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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 라이딩의 별미

靑竹2007.09.14 21:50조회 수 1293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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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 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 넘는 눈물고개
돌뿌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길아
도라지 꽃이 피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금봉아 불러 보나 산울림만 외롭구나




모처럼 상암구장이나 다녀 올 요량으로
잔차를 끌고 집을 나섰더니만
출발한 지 십 분여 만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에 전혀 개의치 않던 전천후 라이더를 자처했었건만
크로몰리로 애마가 바뀐 뒤로는 사람이 소극적으로 변했다.
퇴각할까 잠시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비를 맞고 보니
비만 내렸다 하면 잔차를 끌고 내달리던 추억들이
뭉클하게 떠오르는 바람에 그냥 내쳐 달리기로 했다.
꼭 추억이 아니더라도 우중라이딩 후에 잔차를 뒤집어
꼼꼼하게 물을 뺀 뒤 싯포스트를 뺀 상태로 세워 두면
아무래도 통풍이 되어 건조가 잘 될 거라는
생각에 조금은 안심이 되는 이유도 작용했지만...


아직 한낮의 무더위가 만만찮아서
가을이라고 부르기엔 좀 서둔다는 느낌이 있었으나
막상 유니폼을 적시면서 살갗까지 스며드는
선득선득 차가운 빗방울의 익숙한 감촉은  
요즘 날씨가 아직은 여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내게서 거두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추운 건 내게는 이미 걱정거리가 아니다.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 흩날리는 진눈깨비에
유니폼을 흠뻑 적신 상태로 세 시간 정도
달린 일도 있으니까 이런 날씨에 내리는 비야
뭔 대수랴.

아무튼 빗속을 달리고 달려
성산대교 아래서 물을 마시려고 섰는데
옷이며 헬멧이며 배낭에서 쉬지 않고 빗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때로는 굵은 빗방울이 헬멧을 때리지만
이미 그 소리들은 귀에서 잦아들고
이내 묵상에 빠져 든다.

규칙적인 페달링 동작은 물론
이따금 조우하는 교행하는 잔차인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일조차 관념의 형태로 변하여
묵상의 일부분으로 자리하니
천지 사위가 더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양대를 지나 장안동 빗물펌프장 고갯길을
댄싱을 쳐서 올라야 한다는 자각으로
묵상에서 깨어났는데...

빗줄기가 더욱 굵어져 조금은 춥다는
생각은 잠시, 느닷없이 외로움이 몰려왔다.
그래서 비맞은 중마냥 부른 노래가
위의 반야월의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다.ㅎ~

매우 좋아하는 이 노래 세 절 중에서
2절을 가장 좋아한다.
보면 볼수록 어쩌면 그렇게 가사가 절묘할까.

떠나는 님이 돌아오게 해 달라고
애처로운 금봉 낭자가 성황님께 빌어야 했지만
부엉이 우는 외로운 산골에 자신을 두고 가는
님에게 돌아올 기약이나 빌고 가 달라니.
얼마나 간절했으면...

도토리묵이야 보존성이 나쁘니
가다 곧 먹으라고 허리춤에 달아 주겠지만
한사코 울면서 달아 주니 도토리묵을 싼
주머니가 금봉이의 눈물에 젖을 터,
이 눈물 자욱이  채 마르기 전에 님께서
묵을 자시지 않을까...

"내 몸이 찹제?"

"아니요"

"우리 많이 살았다"

"야"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더"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이 대화는 박경리의 '토지'에서 용이의 팔에 안긴 채
죽음을 맞기 전에 나누는 파란만장한 사랑의 주인공인
무당의 딸 월선이와 그의 연인인 용이의 대화다.
이 대화를 끝으로 내가 토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인
월선이 곧 숨을 거두었는데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에 안타까움으로 점철된 사이 같았는데
'치열한 사랑을 했던 이 둘은 어쩌면 그런 정황들까지 사랑했나 보다'
라는 생각에  이 몇 마디의 대화가 무척 심금을 울렸었는데
오늘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중에 라이딩하면서 부른
트로트의 한 구절이 허접한 잔차인의 심금을 또 울렸다.

엣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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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넘..죄송혀유....ㅠㅠ (by eyeinthesky7) 병원 산악회에서 배낭을 주더군요. (by 십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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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 정말 그 춥디추운 한겨울에 온몸을 꽁꽁 무장하시고
    의정부에서 암사동까지 오시던 그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ㅎㅎ
    (그와중에 냉수마찰까지 즐겨라하시던 -_-;;;)

    그 좋은거 혼자하시지 마시고 저도 좀 델꾸 다녀주세요 ㅠ_ㅠ
    초보는 외로워요 ㅠ_ㅠ
  • 2007.9.14 22:05 댓글추천 0비추천 0
    어쩐지 이곳 목동병원에 대나무 냄새가 퍼지더라...
    여기서 성산대교가 보입니다..ㅎㅎㅎ


    천둥산 박달재보다 넘기 쉬운 성산대교~
    룰루루루~

    에헤헤헤헤


    =3==3===3
  • 靑竹글쓴이
    2007.9.14 22:07 댓글추천 0비추천 0
    하긴 겨울에도 냉수를 뒤집어 썼었지..
    무척 반가워요. 몰보나요님^^
    변변한 거 하나도 없는 날 보고 잔차에 입문하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내겐 더할나위 없는 영광유.^^

