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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難(여난) 2題

靑竹2007.11.21 02:20조회 수 1710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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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린 비암리 임도에서 바라본 풍경이 아늑하다.



23년 전의 신혼 초행길.

지금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뼈아픈 기억이 있다.
그 어렵다는 '신랑달아매기'를 기지로 살아난 이틑날
고스톱을 치자는 처갓집 식솔들 제안에 흔쾌히 응했는데
가장 순진해 보이는 둘째 처남댁이 중간에 선수 교체로
판에 끼어든 일이 그 발단이었다.


"헛..처남댁도 고스톱을 다 치실 줄 아십니까?"

"호호호...사람 수가 모자란 것 같아 제가 끼었어요"

"그래도 돈을 잃으시면 후회하실 텐데요?"

"어떤 게 맞는 패인지도 모르니까 고모부께서 도와 주세요..호호호"


그 뒤 그 곱상한 처남댁이 고스톱을 치면서
쉬지 않고 속사포처럼 쏟아냈던 수많은 언어들을
지금도 모조리 기억한다..(이거..장한 거여?)


"어머? 고모부 고모부!!!!(꼭 두 번씩 날 부른다)
이거 짝이 맞는 거죠? 그쵸? 어라? 판쓸이네요?"

"고모부 오늘 되게 안 되시네요..또 피박이세요?
전 판엔 광박을 쓰셨잖아요..어떡해요..호호호"

"호호호..저요..생전 처음 돈을 따나 봐요."

난 시작무렵부터 서서히 오르던 혈압이 점점 심각해져서
119를 불러야 할 상황인데도 그 처남댁의 속사포는
인정을 두지 않고 계속되었다.
게다가 장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힐끗거리며 구경하는
마누라도 신랑이 거금을 잃는데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으흐흑.

"고모부께서 일부러 봐 주셔서 제가 돈을 다 따네요..호호호"

"고모부 고모부!!!(계속 두 번 부른다.)서울로 가지 마세요"

"엉? 왜요?"(<------속사포의 와중에 간신히 끼어든 청죽의 한 마디)

"이대로 며칠만 더 치면 집을 살 것 같아요..호호호"

"아..네..하하..그런데 냉수 좀 없습니까?"


아무튼 장가를 들기 전에 처가가 있는 동네의
땅 기운에 화기가 있어 좀 매울 거라는 경고는 있었다.
험험..아무튼 그 뒤로 화투를 여간해서 치지 않았지만
행여 치더라도 남자들끼리만 쳤다.
(새가슴하구는..)


각설하고,
의정부에 갑장이 셋 있다.
성격이 아주 점잖은 선비같은 갑장 하나와
성격이 아주 화통하고 괄괄한 갑장 하나와
119요원인 갑장 하나, 이렇게 셋이다.
그 중 주로 같이 라이딩하는 동갑내기는
맨 위의 점잖은 사람인데..

아무튼 이 동갑내기께서는
비록 입상은 못해도 전국대회에 곧잘 출전하여
출전 선수 중 그래도 상위에 들곤 하는 바,
대한민국 국민약골에 성골샌님, 88올림픽 공인 새가슴에
초절전울트라관광라이딩컨트리클럽 라이센스 1호 소지자에
가설라무네..

아무튼 골골계에 그 명성이 파다한
이 청죽과는 확연하게 비교가 되고 있었으니
같이 라이딩을 하면서 그의 뒤를 사력을 다해
좇느라 뼛골이 시리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그의 말은 물론 그럴 듯하다.

'청죽님과 저와의 차이라고 해 봐야 고작 5% 남짓도 안 될 거유
그러니 거의 실력이 같다고 봐야죠..흐흐흐"


그의 설렁설렁 라이딩에 나의 전력질주 추격이
어우러진 데 대한 그의 평가가 이러니
정말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 아닌가.


그리고 설사 1%라도 그렇지,
짐을 더 이상 실을 수 없을 정도로 바리바리
실어서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 비루먹은
당나귀의 등에 파리 한 마리가 와서 앉으니
그 당나귀가 꼬꾸라지더란다.
그 파리에 비하면 1%는 소금이 한 섬이다. 쳇.



그러던 어느날 내게도 희망이 보였다.
그가 느닷없이 마나님을 모시고 라이딩에 나온 것이다.
드디어 무식한(원한이 서린 표현이다..)질주자와
나와의 사이에 완충장치가 생긴 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희희낙낙하여 인사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자전거 잘 타시나 보죠?"

"넹..안녕하세요? 호호호..남자들과 타려니 겁나요
여자가 아무리 잘 타야 어디 남자들 발치라도
따라갈 수 있나요? 호호호"


'흐흐..잘됐다. 저 인간이 설마 자기 마누라를
떼 놓고 내빼진 않겠지..크하하하'


이윽고 가평에 있는 수목원 옆으로 난
축령산 임도로 셋이 오르기 시작했는데 내심

'이거 아무래도 여자가 하나 끼어서
속도가 너무 느려져서 재미가 없는 거 아녀?'

하고 사치스러운 상상까지 했던 건 잠시...


놓친 풍선이 저 멀리 허공으로 가물가물 날아가듯
갑장의 꼬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고
의당 내 뒤에 위치해서 따라왔어야 할
그 아녀자는 갑장의 꽁무니에 바짝 붙더니
얼마 후 둘 다 자취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엉엉

'아니? 저 여자가 시방 세상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부창부수를 외치며 저렇게 열심히
낭군님을 쫓는겨?'

