨습니까?
  • 한 문장 한 문장 들여다 보면 짧고 명료한 글이지만
    문단이 되고 이야기가 되면서 어마어마한 감동을 주는 글이 되버리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 여기 들락거리시는 모든 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겠네요.

    구름선비님..망가진 쇠톱의 용도가 무엇인지 다들 아실까요?
    전 그걸 사용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 화려한 문체나 수식어와 던어들 하 나 없는데도
    글 전체가 아주 메끄럽고 감동적인 글 입니다.
    글에서 전달 하시고자 하는 부분이 확연하게 나타나 있는데
    아련한 과거로의 추억과 현재에 이르기 까지의 과정들이
    스르륵~슬라이드 필름 돌아가듯 전개와 결말을 멋드러지게 지으셨네요.

    저도,
    시골 중,고등학교를 잔차로 통학을 했는데
    비포장 도로를(신작로) 타고 달렸던 그 먼지 나는 그 길이 이젠 포장된 것이
    아쉽다고 느껴지더군요.
    옛 것에 대한 향수...아쉬움....뭐...그런 것들이 주는 잔잔하게 밀려 오면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게 우리네 마음인가 봅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늘...건강 하시길 바랍니다..^^
  • 저도 국민학교6학년방학떄 이런식으로 배웠씁니다 .뒤에서 잡아주고있는 줄 알았는데 한참이나 혼자 가고있더군요..누군가 뒤에없다는걸 알아차렸을떄...겁에질려 넘어지고 말았던기억이있습니다..
    바다옆 좁은 시골길..작은삼촌..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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