    안 그래도 일전에 한강에서 펑크가 나서
    어쩔 줄 모르실 때
    지나가시던 분이 펑크를 때워 주셨다고 하던데
    왈바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 그 분이 누구신가
    알아 보려고 했다가 깜빡 잊었구만..ㅎㅎㅎ

    상도동에 있는 동호회가 있는지
    내 한 번 알아 볼게요.
    항상 건강하시길...
  • 靑竹글쓴이
    2007.9.14 22:13 댓글추천 0비추천 0
    야구선수 출신이시라 키도 엄청 훤칠하고
    아주 잘 생긴 몰보나요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그런데 원래 상도동에서 사셨나요?
    거기서 내가 꼬박 30년을 살았는데요..
  • 저도 왠만하면,
    자퇴 하려고 했는데 비가 한여름에 오던 비 보다 더 마이오고
    게다가 바람까정 불어대서 두 가닥 반 남은 멀숱 그나마 다 뽑힐까봐서
    대퇴를(대중교통 퇴근) 했습니다요.

    오랜만에 푸른 글체에 정겨움을 느낍니다.
    거 빗물펌프장 우습게 보고 댄싱했다가 예전에 그 후유증으로 근육파열로
    몇 일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ㅎ

    역쉬...청죽님의 글에는
    향토적 색채감이 풍부해서 좋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씨유...감기조심 하셔유...연세도 있으신듀...^^ㅎ
  • 아... 청죽님! 요즘에도 천등산 박달재를 넘어 댕기나유?
    길이가 7Km나 되는 박달재 터널이 잘 뚫려서 들어 가서 한창 땡기다 보면 밖으루 나와
    버리던 데유...

    그렇다구 자전거타구 그 터널에 들어 갔다간 다 나오기두 전에 숨이 먼저 끊어질 거유...
    아마두... 군데 군데 배기용 팬이 돌아 가기는 하지만 서두 그 시커먼 매연에... 터널 안
    에서는 차한테 자전거가 보일 리두 없지...
    어떤 누미 백 미러루 휙 치기라두 한다면... 아니 버스나 대형 트럭이 지나가면서 일으키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눈 깜짝할 새에 차도 중앙에 널부러져 있지도 모를 일이지유...

    차라리 터널이 없는 한적하고 고요한 시골길루 가는게 차라리 오래 살겠지유?...

    청죽님 그리고 왈바인 여러분!!! 비 많이 온대유. 건강하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유...
  • 靑竹글쓴이
    2007.9.14 22:39 댓글추천 0비추천 0
    빠바로티님이 무쟈게 걱정됐었는데
    입이라도 확실하게 살아나신 걸 보니 말할 수 없이 반갑구랴.^^
    얼렁 쾌차하세요.

    수카이님 거길 2-9단으로 올라가는 걸요? ㅋㅋㅋ
    고맙십니더. 수카이님. 인자 지도 무르팍 애낄 나이가 됐고마요.

    저와 같은 연배시고 라이딩 스타일이나 라이딩 거리가
    저와 가장 흡사하시고 체형까지 아주 비스무리하신 분이
    richking 님이시죠? 반갑습니다.ㅎㅎㅎ
  • 그러나 라이딩 실력은 허벌나게 차이가 난다는거~~~!

    켁 튀자~~~~ 33333=====33333=====333333333
  • 음.....
    우중 라이딩의 별미는 뭐니뭐니 해도 앞바퀴로 튀는 흙탕물맛이 별미지요....ㅋㅋㅋㅋㅋ
  • 감기 조심하세요................
  • 가을비 한방울이 옷을파고들어.
    뼈를 상하게 하는 나이가 되실 날이 몇달 안남았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재미있는글 많이 써주십시요.
  • 靑竹글쓴이
    2007.9.15 01:05 댓글추천 0비추천 0
    에구..산아지랑이님 아직 팔팔한 청춘인 소생인디
    너무 겁 주지 마십시오. ㅋㅋㅋ
    무탈하시죠?
  • ㅎㅎ 초록글씨의 글을 읽다보면 ...

    한편의 소설을 읽는듯한 착각을 책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항상 건강하세요~ !!
  • 비오는 아침에 습기를 말려줄
    방습제 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코가 뿅 뚫리네요.
  • 어려서나 늙어서도 시작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물에 흠뻑 젖으면 기분이 짠하고, 찝찝하면서도 유쾌한 느낌이 들긴 하더군요.

    종이처럼 바싹 마른 면 속옷에 뜨끈한 아랫목(구들장)이 보장되는 조건이라면 더더욱
    좋지요.
  • 도서관 출퇴근 하면서 나름대로의 우중라이딩의 노하우라면...
    앞바퀴 앞에서 튀어오르는 물방울을 적게 만들거나 안 튀게만 해주면
    뒷바퀴에서도 등이나 힙 쪽으로 물이 적게 튀더라구요.

    엄청난 속도로 빗길을 달리게 되면 앞바퀴 뒤에서 아래턱을 강타하죠.. ㅡ0ㅡ;
    (뒤는 말할 것도 없고...)
    저는 속도보다는 안전과 느림을 좋아라 합니당.. ㅎㅎ;

    태풍이 온다는데... 바닷가로 가야 할까요? 으하하!! (중독이 맞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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