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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산 탐험기 10 -- 강원 평창 계방산

onbike2003.09.02 09:24조회 수 352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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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없음

 

 

언제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비가 뿌리려고 하는 날이었고 평일이었고 에어컨과 아이스크림 찾던 것이 바로 엊그제인, 그런 날이었다.

그날은 원래 미쳐있던 사람들 말고 두 사람이 더 가세했다. 짱구님과 사이클박님이었다. 두 사람 모두 수면부족이었고 들떠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묻지 않아도 모두 다 안다. 계방산에 자전거 타러 가는 것이다.

왁자한 차 속에서 온바이크는 내심 불안했다. 부드러운 육산이라고는 하나 높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남한땅에서 다섯 손까락 안에 꼽히는 산이라고들 한다. 어느덧 차는 운두령을 오르고 있다. 도로 옆으로 같이가는 능선은 길고 도도하다. 저기를 자전거로 내려와야 한다. 어느덧 입에 침이 고인다.

운두령 정상엔 특산품 파는 좌판이 두서너개 있고 주차할 공터가 있다. 차 문이 열린다. 바람이 사정없이 쳐밀려든다. 짙은 안개 속에 비마져 뿌린다. 차다. 차에서 내려서자 마자 아래 윗턱이 맞부닥치는 소리가 난다. 자전거를 내려야 하는데, 맨손으로 찬 금속을 잡기가 싫어진다. 온바이크의 불안은 더 커진다. 덥다며 바람막이 덧옷을 못가져 가게 말리던 아내에게 온바이크는 결혼 후 가장 불타는 증오를 느낀다.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온다. 오르기 시작하면 땀이 날텐데 뭘.

 

 

 


 

 

길 건너편 절개지에는 고맙게도 나무계단이 만들어져있다. 타고 오르고 싶을 정도로 고마웠다. 나무계단을 오르니 바로 폭 30센티 정도의 오솔길이 시작된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의아해한다. 타고갈 수 있다. 완만한 고 계오르막에 평지에 심지어 조금 더 가니 긴 내리막이 시작된다. 운두령은 해발 1050미터 정도이방산 정상은 1500여미터이다. 산이 낮아질 리는 없다. 죽으나 사나 해발고도 450여미터를 더 올라가야 하는데 길은 평지에 내리막이다. 나중에 무슨 욕을 먹이려고... 지도에 표시한 "빡세게 끌어야 하는 구간(이하 '빡끌구'로 약칭함)"이 나올 때 까지 우리는 이 불안한 의구심과 함께 타다 끌다를 반복한다.

빡끌구 앞에서 잠시 망연자실한 후, 말없이 우리는 잔차를 맨다. 그제서야 맞을 거 다 맞은 쫄따구 처럼 속이 편해진다. 100여미터가 좀 더되는 길이였지만 중간에 쉼터가 하나 있어 좋았다. 쉼터에서 하산하시는 할아버지 무리(?)를 만났다. X랄 조심하라는 할아버님들의 당부를 들으면서 다시 기어오른다. 쉼터를 기점으로 경사는 약해지고 오름의 고통이 덜해진다. 이제부텀 더 험하다시던 할아버지들의 거짓말을 나이탓으로 이해하고 조금 더 힘을 쓰니 사위가 탁 트인다. 낮게 드리운 구름 덕에 사방은 희뿌옇기만 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발아래 H자로 깔린 블록을 보고 헬기장임을 짐작할 뿐이다. 찬 바람에 땀은 순식간에 말라버리고 추위 때문에 몸을 쉴 수가 없다. 백봉에서는 모기떼가 여기서는 추위가, 오름길의 빡셈을 배가시킨다.  

 

 

 


 

 

헬기장에서 정상까지는 키낮은 잡목들과 억새의 향연이다. 팔다리를 휘어감는 나뭇가지와  억새, 물먹은 주먹돌, 이런 것들의 방해만 없다면 충분히 타고갈 수 있는 길이 펼쳐진다. 단, 산아래의 풍경에 넋을 뺏기지 않을 정도로 무감각한 인간이어야 한다. 그날은 다행히 운무 덕택에 우리 모두 이런 무감각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자욱한 운무사이를 꿰뚫고 가을의 단풍든 백두대간 줄기를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헬기장을 두(세?) 개 더 지난 다음 어렵지 않게 계방산 정상에 접어든다. 역시 엄청난 바람과 추위가 일행을 강습한다. 눈을 감으면 온 세상이 몽땅 귀를 통해 내 몸속으로 빨려 들어오고있는 것 같은 깊고 강한 소리가 들린다. 사진 몇 장 찍는다. 속도계를 보니 운두령 정상에서 4.3킬로. 가쁜 숨이 잦아들기가 무섭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만 내려가시죠"한다.

