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내 비록 싸구려 체질이지만

靑竹2010.11.26 21:45조회 수 2503댓글 22

    • 글자 크기


어릴 때의 일이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친구 두 녀석과 작당하여 과수원에 잠입해 복숭아를 서리했는데 아직 덜 익을 무렵이라 대부분 풋것이었다. 씨알이 제법 실했지만 급하게 따느라 벌레먹은 것들과 덜 자란 조그만 것들이 많이 섞였다.  그래도 가져간 망태기에 수북한 것이 셋이 배불리 먹고도 한참 남을 만한 양이었다. 

 

망태기를 메고 인적이 없는 숲으로 들어가 소나무들 사이로 난 풀밭에 쭈그리고 앉아 복숭아의 까실까실한 털을 잔디에 문질러 먹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그런 꿀맛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 친구 중 한 녀석이 아주 수줍음이 많고 소심했다. 이 친구 먹는 작태를 가만 보자니 작고 벌레먹은 것만 자꾸 골라서 풀에 문지르는 게 아닌가. "에라, 이 삼식아. 좋은 걸 골라서 먹어도 배가 터질 텐데 뭔 궁상여?" 나와 한 친구가 그 꼬라지가 웃겨서 혀를 차며 박장대소하자 그 친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응, 난 괜찮아. 그런데 작고 벌레먹은 것도 정말 맛있어."

 

 

▲그간 신었던 신발은 바닥이 미끄러워 싱글코스에서 끌바할 때 고생했는데 바닥 모양새를 보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빈한한 살림에 이 정도의 물건은 내게 엄청난 사치다.

 

 

 

 

각설하고,

몇 년 전에 아는 교수님과 사이즈 문제로 자전거를 통째로 교환하면서 아주 값비싼 안장이 따라왔다. 이것저것 따지는 사이가 아니니 그냥 통째로 교환한 것인데 이 값비싼 안장이 도무지 적응이 안 됐다. '뭐 몇 달 타면 엉덩이가 알아서 적응하겠지.' 생각하며 탔지만 일 년이 지나도 영 적응하기 어려웠다. 결국 교수님께 이야기했더니 "그렇다면 청죽님께 다른 안장을 하나 사 드릴 테니 그걸 나 한테 주세요."하셨다. 내가 고른 게 그 안장의 3분의 1 정도 가격의 안장이었는데 타 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적응기고 뭐고 곧바로 편안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값비싼 초록색 헬멧을 몇 년 썼는데 늘 머리 한 귀퉁이가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결국 8만 원을 주고 새로 장만했는데 그게 또 그렇게 가볍고 편했다. '음, 내가 아마도 싸구려 체질인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복숭아 서리를 하던 시절의 소심했던 친구녀석이 떠오른 건 물론이다.

 

 

이 싸구려 체질이 오늘 대단한 사치를 부렸다. 5년을 신은 클릿 신발이 바닥이 너덜너덜해져서 새것을 사려고 벼르고 벼르다 겨울용 방한화를 장만한 것이다.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작..이 아니고 라이딩을 해 봤는데 일단 괜찮은 것 같긴 한데 비싼 물건인지라 슬그머니 걱정된다. 

 

 

'이것마저 내 체질에 맞지 않으면 어쩌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인 조국의 현실이 서럽다.

심란함 속에서도 계절의 변화는 무상할 정도로 여전하다.

 

 

 

 

 

▲일이 바빠 늘 자전거가 고프시다는 갑장님.

 

 

 

 

자전거가 좋다



    • 글자 크기
멀숱 없다고 이발비를 1,000원 깍아주네요..ㅋ (by eyeinthesky7) 청죽님 체포 증거물 제시 합니다.^^ (by eyeinthesky7)

댓글 달기

댓글 22
  • 청죽님 전화로라도 목소리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지금은 로그인 되시나요?  시스템이 왜 이상한 작동은 했는지 전혀 상황파악이 안되고 있습니다.

     

    로그인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를 끊으셔서 당황했습니다. ㅋㅋ (전화가 조금 끊겨서 들려서 마지막 말씀을 잘 못들었거든요 흑)

     

  • Bikeholic님께
    靑竹글쓴이
    2010.11.26 22:16 댓글추천 0비추천 0

    아, 이제 됐네요. 감사합니다.^^

     

    (홀릭님께서 날 차별하시는 건지도 몰러..흑흑)

  • 靑竹님께

    아시기는 아신가보네요

     

     

     

  • 항상  청죽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오늘도   청죽님 글이 올라와서

    반가운 마음에    읽었습니다   *^___^

  • 줌마님께
    靑竹글쓴이
    2010.11.26 22:17 댓글추천 0비추천 0

    말씀만 들어도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두 내외분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지요?

  • 윗지방은 지금 곧 얼음이 얼 기세이네요.

  • 훈이아빠님께
    靑竹글쓴이
    2010.11.26 22:41 댓글추천 0비추천 0

    의정부는 오늘 아침에 얼었답니다.

     

    훈이아빠님께서도 안녕하시지요?

  • 고레를 사셨군요. ㅎㅎ

    저는 클릿 빼면 죽을 줄 알았다가

    다시 달기 싫어서 그냥 타는데
    일반 운동화 신어도 좋고 편하고 괜찮네요.

  • 구름선비님께
    靑竹글쓴이
    2010.11.26 22:43 댓글추천 0비추천 0

    별로 발이 시려운 걸 모르는 체질이라 굳이 방한화가 아니어도 되는데

    저렴한 사계절용이 사이즈가 작은 게 없더군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샀습니다.

    도로를 주로 탈 예정이지만 풀샥을 꾸미게 되면 평페달을 달 생각입니다.

