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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외도를 즐기고 있습니다.

........2002.10.03 21:18조회 수 30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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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험의 설래임:
2002년 9월 29일은 아트만에게는 특별한 날이다.
생전 처음으로 마라톤 하프코스에 도전하는 날이다.
작년 11월 말, 집 근처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시작하여
이제 50리 길 이상의 장거리 래이스에 도전하는 날이다.
그때는 운동장 5바퀴(약 1Km)만 돌아도 헐떡거리던 그였다.
어쩌면 그의 인생 중 가장 위험하지만 가장 거창한 일에 도전하는지도 모른다.
전날 저녁 10시경에 잠자리에 들었으나 12시경에 잠이 깨어
설래임과 긴장감으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 5시 잠과의 지리한 대치국면을 청산하고 샤워를 한 후
전투장비(신발, 옷, 모자, 시계, 스프래이, 양말, 수건, 물, 썬크림, 썬글래스)를 꼼꼼히 챙긴다.
아내의 사랑이 듬뿍 담긴  따뜻한 찰밥을 맛있게 먹고
못내 불안해하는 아내를 꼭 껴안아 주고 집결지인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한다.

왠 비가... :
6시 30분에 대구를 출발하여 다부동 터널을 지나니 비가 쏟아진다.
하늘은 짙은 구름으로 덮혀 있고 빗줄기는 그칠 줄 모른다.
모두가 오늘 래이스를 걱정한다.
밤에 자지 못한 잠을 조금이나마 보충하려 눈을 감았으나
역시 잠은 오지 않는다.
잠은 포기하고 눈을 감고 단전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단전에 기를 모은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8시이다. 출발이 10시니까 너무 일찍 도착한 것 같다.
그러나 주차장은 이미 전국 각지에서 온 마라토너들로 붐비고 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일부 회원들은 차안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9시가 되자  회장님이 몸을 풀어야 한다며 모두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약 2Km 정도 달리고 스트레칭과 체조를 한 후 다시 차안으로 돌아 왔다.
클럽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번호표를 가슴에 부착하고
컴퓨터 기록 측정용 칩을 신발에 단단히 묶는다.
이제 출전완료다.

안동이라는 곳:
안동하면 생각나는 것이 양반의 고장, 선비의 고장, 하회 탈춤, 봉정사,
퇴계선생, 도산서원, 안동소주, 안동댐, 세도가들의 고장,
그리고 민족의 시인 이육사가 태어난 곳 등이다.
현대적인 냄새보다는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냄새가 풍기는 고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행사진행이 1970년대 군민 체육대회 개회식을 생각나게 한다.

출발:
안동 양반님들의 구태의연한 진행 덕분에  
출발이 예정시간보다 많이 늦어진다.
마라톤 대회를 처음 개최한다니 너그러이 봐 주기로 했다.
지역유지들의 인사말이 끝나고,
마라톤 영웅 황영조씨의 구령과 시범에따라
스트레칭과 체조로 몸을 푼다.
다행히도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다.
출발선으로 이동하여 아트만은 참가자들 중에서 약간 앞쪽에 위치한다.
출발신호와 함께 모두 앞을 향해 돌진한다.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느낌이 든다.
대체로 처음에는 모두가 빨리 달린다.
그렇게 숨이 가쁘지 않은 것 같아 다른 주자들의 흐름에 맞추어 같이 달린다.
안동대학 쪽으로 빠지는 첫 갈림길인 법흥 고가다리를 건넨다.
추월하기도 하고  추월 당하기도 하면서 열심히 앞으로! 앞으로!
한참 열심히 달리던 중 아트만의 시선을 끄는 장면이 나타난다.
바로 앞에 키가 늘씬하고 긴 머리를 한 어떤 아가씨가
대구은행 클럽의 한 남자와 나란히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다정하게 달리고 있다.
피로를 덜어주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남자가 무척 부럽다.
아트만의 클럽에서도 여성 4명이 참여했지만
얼마나 멀리 달아났는지 흔적 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 다정한 두 남녀를 뒤로 따돌리고 계속 앞으로 전진.  
드디어 5Km 구간 표지판이 나오고 음료수대가 보인다.
목이 마르지는 않았지만 목마름을 느끼기 전에 물을 마셔두라는
선배님들의 조언에 따라 물을 한 컵 마신다.
랩 타임을 보니 22분 29초.
너무 빠른 속도다.
두 달 전 5Km를 전력 질주했을 때의 기록이 24분 48초였다.
이러다가 완주를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거리 표시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속도를 좀 줄이기로 했다.

