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귀향

탑돌이2010.06.30 23:47조회 수 1249댓글 23

    • 글자 크기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듣는다.

선택이 가능한 상황에서 나는 당초 차이코프스키 4번에 빠져들고 싶었다.

마음이 우울할 때면 가슴을 저며내는 슬라브 풍의 차이코프스키나 라흐마니노프 만한 선택이 없다.

그들을 듣고 있노라면 감정이 상승작용을 일르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드디어 가슴이 후련해 지는 '이상한 경험'을 하곤 했다.

 

베토벤 9번은 '환희'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달려가는 자식이 '환희'를 선택하다니....

 

비겁함일 것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피해 보려는

역발상의 보호본능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예 처럼 비가를 듣노라면 헤어나지 못할 심연에 빠질까 두려웠을 것이다.

아버지를 읺은 슬픔은 이세상 어떤 것보다 깊다.

동종 요법으로 해소 될 그런 하류의 슬픔과는 다르다.

 

전화.

전화는 왔다.

그 전화가 마침내 왔다.

 

'아버지 돌아 가셨다'

형님의 비장한 음성이다.

아무런  질문도 부언도 없었다.

우리 시대, 노부모를 둔 자식들이 숙명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그 '전화'의 공포

비보와 낭보를 전하는 수단이 전보에서 전화로 바뀐지가 언제부터이던가... 

 

향년 96세

일찌기 상경하여 철도 노무원으로 일하시다

6.26 사변을 만나 5명의 자식들을 데리고 전라도 산골 고향으로 피난을 내려 가셨다.

거기서 자식 셋을 더 생산하시고 증손, 고손까지 40여명의 후손을 두셨으니

이승에 왔다간 흔적은 충분히 남기셨다.

 

한 세기 앞서 태어나셨지만

오늘의 기준으로도 혁신적인 분이셨다.

가령, 향이 없으면 담배 꽁초로 향을 대신해도 된다는 식으로.......

 

만근의 엄중함은 분명 가슴 깊숙히 가시고 계셨으나

자식들이나 며느리 들이나 손주들에게 한없이 인자하신 분이셨다.

내생의 격량기에

바보스러운 결정을 늘 존중해 주시고 묵언으로 격려해 주신 것을 생각하면

자식을 키우는 현재의 나로서도 참으로 경이로운 처신이셨다.  

 

인천 공항 입국장에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릴적 여름밤 동네 개울가에서 평생 우정 변치 말자고 언약한 그 친구다.

나는 서두르는 친구에게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자고 하였다.

'아메리카노' 커피의 부드러운 향이 혀를 감싼다.

슬픔과의 상봉시간을 늦추려는 나의 심사를 알고 있는 친구는

말없이 기다려 준다.

 

아버지 영전에 분향재배 하고 나니 이제야 눈물이 흐른다.

나의 마음을 배반하고 눈물은 흐른다.

누님께서 손수건을 건네 주셨다.

 

아버니는 삼베 옷으로 갈아 입으셨다.

동갑이시던 어머니께서 14년전 돌아가시기 전에 손수

만들어 놓으셨던 수의다.

 

어머니는 70년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때 까지 삼을 키우시고 삼베 옷을 짜셨다.

스무자 한필을 꺼내어 행상과 흥정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그 삼베 판 돈으로 세간살이도 장만하고 자식들에게 귀한 운동화를

사주기도 하셨다.

 

아마도 아내가 재배하여 직조한 삼베 수의를 입는 행운을 누리신 분은 이시대에

아버지가 마지막일 것이다.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맞이하시고 얼마나 기뻐하실까...

당신이 준비해 둔 수의를 곱게 입고 나타난 아버지의 로열티에 오히려 어머니께서 감사해 하지는 않을까?

이러한 불순의 시대에...........

 

당신이 보아두신,

아내가 잠들어 있는 곁에

아버지를 묻을 때에도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 오셨어요!'

여든을 바라보는 큰누나의 흐느낌에도 나는 울지 않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 온 나.

이제서야 아버지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뼈저리게

느껴진다.

 

깊고, 넓고, 무겁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나의 '귀향'은 슬프다.

아버지의 '귀향'과 공존하지 못하므로....................................................



    • 글자 크기
안녕하세요이제 오늘이면 여행의 끝이.. (by 쌀집잔차) 죽마고우를 떠나보냈습니다. (by 靑竹)

댓글 달기

댓글 23
  •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이럴땐 어휘력 부족의 제가 밉습니다.

     

    부디 잘 치르시고...뵐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 올립니다.

  • 뽀 스님께
    탑돌이글쓴이
    2010.7.1 01:14 댓글추천 0비추천 0

    렌즈를 통한 뽀스님의 사물에 대한 표현에 늘 감탄하고 있습니다.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 아버님이 초등학교 6년때 돌아 가셨 습니다.

    워낙 어린나이여서,,뭐 기억도 별로 없지만...

    어머니는 제가26세때,, 58세에 암으로 돌아가셨 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지금도 저에게는 여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96세시면 천수를 다 누리셨는데도,

    자식은 여한이 남는 모양 입니다...그려..

