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3월 초에 왕창님과 둘이서 다녀온 산입니다. 오래도록 하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아 아직도 생생이 남아있는 기억을 더듬어
써보았습니다.
<탐험 경로> 지도의 1- 2- 3- 4 - 5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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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씨는 천정을 응시했다. 욱신거리는 손마디 위로 꽂혀있는 수많은
침들의 날카로운 금속성 통증을 애써 무시하려는 듯, 온씨는 광덕산
하산길의 능선을 떠올린다. 손가락의 통증도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
정도로 온씨의 넋을 빼놓았던 그 미끈한, 그러나 가시돋힌, 광덕산
능선마루의 수려한 길들이 파노라마처럼 한의원의 하얀 천장 위에
펼쳐졌다. 온씨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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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라멜 고개 -- 언제부턴가 광덕고개를 그렇게들 부른다고 한다.
6.25 전쟁때 이 고개를 오르는 군용 트럭 운전병에게 선탑 장교가
졸지 말라고 미제 캬라멜을 하나씩 먹였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란다. 전쟁에 지쳐 고단하던 그 병사들은 50여년 후 자기
손자뻘 되는 머리 벗어져 가는 한 녀석이 자전거를 타고 저 광덕산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 하러 이 길을 다시 오리라는 걸 알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포화 속에서 살아남긴 했을까...생각이 공연히
여기에 까지 미치자 온씨의 눈에는 도도한 광덕산 줄기가 전에 없이
노여워보였다. 전쟁의 공포에 주눅든 채 다 낡은 고물 군용트럭을 몰고
구절 양장의 돌투성이 비포장길을 올라야했던 병사에겐 미제 캬라멜로
쏟아지는 졸음을 쫓아야 했을 만큼 길고 지루한 고개길이었을 터이지만,
산악잔차질이라는 호사스런 레져스포츠로 단련된 기운찬 몸뚱아리를
가지고 잘 닦여진 포장도로를 따라 미국에서도 호평 받는 쌩쌩이 현대
엑센트를 몰고 개척질의 흥분에 휩싸여 연신 엑셀러레이터를 밟아대는
온씨에게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만만한 언덕배기에 지나지 않았다.
금새 광덕 고개 정상의 휴게소에 도착한다.
이제 캬라멜 같은 건 잊어라.
오로지 재미를 위해 생사를 거는 또 다른 장정이 이제 시작되려 한다...
3월 초의 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온옴에 한기를 느끼며 아스팔트 길을
내려간 후 온씨는 편안한 콘크리트 길을 버리고 바로 능선으로
진입한다(지도의 1번 지점). 처음 100여미터 정도를 제외하고는 타고 오를
만한 구간은 하나도 없다. 땅만 보고 핸들을 밀어올리며 걷기를 삼십여분,
눈을 들어 올려다 보면 꼭 정상인 듯한 봉우리가 눈앞에 잡힐 듯 다가와 있다.
저기만 가면 끝일 것이야...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기대와 절망을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반복한 후에야 비로소 뒤로 병풍처럼 솟아있는
광덕산 정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름 모를 봉우리에 올라선다(2번 지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나 보다. 그 봉우리에서 정상까지는 바윗길을
제외하고 모든 등산로가 마치 참호처럼 패여있다. 사람의 발길의 파괴력이란
이런 것이다.
정상에서는 내려다 볼 게 없다. 사방이 키높이 보다 조금 더 큰 나무들로
둘러싸여 포천 지방의 1천미터 급 준봉에서 기대됨 직한 장쾌한 풍광은
찾아볼 수 없다. 초봄의 양기에 녹아내린 흙들이 바퀴와 발바닥에 온통
엉켜붙어 오름길의 고통을 배가시킨 덕분에, 온씨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그 힘 좋은 왕씨 조차도 얼마간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양지바른 정상 표식
옆에 양아치 꼴로 주저앉아 꼼짝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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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돌아왔다.
왼손 엄지 마디를 보더니 “이제 부기가 좀 내리는군요” 한다.
“자전거 타시다가 다치셨다구요?
“예”
“산악자전거 선수신가요?”
“아니요”
“좀 험하게 타시나봐요?”
“예.. 좀..”
“선수도 아니신 분이 굳이 그렇게..”
말꼬리를 흐리며 끝낸 이 마지막 질문은 분명, 남들 다 열심히 일하는
평일 오전 시간에 온통 수염 투성이의 얼굴로 나타나서 취미로 잔차
타다 삐었다며 퉁퉁 부은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머리숱 성성하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 보이는 철딱서니 없는 이 환자에게, 건실한 중산층 전문직
종사자 가장의 대표로서 은근히 각성을 촉구하는 완곡하지만 뼈있는 그런
질문일 진데... 온씨는 각성은 고사하고 천하에 맹랑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재밌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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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원기를 회복한 온씨는 내려갈 길을 내려다 보며 흥분으로 전율한다.
이날은 흥분되고 고양된 나머지 온씨는 왕씨보다 더 성급하였다. 왕씨를
재촉하여 온씨는 곧바로 해발 1054미터 광덕산 정상에서 박달봉 쪽 능선을
타고 하강을 시작한다. 내리지르는 속도와 충격으로 타이어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녹은 흙들이 사방으로 튀어오르며 고글과 헬멧을 가격한다.