     

    날이 많이 차졌습니다.

    늘 건강하신 모습으로 뵙길 바랍니다. 선비님.

  • 겨울에는 평페달,,꽃버선에 털신...외치던 양반이....

    겨울용 신이라???안하던일 하면 **때가 된것이라는데....

    아으!! 부러우면 지는거다...

    ,

    아니여!!이양반이 변장을 하는중인 모양이다???

    저번에  체포되고 나서,,사진도 대문짝 ,,,자주가는 샾도 들키고...

    ,

    청죽님은 변장주~웅

  • 산아지랑이님께

    청죽님은 탈피중이십니닷!

     

  • 산아지랑이님께
    靑竹글쓴이
    2010.11.27 17:34 댓글추천 0비추천 0

    으흑흑..더 숨을 데가 읍슈..

     

    (역발상으로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개척해야겠다.)

  • "이 싸구려 체질이 오늘 대단한 사치를 부렸다."

     

    한 문장으로 모든 상황을 압축하는 힘.

    이 글맛, 글이 맛있어요.^^ -언제나 청죽님의 팬 올림-

  • glamour님께

    글래머님, 호핑이랑 드랍 30분 특훈 올해 가기전에 하셔야죠~

    제가 약속 못지켜드린것 같아 죄송합니다. 날 잡으세요! 저는 오후 시간은 항상 O,K 입니다.

     

  • Bikeholic님께

    앗! 감사합니닷! 냉큼 찾아뵙겠습니닷!

    그런데 '날 잡으세요' 란 말씀은 총통님을 쫒아가서 잡으라는 말씀이신거죠? -,.-;;;

     

  • glamour님께
    靑竹글쓴이
    2010.11.27 17:37 댓글추천 0비추천 0

    아고, 부끄럽게 왜 이러십니까.

     

    종가에 가면 제가 촌수가 높다고 해서  

    저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심지어 나이가 더 든 사람들에게서

    느닷없이 큰절을 받는 경우를 당하는데

    화들짝 놀라 황망히 맞절을 하게 되지요.

     

    glamour님께 맞절입니다.ㅋㅋ

     

    감사합니다.

     

     

  • 커~헉 털고무신은 어쩌시고

     

    아무래도 로또 대박난 냄새가 ㅋㅎㅎㅎ

     

     

  • 우현님께
    靑竹글쓴이
    2010.11.27 17:41 댓글추천 0비추천 0

    ㅋㅋㅋㅋ

     

    (근디 로또 대박을 맞은 인간이 2년 넘게 벼르고 별렀을 리가..)

     

    우현거사님. 털고무신은 풀샥을 꾸미게 되면 또 신어야죠.

    아직도 쌩쌩한 게 두 켤레나 됩니다.켈켈

     

  • 털고무신이 장터에 나오겠군요
    손은 곰만한데 터치패든 너무작네요 ㅠㅠ
  • 신발을보니...........

     

    내년 280에서 멜바 하시려고 미리 적응기간을 가지려는 고도의 계략?????

     

     

  • 저도 안장 안맞는걸 언젠간 익숙해지겠지 하고 타다가 결국 뿌러질때까지 탔는데

    이후 다른걸 마련하고서야 아 그게 나랑 안맞았는갑다 하고 느끼게 되더라구요 . ^^;;

  • soulgunner님께
    靑竹글쓴이
    2010.12.1 22:49 댓글추천 0비추천 0

    특히 안장이 그런 경우가 많은가 봅니다.

     

    견족에 편자라더니 제가 그 꼬라지였지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드디어 복구했습니다. 와일드바이크 심폐소생의 변!39 Bikeholic 2019.10.27 2533
186953 부고(송현님의 형님께서 어제)22 십자수 2011.09.23 1083
186952 멀숱 없다고 이발비를 1,000원 깍아주네요..ㅋ22 eyeinthesky7 2011.07.26 1784
내 비록 싸구려 체질이지만22 靑竹 2010.11.26 2503
186950 청죽님 체포 증거물 제시 합니다.^^22 eyeinthesky7 2010.11.14 2659
186949 아주 귀여운 장난감 저금통22 Bikeholic 2010.11.08 3039
186948 어찌...이뻐하지 않을 수...22 뽀 스 2010.11.05 2737
186947 호따루표 작품들.22 호타루 2010.11.04 2822
186946 금연계획들 잘 실행하고 계십니까?22 靑竹 2010.08.09 1286
186945 금요일 오후 7시 막걸리 술벙입니다.22 Bikeholic 2010.06.03 1168
186944 왈바에는 왈바 소식만 올리기---22 quenakim 2010.05.20 2286
186943 오늘 오후 남양주22 구름선비 2010.02.11 1239
186942 자전거 기술 나도 하고 싶다...22 선인 2009.09.22 881
186941 용불용설에 시달리는 나의 속도계22 靑竹 2009.09.03 794
186940 왈바에서의 7년...22 mtbiker 2009.08.12 859
186939 안녕들 하셨는지요...^^22 쭈.꾸.미. 2009.06.09 664
186938 나는 야영이 좋다.22 산아지랑이 2009.06.08 941
186937 무주 뻘밭 싱글 함 구경해보세요~~ ㅋㅋ22 뻘건달 2009.05.18 1159
186936 양평군 MTB코스 안내책자 무료로 배포합니다~(**책자배부잠시중단**)22 ybless 2009.04.29 1412
186935 대단한 한나라당... 22 뻘건달 2009.03.19 1370
186934 요즘 당구에 빠져서 사각형이 모두 다이로 보입니다.22 windkhan 2009.03.09 1202
첨부 (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