어디가 하산할 남릉인지 운무 때문에 전혀 분간이 안된다. 단지 올라온 길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더듬어 걷다가 제일 먼저 보이는 길로 접어든다. 다행히 삼각점이 박혀있고 아랫삼거리 4.8킬로라고 적혀있다. 쓰바라시!

 

 

 


 

 

정상에서 초입 부분은 풀한포기 없는 거친 바위길이다. 엉둥짝 뒤로빼기(일명 웨이백, 앞으론 '엉빼기'로 약칭함)를 항문으로 내장을 내지르고야 말겠다는 기세로 기운껏 해야 겨우 내려올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르다. 바위 틈을 요리조리 잘 빠져 내려오다 수박통 만한 돌덩이를 미쳐 피하지 못하고 앞바퀴를 올려놓았다. 속도나 각도상 충분히 타고 넘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수박통이 옆으로 휙 돌더니 빠져 달아난다. 박혀있는 눔이 아니구나. 미안타 다 내잘못이다. 미련없이 꼬꾸라진다.

이 황량한 돌길을 다 내려오면 경사가 완만해지고 다시 키낮은 관목과 억새의 향연이 펼쳐진다. 손바닥 두장을 맞붙여 놓은 것 만한 너비의 오솔길은 나뭇가지와 억새에 가려 거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느닷없이 억새 사이로 솟구치는 바위돌들에 여기저기서 외마디소리가 들린다. 아직도 운무는 엷어질 줄 모른다.

 

 

 


 

 

한 십여분 내려온 후에 키높은 나무들에 둘러쌓여 그나마 찬바람을 막을 만한 자그만 공터를 발견한다. 밥묵고 갑시다. 여기저기서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총통이 여길 왔다면 다시 그 고질적인 산악저온증세 때문에 짐승의 소리를 냈을 것임에 틀림 없다(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는 독자께선 작년 6월 온바이크의 가리왕산 투어 후기 중 "총통의 파행"편을 참고하시라). 마치 몸 속에 전기 자극장치라도 숨겨져있는 것 처럼 온몸이 추위에 발작을 일으킨다. 사시나무도 한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떨지는 못하리라. 작년 10월말 방태산 투어때 구룡덕봉 정상에서 펼쳐졌던 점심 식사 광경 이후로 두 번째로 처량한 식사 광경이 이곳 계방산 구석에서 지금 펼쳐지고 있다. 따끈한 커피가 생각난다. 사이클모씨가 하루 전에 산 세일용 맥도날드 헴버거(세일하는 거니까 하루는 지났을 터이니 적어도 만든지 만 이틀은 지난 놈이다)의 오묘한 맛을 끝으로 식사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페달을 밟는다.

능선이 아주 유순해졌다. 돌도 없어지고 길도 약간 넓어진다. 제법 자란 관목들의 숲을 헤치고 나오니 앞이 탁 트이면서 해가 낯을 빼꼼이 내민다. 이제 정상부에 걸친 구름 속을 타 헤치고 나온 것이다. 그동안 온통 운무로 뒤덮여 분간이 안되던 계방산의 자태가 눈앞에 드러난다. 남쪽 능선의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등줄기가 우리 발아래, 아니 바퀴 아래, 까마득히 펼쳐져있다. 짧고 나즈막하지만 순수한 탄성이 목젖에서 터져나온다. "아!"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울창한 수림이 시작된다. 더불어 그날 라이딩의 꽃이었던 계방산 남릉 내리막의 치명적 매력이 일행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군데군데 갈림길을 만나지만 능선으로 이어지는 자장 분명한 길을 따라 계속 직진하면 된다.