“그래 바로 이거여” 온씨의 얼굴은 이내 짐승의 모습으로 변하고 그의 입가
에는 괴성과 더불어 흘러내린 침이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긴 이런 동물적 내리막질 후에 짧은 오르막, 다시 긴 동물적 내리막질에 또
짧은 오르막, 이런 식으로 서너번을 반복한 후에 온씨와 왕씨는 박달봉임에
틀림 없는 헬기장에 도착한다(4번 지점). 지도상으론 이제부터 오르막 하나
없이 줄창 동물적 내리막질만 기다리고 있음에 틀림이 없었다. 이번에도
온씨는 헬기장 끝부분에서 다시 시작되는 동물적 내리막길의 초입을 보고
다시 전율에 휩싸인다. 신중한 왕씨는 지나온 길과는 달리 돌들이 많아져가고
있음을 알려주려 애를 썼지만 온씨의 흥분을 가라앉히지는 못한다. 두 어길
아래 상당한 돌무더기들이 눈에 들어오고 경사 또한 만만치 않게 급한
상태였다. 또한 그 돌무더기들의 한 가운데 마치 편의점 삼각김밥을 한 10배쯤
뻥튀기해놓은 것 같이 생긴 뾰죽 바위가 버티고 있었다. 이것이 온씨를
더 흥분시켰다. 긴장과 흥분 탓에 돌무더기에 진입하는 속도가 빨랐다.
길은 그 삼각 김밥의 좌우로 비켜가게 돼있었는데, 속도 때문에 가장 진입이
편한 좌측길(그러나 경사도 더 급하고 더 험한 길)로 접어들 수 밖에 없었던
온씨는 삼각김밥을 바로 눈앞에 둔 지점에서 둔탁한 소음과 함께 뒤가
허전한 느낌에 휩싸인다. 아뿔사! 바로 다음 순간 온씨의 몸은 잔차와 함께
공중에 솟구쳤고, 삼각김밥의 꼭지점 만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온씨는
필사적으로 공중에서 사지를 버둥거렸다. 돌무데기들이 헬멧과 부딪치는
굉음이 귀를 찢을 듯이 들려 온 후에 온씨는 왼손 엄지 쪽에서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 급경사의 돌덩이들 위로 내동댕이 쳐졌다. 소스라치며
뒤쫓아온 왕씨의 부축을 받으면서 온씨는 삼각김밥의 꼭지점만은 피했다는
안도감을 채 느낄 겨를도 없이 타들어가는 왼손의 장갑을 벗겨내렸다.
파르르 떨리고 있는 엄지의 뿌리 부분이 이미 시퍼렇게 부풀어 올라 살오른
찐고구마를 보는 듯 했다. 엄지를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다행히
골절은 아닌 듯 싶었다.
“저기다 쳐박혔으면 어쩔 뻔 했서! 제발 정이 엄마 생각 좀 하라고”
삼각김밥을 가리키며 왕씨가 소리쳤다.
사고지점에서부터 한 100여미터 구간은 가파른 바위들이 서로 뒤엉켜있어
다치지 않았어도 타고 내려오기는 불가능한 구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타는 듯 하던 엄지의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 힘을 쓸 순 없지만 핸들을
잡는 구색을 내기엔 별 문제가 없었다. 이 구간을 빠져나오자 드디어 사방이
탁 트이면서 맞은 편으로 백운산-도마치봉-신로봉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의
장엄한 능선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 맞장구라고 치려는 듯, 광덕산 능선도
이제 바위 사이를 가로지르며 신나게 탈 만한 구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온씨는 주저없이 또 안장위에 올라앉았다. 좌우를 깍아내린 듯한 폭 1미터
정도의 칼능선이었지만, 원인 모를 자신감으로 내리지를 수 있게 만드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길이 계속 계속 이어졌다. 온씨는 엄지의 통증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온씨의 얼굴이 다시 변하고 입꼬리로 침이 다시 흘렀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길의 폭은 넓어지고 아직 미미한 봄기운에도 대지와 나무들이
생기를 뿜어내고 있음이 완연했지만, 길의 경사는 더욱 더 가팔라졌다.
푸근한 봄의 침대 같은 넓은 길에 급경사... 더군다나 중간중간 복병처럼
나타나는 급회전 구간! 이것은 미치듯 내지르라고 만들어 놓은 광덕산의
선물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아스팔트로 내려서는 그 순간까지 광덕산의
하산길은 팽팽한 생동감과 유쾌한 긴장으로 온씨를 까부르기를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6)번 지점의 넓은 공터에서 잔차를 널부러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온씨는 왼손 엄지의 둔중한 통증을 다시 느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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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재미.. 이게 재밌어요?”
한의사는 수장(水葬) 시체처럼 부어오른 엄지손가락을 가리키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온씨는 이 하얀 가운의 명의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섭섭하지 않았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캬라멜을 씹으며 광덕산 허리를 넘었을 그 병사도 자신의 이런 대답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온씨는 기분이 우울해졌다.
오직 재미를 위해 목숨 걸고 산길을 내리지르는 버릇이 있는 온씨는 50여년 전
그 병사를 비롯하여 이 땅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고통 그 자체인 삶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머리 숙여 경건한 절을 올린다.
병원을 나선 온씨는 손가락이 다 나으면 또 어느 산으로 떠날지 생각하느라
버스를 두 대나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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