    댓글로 나마 문상을 대신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산아지랑이님께
    탑돌이글쓴이
    2010.7.1 01:21 댓글추천 0비추천 0

    제가 막내여서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제일 짧다고 불평했는데, 산아지랑이님께 죄송합니다.

    쉰을 넘어 홀로 스게 되었으니 모든게 철이 없고 부족합니다.

    다시 타국으로 돌아 와, 상념이 새록새록 하여 하소연 한 것이오니 양해 하옵소서.....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안한 곳에서 영면하시기를...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평소 탑돌이님의 글에서 아버님을 향한 애틋한 정을 느끼곤 했는데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ㅠㅠ

     

    머잖아 제게도 닥칠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두려워집니다.

     

    부디 힘내십시오. 

     

  • 형님 늦었지만... 아버님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나이 많이 들어 돌아겨셨슴에도 이제 환갑도 넘긴 자식들 잘 되기만 바라고 있으실 겁니다.

     

    위로의 말씀 올립니다.

     

    보고 싶습니다 형님.~~~!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평안하소서...

  • 탑돌이님의 깊은 슬픔이 전해집니다. 아들 취직하는 거 장가가는 것도 못보고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생각도 다시 납니다... 저도 막상 당한 날은 별루 슬프지도 않고 눈물도 나지 않더니...삶의 국면들을 하나씩 지날 때 마다 마치 어젯일인듯 생각나더군요.

     

    탑돌이님의 삶에 항상 아버님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실겁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아버지를 보내신 잔잔한 아픔이 글에 녹아 있네요.
     
    어르신의 영면을 빕니다.

  • 애틋한 사부곡을 듣는것 같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탑돌이님 힘내시고요~~

  • 아버님을 여의신 애잔한 사부적 수필이로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버님을 여의신 빈 자리가 크시겠지만

    힘 내시고 마음 추스리세요..

  • 지금 살아계신 부친에게 효도를 하려고 하지만

    마음만 앞서는 불효자의 눈에 눈물이 생기려 하네요.

    살아 생전 조금이라도 효도를 하여야 하는데...

    다시한번 효에 대하여 생각할수 있게 하네요.

    마음 추스리시고 힘내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힘내시길 ,,,

  •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 호상인데.....탑돌이 님의 글을 읽으며 무언가 뭉클하여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글의 힘이 얼마나 큰지...

    정말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대단하신 아버님 의 명복을 빕니다.

  • 삼가 어르신의 명복을 빕니다.

    아직 부모님이 살아계신데...제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합니다.

    이제 어떻게 보내 드려야 하는지 걱정만 앞섭니다.

  • 예전

    아버님을 보내기전에

    아버님이 가시면 나는 울지 않으리~~다짐 했지만

    그래도 눈물은 나더군요

    좋은곳으로 가셨다는걸 알지만~~그래도 슬프더군요

    이별은 기쁜게 아닌가봅니다

  • 제목만 보고 인도에서의 근무가 끝나고 귀국하시는줄 알았는데......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힘드시더라도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 탑돌이글쓴이
    2010.7.3 21:44 댓글추천 0비추천 0

    따듯한 격려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제 스스로도 많이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구요.

    동구간의 의미가 무엇인지,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 등등

    왈바 회원님들 늘 행복하고 건강하시기 기원드립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드디어 복구했습니다. 와일드바이크 심폐소생의 변!39 Bikeholic 2019.10.27 2506
187093 石間松23 sarang1207 2010.08.13 1335
187092 이 휴대용 컵은 괜찮죠?23 靑竹 2010.08.12 1789
187091 여름휴가 어디로 가세욥?23 호타루 2010.08.02 1471
187090 안녕하세요이제 오늘이면 여행의 끝이..23 쌀집잔차 2010.07.27 1401
귀향23 탑돌이 2010.06.30 1249
187088 죽마고우를 떠나보냈습니다.23 靑竹 2010.02.25 1473
187087 금요일의 사고 내용(이제 쭈군은 자전거가 없다는)23 십자수 2010.02.08 1478
187086 제가 대충 다친 것 같죠? --->오늘 퇴원?23 십자수 2009.09.25 1017
187085 깜짝 놀랐습니다. 톰슨 스템~~23 구름선비 2009.05.15 1430
187084 주문한 "박정희를 말하다 (김성진 지음)" 책을 오늘 받았습니다.23 tom124 2009.04.28 1259
187083 뭘 이런 걸 다...23 십자수 2009.04.24 1458
187082 떡 한 시루 해 갈게요.23 靑竹 2009.04.10 890
187081 천호동 영MTB샵 도난사건23 LIMSURK 2009.04.06 2126
187080 드디어 왈바 개편이 공식적으로 진행됩니다.23 Bikeholic 2009.03.14 1441
187079 휴~~~개에 물린뻔했어요~~23 lady99 2009.02.04 1463
187078 뉴라이트 교과서...23 bikein 2008.12.17 1167
187077 직원 자전거 까지 챙겨주시는 사장님.23 jmjn2000 2008.10.29 1858
187076 시킨 김치찌개 결국 못 먹었습니다.23 靑竹 2008.09.17 1271
187075 대통령과의 대화--- 누구지?23 규아상 2008.09.11 1760
187074 산아지랑이 형님...23 하늘바람향 2008.09.01 912
첨부 (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