1차 반환점:
얼마 더 달려가니 벌써 1차 반환점을 돌아 힘차게 달려오는
1등 주자가 나타난다.
어디에서 본 듯한 얼굴이다.
아마츄어 마라톤 하프코스 1인자 김형락씨다.
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다.
힘내라고 파이팅을 외쳐주고 1차 반환점을 향해 힘차게 질주한다.
얼마 뒤 우리 클럽의 선두 주자들이 보인다.
서로를 격려하는 파이팅을 외치면서 각자 갈 길을 향해 열심히 질주.
드디어 안동대학 정문에 있는 7.5Km 지점에서 1차 반환점을 돌아 서,
오던 길을 향해 다시 돌진한다.
10Km 지점의 랩 타임을 보니 50분 17초다.
금년 4월 대구 마라톤 대회에서 10Km 기록이 57분 38초였다.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문제다.

가장 힘들었던 구간:
지루한 느낌도 들고 왼쪽 아랫 배도 땡긴다.
초반에 너무 무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트만은 나름대로의 래이스 규칙이 있다.
첫째, 절대로 숨이 가쁠 정도로 달리지 않는다.
둘째, 걸어서라도 완주한다.
셋째, 래이스를 즐긴다.
첫 번째 규칙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해 패이스 조절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아픈 배를 만지면서 외롭게 달리고 있는데
조금 전에 보았던 그 긴 머리 아가씨 일행이 아트만을 추월한다.
이번에는 파트너가 바뀌었다. 포항클럽의 3명의 남자들과 함께 달리고 있다.
패이스 조절을 잘하는 상당히 노련한 마라토너라는 생각이 든다.
그 여성 마라토너의 뒷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풍경이 멀리 사라지고 나니 더 지겨운 생각이 든다.
10-15Km 구간이 가장 지루하고 힘이 드는 구간이다.
도로변에 나와있는 시민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격려해준다.
어떤 터프한 아줌마는 대∼한민국을 외친다.
힘이 솟구친다. 용기가 살아난다.
운동선수에게 응원이 왜 필요한지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이 때 뒤에서 달려오던 어떤 남자가
"대구월드컵 마라톤 클럽에서 많이 참가했네요" 하면서 말을 건넨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같이 달리니 훨씬 덜 지루하고 힘도 덜 든다.
드디어 안동댐 밑에 있는 다리를 하나 건너 15Km 지점이 나타난다.
여기가 2차 반환 점이다.
그러니까 안동코스는 하트 무늬처럼 반환점이 두 개로 되어있다.
많은 주자들이 아예 퍼질고 앉아
바나나를 먹으며 대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아트만은 쉬지 않는다.
물 한 컵 마시고 바나나를 까서 입에 물고는,
마치 먹이를 낚아 챈 하이애나처럼  
골인지점을 향해 설렁설렁 달아난다.
에너지는 거의 다 소진됐지만 완주에는 문제없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젠 주자들이 드문드문 떨어져서 모두 혼자서 달린다.

드디어 완주:
손과 발이 약간 저렸지만 꿈을 하나 이룬다는 기대감에
마냥 즐거울 뿐이다.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달리기를 시작한지 불과 일년도 안 되는 기간에 21배나 성장하다니
아트만은 자기 자신이 대견스러울 뿐이다.
탈춤 패스티벌 행사장임을 알리는 깃발이 나타나고
드디어 골인 지점이 저 앞에 보인다.
문득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미덥지 못한 표정으로 철부지 같은 남편을 배웅하며
차마 현관문을 닫지 못하던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이 세상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늘 래이스를 염려해 주는 유일한 사람.
어쩌면 지금쯤 남편의 무사함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보! 드디어 끝났으니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라톤 포토전문회사에서 나온 포토맨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10m,  5m,  꼴인!!!
미리 도착한 클럽회원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여유 있는 모습으로 골인한다.
1시간 54분 17초. 750명 중 385등  
처음 출전한 초보자로서는 만족스러운 기록이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기록이지만 자신의 땀과 끈기로 이룬 기록이기에
아트만에게는 소중한 기록이다.

아트만은 오늘 귀중한 재산을 하나 일구었다.
인내와 땀과 노력의 결실로 이루어진 소중한 보물!
돈으로 살 수도 없고 팔 수도 없는 재산
이 재산을 밑천삼아
마라토너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더 큰 꿈을 향해 더 열심히 달릴 것이다.
그리고
이 소중한 재산을 묵묵히 늘려 나갈 것이다.
자신의 성적을 꾸준히 향상시키는 고3 모범생처럼...

튼튼한 심장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 드리며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신 클럽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민족의 시인 이육사의 광야라는 시를 선사합니다.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 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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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boom님 사진 잘 나왔네^^ (by duffs82) 행님!! (by 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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