숨이 막히는 경사다. 엉빼기에 지친 두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제 그쯤 하고 엉덩이를 안장 근처까지만이라도 되돌릴 수 있게 해줬으면 좋으련만 계방산 남릉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숨이 차다. 지금까지 수없는 내리막을 내리질러 보았지만 엉빼기 하느라 숨이찬 내리막은 요번이 첨이었다. 그렇게 한 번 시작되면 호되게 몰아붙이는 경사가 두세번 반복되고 다시 평지와 오르막 구간이 약간 끼어든다. 나무뿌리와 바위가 곁들여져 상당한 재주를 부려야 빠져나올수 있는 구간이다. 한마디로 계방산 남릉의 하산길에서 만나는 평지와 오르막은 길고 후달리는 내리막의 맛을 더 살려주기 위한 맛깔스런 양념이다.

 

 

 


 

 

평지와 오르막이 끝나는 곳에 지평선(너비 30센티 밖에 안되는 지평선이지만)이 보이면 다시 두 다리는 긴장에 휩싸인다. 속도를 줄이면서 지평선을 넘어선다. 앞바퀴가 경사에 접어들면서 몸은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 처럼 잔차 뒤로 빠진다. 잔차의 기울이짐이 심상찮다. 타고갈 수 있는 경사와 타고갈 수 없는 경사의 경계점에 걸쳐있는 내리막이다. 요런때는 반항하지 말고 운명에 몸을 맡기는게 상책이다. 잔차의 속도는 점점 빨라져 통제 불능의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1미터 앞에서 길은 더 큰 낙차를 만들면서 오른쪽으로 급격히 굽는다. 왼쪽을 뒷브레이크로 쓰는 사람에게 우로 굽는 길은, 더구나 이런 급경사에서는, 오금이 저려지는 불청객이다. 이미 앞바퀴는 굽이쳐 큰 낙차를 뛰어내렸다. 바로 그때다. 잔차가 멈춰섰다. 뒷바퀴가 서서히 들려올라가기 시작한다. 무언가 고집쎈 물체가 앞바퀴를 멈춰세운 것이다. 그눔이 뭔지 확인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뒷바퀴는 점점 더 들려올라간다. 안될거 같다는 절망감이 먼저 엄습했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엉덩이를 더 뺄 수 없을 때까지 뒤로 뺐다. 유달리 상체가 긴 기형적 체형 때문이었을까? 하늘로 들려올라가던 뒷바퀴가 허공에 멈취섰다. 숨이 멎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바람도 멈췄다.  몇 겁과 같은 찰나가 지나갔다. 뒷바퀴가 다시 땅을 향해 내려오기 시작한다. 뒷바퀴가 땅에 닿자마자 겁에질린 온바이크는 얼른 옆으로 자빠진다. 세상이 다시 돈다. 소리도 들리고 바람도 불고 호흡도 거칠게 돌아왔다. ....

10센티 정도 땅위에 삐져나온 팔뚝만한 나무뿌리였다 - 그 고집쎈 눔 말이다.

 

 

 


 

 

남릉의 중간 지점에는 도전하려는 기 자체를 꺾어 버리는 살벌한 경사의 내리막이 하나 버티고 있다. 모두들 끌고 내려온다. 거기만 지나고 나면 또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난장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이 난장은 아랫삼거리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설 때까지 한치의 잦아듬도 없이 계속된다. 마지막 소나무를 돌아 버스 정류장 뒷편 공터로 내려서는 순간이 마지막 압권이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온바이크, 그 소나무를 끼고 돌면서 경사와 길의 굽은 정도를 감당못해 옆으로 자빠진다. 마무리를 이렇게 하고나니 엄청 찝찝하다. 끌고 내려온 사람들은 팔팔하고 타고 내려온 사람들은 다 파김치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뱃속에서 양기가 다 빠져나간 것 같다.

돼지고기 바베규가 만들어지고 있을 운두령 산장으로 파김치된 몸을 이끌고 국도를 따라 이동하는 일행의 뒷모습이 그나마 지쳐 보이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고기를 향한 게걸스런 탐욕 때문이다.                    

아! 계방산 (디지카님, 방계산이 아니라 계방산이유)..

프리라이딩 잔차를 제대로 꾸몄나 확인해보기 위해서라두 한번 더 가야하는 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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