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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이제 내려갈
일을 궁리해야 한다. 해 그림자가 벌써 길어지고 햇살에는 황금빛이 짙어지고 있었다. 가장 빠른 하산길은 북쪽 능선으로 분명히 난 길을 따라
강당골로 내려서는 것이겠지만, 일행은 일단 원래 여정대로 가는데 까지 가보자는데 합의하고는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정상에서 시작되는 첫 내리막은 내가 비디오를 찍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박진감이 넘쳤다. 엉덩이를 한껏 뒤로 빼고
튀어오르는 뒷바퀴를 X꼬로 찍어누르면서, 불거져 나온 돌부리들을 요리조리 피하거나 혹은 부서져라 짓밟으면서, 잔차와 나는 한덩어리가 되어
용트림친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 질척한 검은 흙덩어리들이 사방으로 튀어오르고, 흙덩이들이 헬멧과 고글에 사정없이 부딪혀 내는 거친
소음들은 비디오에 단골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메탈 사운드를 대신해주었다.
그러나 그 구간을 지나서부터는 판도라의 상자, 아니
장군바위의 마법 덕분인지 거침 없는 내리막질이 불가능했다. 우선 장군바위부터 정상까지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여럿 줄을 서 있기 때문에 정상에서
되돌아오는 구간에도 여전히 심심찮게 오르막을 만날 수 밖에 없다. 내리막구간에서도 애를 먹기는 마찬가진데, 바위들이 워낙 불친절하게 서로
엉켜있어 좀처럼 시원하게 길을 터주지 않는다. 길 좌우에서 절묘한 각도로 삐져나와있어 앞바퀴가 걸리거나, 앞바퀴를 살짝 들어 무사히 빠져나왔다
싶으면 꼭 크랭크나 페달이 사정없이 바위에 찍힌다. 이런 구간을 겨우 툴툴거리며 빠져나오면 급경사에 돌들이 삐져나온, 신나게 내려올 만한 구간이
반겨준다. 그러나 너무 광분했다가는 큰코 다친다. 한 10여미터 스릴 넘치게 내리지르고 나면 길이 우측으로 급하게 꺾이면서 바로 집채만한 바위
절벽이 앞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친절하게도 동아줄이 드리워져있다. 잔차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으려니, 다리굵은 그 남자가 무게
면에서 내 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자신의 육중한 잔차를, 마치 의장대가 소총 다루듯이 한손으로 겨드랑이 아래 차고는 다른 한손으로 동아줄을 잡고
성큼성큼 가뿐하게 바위를 내려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경외와 흠모가 가득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잔차
이리 주시죠. 왜 잔차람 -- 나는 그 굵은 다리의 남자 품에 사뿐히 내 몸을 의탁하고 싶었다. 멋진 남자다.
이렇게 다리굵은
남자의 헌신적이고 선구적인 행동 덕분에, 마치 화재 현장에서 물양동이를 릴레이로 나르듯이, 한사람씩 한사람씩 바위벽에 차례로 기대서서 뒷사람의
잔차를 받아 내리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이곳을 지나면서 부터는 신나게 탈 만한 구간이 장군바위까지 이어졌다. 장군바위에 도착했다. 일행은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체됐기 때문에 여기에서 바로 하산하기로 뜻을 모았다. 좌측으로 강당골 방향 등산로가 나있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어째 초입의 분위기가 으스스한 듯도 했지만 바로 능선을 버리고 그 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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