속으로 말도 안 되는 어거지 투정을 하며
무르팍이 깨져라 페달링을 하여 정상에 당도하니
이미 두 사람은  너무 오래 쉰 탓인지
땀이 다 식어 보였다. ㅡ,.ㅡ

그러나 이 내 처량한 신세는
목에서 피가 끓는 것처럼 호흡도 가빴고
그 가쁜 와중에 문득 23년 전
신혼 초행길에 겪었던 뼈아픈 기억이 살아나
그 여걸께서 안 보는 사이에
틈틈이 갑장을 무섭게 째려 보았다.


나중에 도로라이딩을 하면서
갑장님의 마나님이 저 앞으로 치고 나갔을 때
갑장의 뒤에 붙어서 넌지시 물었다.


"아니..어떻게 된 거유? "

"뭘요?"

"요즘 멧돼지도 나온다던데 두 내외가
날 떼어 놓고 내빼니 죽는 줄 알았잖우?"

"그러게요..전 제 뒤에 따라붙는 이가
청죽님이신 줄 알고 있었지 뭐유..흐흐"

"시끄럽소!!!! 이실직고 하시옷!!!"

"흐흐..뭘 이실직고 하라고 하십니까?"

"아니 마나님께서 왜 그렇게 잘 타시는 거죠?"

"아..그거요? 잘 타긴요.
사실은 집사람이 처녀 때
육상선수 출신이긴 했지만 그래도 여자잖우?"



갑장이라고 다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아무튼 그렇게 여름의 끝자락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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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6
  • 장 리플 두번 시도하다 실패했습니다... ㅠㅠ
  • 靑竹 님 덕분에 오늘 아침 한바탕 웃으며 시작하네요^^
  • 모니터를 보고 혼자 키득거리고 웃고있으니 집사람 표정이....
    선무당이 사람잡네요~~ ㅎㅎ 마지막 두갑장님의 대화중 뒤에따라붙는이가 청죽님 이신줄...
    에서 쓰러집니다 ㅋㅋㅋ
  • 아 너무 재밌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시는지...감칠맛이 물씬물씬 풍깁니다.~~~
  • 이미 두 사람은 너무 오래 쉰 탓인지
    땀이 다 식어 보였다. ㅡ,.ㅡ
    --------------------------> 이 대목에서 넘어갔습니다 ㅍㅎㅎㅎㅎㅎ
  • 역시 초록색.....

    ㅋㅋ
  • 내년 봄에 라이딩 같이....ㅡ,.ㅡ;;;;;;;
  • 역시 재밌습니다 ㅋㅋ
  • 재림하셨군요. 반갑습니다.
    중원에 나오셨으니 다시는 떠나시지 않으시겠지요?
    무언의 다수가 되기위해 초야에(소백산 골짝) 은둔하러 잠수타렵니다.

  • 호호호... 청죽님 청죽님 넘 재미나게 잘 보았어요. 호호호...
  • 역시나 푸른 문체와 살가운 문체가 주는 청죽님만의
    글이 주는 매력이 바로 이런게 아니가 싶습니다.
    넘 웃다가 벌써 배가 고파지는군요...오늘 점심은 더 빨리 무그야겠심더...^^
    감사히 오랜만에 재밌게 읽어 봅니다..늘...건강 하세요...ㅣ^^/~*
  • 제가 청죽님이 라이딩 실력을 아는디...땀이 다식을 정도로 늦으셨다면 그 두분은
    아 무섭습니다. 제 근처에 계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그나마 당행입니다.휴...ㅎㅎㅎ
  • 음 !
    늙은 다리 클럽에 오시죠.

    여자분들 만만히 봤다가,
    한강에서 개거품 물어봣습니다.
    여자가 무서 워, 초보가 무서워...
  • 형님...개거품이 아니고 게(crap)거품 입니다요...^^ㅎ
  • 호호호~흑 ~푸홧 ^*^ 청죽님 하산 하셨읍니다그려 반가워요 녹색 글 ^^
    물론 청죽님에 하산하심도요 ^^*
  • 저는 여자를 단 한번도 무시한 적...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당하고 나서는 항상 경외하며 피해 다녔습니다.
  • 여전사들 무서워요....................ㅎㅎㅎㅎㅎㅎㅎ
  • 항상 맛깔스러운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누가 전국 썩은다리 클럽하나 만드시지요.
    기준을 정해서...
    나이로말고 평지평속 18키로 미만인분들만 ...
  • 역시 초록색 ~~ 2

    오래간만에 보니 너무 좋습니다 너무 재밌네요 ㅎㅎ~
  • 너무도 그리워 하던 초록의글...
    왈바인 마음의 오아시스 입니다.
    로그인이 아니되어 이제서야 답글 다네요....
    얼굴함 뵈어야 하는디....
  • 감기로 마음까지 소침해져 청죽님의 옛글 - 몇번씩 읽어 지겨워진.^^ -이라도 볼까해서 왔는데.....새로운 사랑을 찾은 마냥 반갑고 즐거워서~ 청죽님! 감사드려요.
  • zzzzz.... 복귀하셨군요.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 거봐요 청죽님 다들 반겨 하시잖아요 담엔 그러지 마세요.

    근데 요즘 미스티 형님도 잠수타셨네. 선비님이야 조만간 수면위로 올라오실테고....

    아무튼 간만에 그린필체를 보니 눈이 시원합니다. 물론 글 내용도
  • 청죽님!!!!
    너무 반갑습니다.
    다시는 이상한 마음 갖지 마세요!!!!!!!
  • 아주 돌아오셨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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